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디지털 성폭력 : 사라진 휴대폰, 사라진 정의

김새봄 2022. 8. 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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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폭력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야기할 수 있는 내용의 촬영을 하거나 유포하는 등의 범죄 행위를 말한다. 2020년 성범죄 발생 실태에 따르면 강제추행(48.1%)과 강간(19.3%) 다음으로 많이 벌어지는 성범죄는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이하 불법 촬영, 16.6%), 즉 디지털 성폭력이었다. 실제 2011년 1천 건 수준이던 불법 촬영 적발 건 수는 2015년 7천7백 건으로 7배 이상 치솟았다. 최근 통계인 2020년에는 한 해 동안 5천 건의 불법 촬영이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대검찰청 2021 <범죄분석>).

디지털 성폭력의 특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일상성'에 있다. 누구나 항상 가지고 있는 휴대폰이 주요 범행 도구다. 통계에 따르면, 설치형 카메라에 의해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횟수는 오히려 적다. 실제 범행 도구의 89.5%는 휴대폰이었다. 장소도 상관이 없었다. 공개된 장소가 47.8%, 사적 공간 등이  46.9%으로 고르게 나타났다. 특별한 도구를 준비하지 않아도,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가해자가 마음을 먹으면 범행은 가능하다. 일상을 비집고 들어와 언제 어디서든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공포, 디지털 성폭력 범죄의 심각성은 거기에 있다.

뉴스타파는 한 10대 여성의 일상에 불현듯 들이닥친 디지털 성폭력 사건을 추적했다. 사건은 디지털 성폭력의 전형적인 지점들을 관통했다. 피해 장소는 피해자가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건물의 화장실, 범행도구는 휴대폰이었다. 피해자의 고통에 비해 우리 사회가 가해자에 대해 내린 대한 처분이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점도 전형적이다. 취재는 CCTV의 한 장면에서 시작됐다.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얼굴의 남성이 화면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 피해자 신원 보호를 위해 가명, 영문 이니셜 등을 사용했습니다.

# CCTV

2020년 7월 7일 오후 5시경.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미영 씨(가명)는 하교 후 인근 상가건물의 스터디 카페를 찾았다. 공부를 하다가 카페 옆에 위치한 공용 여자 화장실을 이용했다.  

▲ 사건 당일, 김 씨(가명)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 공중 여자화장실로 올라가는 장면이 상가 CCTV에 찍혀있다. 

미영 씨가 화장실을 이용하기 30분 전, 같은 층 CCTV 화면에 줄무늬 셔츠를 입은 한 남성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모습이 잡혔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듯 귀에 휴대폰을 바짝 대고 있다. 이내 CCTV 화면 밖으로 벗어난 남성은 뜻밖의 장소로 향한다. 미영 씨가 이용한 그 공용 여자 화장실이었다.

경찰 수사와 피해자의 증언 등을 종합한 당시 상황은 이렇다. 이 남성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가운데 칸에 머물렀다. 옆 칸에 누군가 들어오자 이 남성은 화장실 칸 아래로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화장실 칸에 있던 미영 씨는 이 모습을 목격했다. 놀라서 화장실 칸을 벗어나 휴대폰을 들이민 가운데 칸을 주시했다. 친구와 통화하고, 경찰에도 신고했다. 대치 상황은 30여 분간 계속됐다.   

남성은 침묵을 깨고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더니, 건물을 벗어나서는 전력으로 달렸다. 미영 씨는 그를 계속 쫓았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울먹였다. 그래도 경찰과 계속 통화하며 남성의 위치를 알렸다. 결국 갈림길에서 상대를 놓쳤다. 경찰은 그때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범인은 사건 발생 13일이 지나도록 잡히지 않았다. 중학생에 불과한 미영 씨는 그사이 견디기 힘든 고통에 시달렸다. 범인이 누구고, 무엇을 찍었는지 알 수 없었다. 무한의 인터넷 공간, 특정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상이 퍼져나가는 상상을 했다. 사건이 동네 사람들의 입길을 타기도 했다. 사건에 대해 쑥덕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영 씨의 고통은 깊어졌다.  

그 사건이 있고, 아파트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는데, 뒤에 아주머니 두 분이 그 일을 얘기하더라고요. 여기 뭐 누구 ‘몰카’ 나왔던데. 그런데 갑자기 제 이름을 말하면서 걔라던데 하는 거예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입에서 제 이름이 나오니까...
- - 피해자 박미영 씨 (가명)

사건을 담당한 경찰서는 사건 발생 9일째 피의자를 특정했다. 14일째, 피의자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범행에 사용된 휴대폰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 불법 촬영 범행 직후, 상가 밖으로 도주하는 김 씨의 모습이 상가 CCTV에 찍혀있다. 

