돼지 새벽이는 세살이 됐다..거의 유일하게

한겨레 2022. 8. 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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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11초짜리 유튜브 동영상을 다 보지 못했다.

동물해방공동체 직접행동(DxE) 활동가들이 2019년 7월 한 종돈장에서 아기 돼지들을 구조하는 영상이다.

새벽이를 구한 활동가 중 한명인 은영은 2019년 4월 도살장 앞에서 목격자가 되는 비질(Vigil) 활동을 시작했다.

돼지는 6개월이면 도축되니 한국에서 세살 생일을 맞는 거의 유일한 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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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2019년 6월 디엑스이 서울 활동가들은 각각 육식 식당에서 첫 ‘방해시위’를 하고 이를 온라인에 공개했다. 디엑스이(DxE) 제공

[삶의 창] 김소민 | 자유기고가

3분11초짜리 유튜브 동영상을 다 보지 못했다. 동물해방공동체 직접행동(DxE) 활동가들이 2019년 7월 한 종돈장에서 아기 돼지들을 구조하는 영상이다. 새벽인데 분만사 안엔 노란 불이 켜져 있다. 엄마 돼지들은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지 못했다. 몸에 꼭 맞는 스톨(번식틀)에 갇혀 있다. 사산된 아기들이 쌓여 있다. 살아 있는 아기들은 그 주검을 밟으며 엄마 젖을 맹렬히 빨았다. 여기서 동영상을 껐다. 죄책감 전에 충격이 강타했다. 반려견 몽덕이가 달려와 내 눈물을 핥았다.

이 엄마들은 강제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 사산율이 높아지면 도축된다. 노란 불은 아기들이 빨리 살찌게 하려고 켜둔 거다. 뒤처진 아기들은 다리를 잡아 패대기쳐 죽인다. 사료값이 더 드니까. 그날 활동가들은 패대기쳐질 새벽이와 노을이, 사산된 별이를 안고 나왔다. 생후 2주 된 새벽이는 이미 이가 잘렸고 고환을 뜯겼다. 육질이 더 맛있으라고. 이 구조 동영상엔 조롱의 댓글들이 달렸다. “동족 구하느라 애쓰네.” “맛있겠다.”

새벽이를 구한 활동가 중 한명인 은영은 2019년 4월 도살장 앞에서 목격자가 되는 비질(Vigil) 활동을 시작했다. 첫날, 그는 ‘그것’이 생명인 줄 몰랐다. 돼지들이 거대한 덩어리처럼 적재돼 있었다. 상처투성이 몸들은 뒤엉겨 오물을 뒤집어썼다. 도살장에 붙어 있는 도소매 업장에선 갓 잡은 돼지의 가죽을 벗겼다. 도시로 돌아오니, 웃는 아기 돼지 그림을 건 상점들이 그 뼈와 살을 팔았다. 그는 2년 동안 거의 매주 도살장 앞에 섰다. 평생 우유를 짜내다 칼슘이 다 빠져나가 잘 서지도 못하는 소가 그가 뻗은 손에 이마를 맞댔다. 그는 주저앉아 땅을 치며 울었다. 그 소에게서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자신을 보았다.

이런 폭력을 목격하면서 활동가들은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3분도 되기 전에 외면하고 싶었다.

“500원으로도 바꿀 수 있어요.” 은영은 활력이 넘쳤다. 자기 삶을 사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활기였다. “활동가 네명이 2019년 5월6일 첫 방해시위를 했을 때 비용이 500원이에요. A4 용지에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라고 써 프린트했어요.” 넷은 일단 한번 해보기로 했다. 이 종이를 들고 육식 식당들에 들어갔다. 이 ‘작은’ 시위는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바꿀 수 있다고? 공장식 축산업은 거대한데? 생명이 상품인 자본주의는 이제 신인데? “저는 거대하니까 바꿀 수 있을 거 같아요. 이건 명백하게 잘못된 거니까.” 그는 사람을 기어코 신뢰하는 거 같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니까, 알리기만 하면 바꿀 수 있어요. 개인보다 이 시스템한테 분노가 끓어올라요. 사람들을 속이고 있으니까요.” 내가 자주 무기력하다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혼자면 그렇죠. 같이하면 안 그래요. 활동가들끼리 서로 돌보니 두려울 게 없어요.”

목표를 정하고 활동한다고 능동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그랬다. 중요한 건 동기다. 두려움, 불안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라면, 쫓기는 자는 노예다. 세상을 바꿀 힘이 하나도 없다고, 혼자라고 느끼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새벽이는 지난 7월9일 세살이 됐다. 돼지는 6개월이면 도축되니 한국에서 세살 생일을 맞는 거의 유일한 돼지다. ‘새벽이생추어리’에서 자신으로 산다. 이 터를 마련하고 새벽이를 돌보겠다고 사람들이 모였다. 활동가들은 대형 백화점 육류코너 등에 출몰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더 많은 사람이 A4 종이를 함께 들겠다고 나섰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 쫓기느라 내가 변하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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