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펠로시' 격돌, 미묘한 줄타기..'갈팡질팡'은 한국 몫?

최현준 2022. 8. 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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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대만행 후폭풍][펠로시 아시아 순방이 남긴 것]
중 군사·경제 보복 대만에 집중
미 "미끼 안 물 것" 군사대응 자제
양국 물밑 조율 ..'대만 독립' 안 꺼내
"굴종외교" 비판하던 윤석열 정부
'중국 자극' 우려한 듯 태도 돌면
대만 '미 지지 확인' 외교 성과 챙겨
중국군 헬리콥터가 4일 대만과 마주한 푸젠성 앞바다를 날고 있다. 푸젠/AFP 연합뉴스

2~3일 대만을 거쳐 한·일 방문으로 마무리되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아시아 순방이 대만에 매우 힘겨운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미-중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에도 서로를 자극하는 결정적인 선을 넘지 않으면서, 이후 감당해야 할 외교적·경제적 비용은 오로지 대만의 몫이 됐다. 2017년 주한미군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한 뒤, 중국의 엄청난 경제적 보복을 감수해야 했던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4일 정오부터 사흘 동안 대만을 봉쇄하려는 듯 주요 항만 주변을 촘촘하게 둘러싼 채 육해공군 합동훈련을 시작했다. 이번 훈련 기간 사상 처음 대만 상공을 가로지르는 미사일도 발사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만해협의 중간선을 넘나드는 중국군의 도발도 일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펠로시 의장의 방문 이후 대만 전체가 한동안 중국의 노골적인 군사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됐다.

전날인 3일엔 경제 보복 조처도 쏟아냈다. 중국 정부는 대만의 ‘대만민주기금회’와 ‘국제협력발전기금회’를 독립을 꾀하는 기구로 규정하면서 이들과 협력을 금지했다. 대만산 농산물과 해산물의 수입도 잠정 중단했다. 하지만 정작 갈등을 고조시킨 펠로시 의장이나 미국에 대해선 험한 ‘말폭탄’만 쏟아낼 뿐 구체적 대응 조처를 꺼내 들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응도 비슷하다. 중국이 대만을 포위하며 노골적인 군사적 압박을 가하는데도 비난만 할 뿐 직접 대응은 삼가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진으로 격리돼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일 아침(현지시각) 국가안보팀과 전화 회의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에 대한 지원, 푸틴의 전쟁에 대응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 지원” 등을 논의했다고 트위터로 밝혔다. 이 회의에서 중국의 군사훈련에 대한 대응 방침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은 앞서 ‘군사적 맞대응’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힌 바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1·2일 브리핑에서 “미국은 미끼를 물거나 무력시위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도 3일 <엔피아르>(NPR) 인터뷰에서 “우리는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나아가 미-중이 이번 사태의 파장을 줄이려 진행한 ‘물밑 노력’들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초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무장관 회의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여부 결정이 임박했다’는 점을 미리 알렸다고 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3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 당국자 등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 방문 자제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뒤, 중국과 소통 채널을 확보하며 갈등이 고조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전했다. 펠로시 의장도 ‘대만 독립’을 입에 담는 것 같은 결정적 선은 넘지 않았고, 백악관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지지는 변함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2일 밤 중국 외교부에 불려 들어간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대사는 “긴장 고조를 막기 위해 중국과 공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외교 소동’ 속에서 나 홀로 긴장한 것은 한국이었다. 펠로시 의장은 방문지인 싱가포르·말레이시아·대만 등에서 해당국 정상과 직접 회담했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는 점이 표면적 이유지만,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할 것을 우려한 결과로 해석된다. 대선을 앞둔 지난 1월 “사드 추가 배치” 등을 호기롭게 외치고, 문재인 정부의 대중 ‘3불’(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편입, 한·미·일 군사협력 금지)을 “대중 굴종외교”라 비판하던 때와 비교하면 180도 태도가 달라졌다. 펠로시 의장의 이번 순방으로 대만은 막대한 비용을 치르게 됐지만, 미국의 ‘굳은 지지’를 확인하는 큰 성과를 챙겼다. 미-일 동맹 강화에 ‘올인’ 중인 일본도 대만 사태를 군사력 강화의 명분으로 활용하는 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갈팡질팡 휩쓸린 것은 강경한 대중 정책을 내세웠던 한국의 보수 정권뿐이다.

베이징 워싱턴/최현준 이본영 특파원, 길윤형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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