#사라진 휴대폰

피의자는 사건 현장 인근의 A 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김 모 씨(가명)였다. 김 씨는 경찰 조사를 받기 5일 전 휴대폰을 바꾼 상태였다. 이전에 쓰던 휴대폰은 이미 중고거래로 판매해버렸다고 주장했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휴대폰을 구매한 사람의 인상착의, 대금 지급 방법, 판매 장소와 시각까지 구체적으로 답변했다. 꾸며낸 말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곧 진술의 허점을 찾아냈다. 중고거래 업체를 통해 확인한 김 씨의 가입 날짜는 첫 피의자 조사를 받은 다음 날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휴대폰이 사건의 핵심 증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경찰이 수사망을 조여오는 13일 사이, 그는 휴대폰의 행방을 묘연하게 만들 방법을 궁리했다. 거짓 진술은 들통났지만 휴대폰의 행방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통신사 조회도 기기의 전원을 끈 상태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문) 2020.7.20 임의동행되어 조사를 하고 나서 다음날인 2020.7.21. ㅇㅇ 마켓을 최초 가입했다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피의자가 2020.7.20. 다음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가입한 것이 아닌가요.

(답) 아닙니다. 휴대폰 구매자를 찾으려고 가입했던 것입니다.
- - 피의자 신문조서, 2020.10. 30

김 씨는 범행 일체를 부인했다. 심지어 CCTV에 찍힌 모습도 자신이 아니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이 벌어진 상가 건물에 간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의견서를 통해 사건 당시 김 씨는 의대 시험을 치른 후 주거지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고 알리바이를 댔다. 시험을 잘못 본 것에 대하여 자책하며 아파트 통로 계단에서 쪼그려 울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을 재연한 사진도 찍어 제시하기도 했다. 누군가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고 범행을 저질러 자신을 모함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 김 씨(가명)는 범행 시각, 자신의 주거지 통로 계단에서 울고 있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다음은 김 씨의 변호인 의견서에 첨부된 김 씨 본인의 재연사진이다. 

수사기관은 범행 당시 학교에서부터 범행 현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선이 담긴 CCTV를 확보했다. CCTV 속 인물이 동일인인지 전문기관 등에 감정 의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CCTV 속 인물의 얼굴, 신체, 착의 및 걸음걸이를 볼 때, 화면 속 인물이 김 씨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김 씨의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동일인 감정서 중 일부

지난해 3월, 기소를 앞두고 돌연 김 씨는 진술이 바꾼다. 화장실에 들어간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불법 촬영 목적이 아니라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휴대폰 카메라를 칸 아래로 들이밀었던 건 자신이 들어온 곳이 여자 화장실인지 확인하려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모든 증거가 자신을 가리키는 상황 속에서 피의자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지난해 6월, 김 씨의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이었다. 불법 촬영을 한 사실은 인정됐지만 범행의 증거인 핸드폰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범행은 미수가 됐다. 양형에도 범행 미수가 피고인에 유리한 정황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정보 고지 및 공개 명령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김 씨의 변호를 맡은 로펌은 이 선고를 승소 사례로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휴대폰을 칸 아래로 들이민 것이 장소를 확인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변론을 펴서 양형을 유리하도록 이끌었다는 내용이다. 김 씨의 변호인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피고에게 어떻게 말하라고 조력한 바는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변론을 통해 실형이 선고될 수 있는 것을 막았다는 내용을 홈페이지를 통해 홍보한 것인데 무슨 문제가 되냐고, 취재진에게 되물었다. 로펌 홈페이지에는 김 씨의 사건 뿐만 아니라 여러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변호해 유리한 양형을 끌어냈다는 사례들이 '전시'돼 있었다.

▲ 김 씨의 사건은 현재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해당 로펌은 홈페이지 개편작업의 일환으로 변경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진실

판결은 정의로웠을까. 고의로 핵심 증거인 휴대폰까지 없앤 가해자에게 범행 미수라는 섣부른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닐까. 디지털 성범죄의 공포가 나날이 커지고 범죄의 단서는 더 찾기 힘들어지는 데, 법은 매번 휴대폰이 사라질 때마다 면죄부를 내어줄 것인가. 뉴스타파는 판결이 다루지 못한 이 사건의 이면을 추적했다.

취재진은 설득 끝에 김 씨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것이 불법 촬영의 목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재판 때와 동일한 입장이다. 범행에 사용한 휴대폰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그는 중고거래로 휴대폰을 팔았다는 진술을 번복하고 어딘가에 버렸다고 말했다. 김 씨는 휴대폰에 촬영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휴대폰이 압수당하면 죄가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버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압수한 김 씨의 노트북에서 2,452개 검색어를 확인했다. 여성의 속옷과 관련된 검색어와 인근 여성 화장실에 대해 검색 기록이 발견됐다. 여죄를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지만, 핵심 증거인 휴대폰이 사라지면서 수사는 멈춰 섰다.

(찍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려면 휴대폰을 제출하는 것이 결백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었을까요?)지금 와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근데 당시에는 그쪽 지식이 워낙 없고, 그거를 그때 제출한다고 그게 구별 가능한지도 몰랐고요.(그럼 촬영이 되기는 했나 보네요? )촬영은 안 됐죠. 촬영은 안 됐는데. 제가 나중에 제출한다고 ‘안 했다’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을 그때 못했거든요. 압수당하는 것만으로도 없지만 그냥 그렇게 인정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 - 김 씨 (가명)와의 통화 내용 중    

김 씨는 1심 선고에서 청소년 관련 기관 등과 장애인 복지시설에 대한 취업을 3년간 제한한다는 명령도 함께 받았다. 의료기관도 해당 취업 제한 시설에 속한다.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김 씨는 형이 과하다며 항소했다. 1심이 진행되는 내내 침묵하던 김 씨는 항소 이후에야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피해자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의 늦은 사과를 진심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

#하굣길

미영 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쳐야 하는 길목이 있다. 어김없이 범행이 벌어진 상가 건물을 마주해야 한다. 도주하던 가해자를 뒤쫓던 터널도 지나쳐야 한다. 화장실 칸 아래에 보이던 휴대폰 카메라, 도망치는 가해자, 도착하지 않는 경찰 같은 기억이 때마다 일어난다. 

미영 씨는 재판에 참석해 방청석에 앉아있었다. 선고를 읽을 때도 가해자를 지켜봤다. 하지만 재판 내내 피해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그저 범행을 부인하고 선처를 호소하는 김 씨의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법과 정의가 고통을 덜어줄 것이라 믿었다. 1심 선고는 그간 힘겹게 버티던 미영 씨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누가 아무리 이해를 하고 공감을 해준다 해도, 제 기분은 모르는 거잖아요. 전 아직 없어요. 그냥 감정을 해결할 수 없어요.
- - 피해자 박미영 씨(가명)

미영 씨의 아버지는 사건을 겪으며 아내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사건은 아내의 첫 기일을 며칠 앞두고 벌어졌다. 딸은 며칠 밥도 먹지 못하고 울었다. 어떤 말로 어떤 위로를 해줘야 할지 몰랐다. 엄마가 옆에 있어줬다면 미영이는 덜 아프지 않았을까, 아버지도 함께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사건의 범인만 잡으면 괜찮아지겠지, 범인이 재판에 넘겨지면 나아지겠지, 범인의 선고가 나면 좋아지겠지 생각하며 버텼지만 1심 판결이 나오고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법은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묻지 않는다. 가해자에게 그렇게 여러 번 묻고 사정을 들어주지만, 피해자의 고통은 양형에 반영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법정에서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서 퍼부었다.

피해자는 어디 간 거예요?피해자의 발언권은 왜 없는 거예요?재판 중에서라도 피해자가 있으면 한마디 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 사람이 이렇게 잘못했다고 시인했는데, 피해자에게 ‘어떻습니까’, 물어보지도 않고. 하소연할 데가 없어요. 이런데 밖에...
- - 피해자 아버지

#가해자의 사정들

판결문에는 다양한 사정들을 피고인에 유리한 양형 사유로 다루고 있다. 김 씨가 초범이고, 뒤늦게 범행을 자백하며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참작했다. 그 자백과 반성이 매우 늦었다는 사실은 거론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범행이 미수에 그쳤다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적시했다. 범행의 미수라기보다는 피고인이 고의로 증거인 휴대폰을 인멸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만, 판결문에 이 부분은 거론되지 않았다. 그 밖에도 피고인의 연령, 성행, 환경,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백소윤 변호사는 가해자 중심적 양형 평가의 문제를 지적했다. 초범, 사회초년생 등 양형으로 고려된 인자들을 모든 상황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법원의 문제가 단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백 변호사는 “가해자 김 씨가 범행에 사용한 휴대폰을 스스로 유기하여 미수에 이르렀으므로 증거인멸 의도가 있었기에 유리한 정상이 아닌 불리한 사유로 이해됐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의대생이라는 직업적 특수성을 고려해 가중 처벌을 하는 것이 필요한 데도, 재판부는 이점을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판결문에 피고인의 불리한 정황은 피해자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는 것 하나뿐이다. 피해자의 고통은 양형에 반영되지 못할뿐더러, 피해자의 고통을 측정해 양형 자료로 제출하는 것은 어렵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피해자 등의 신청이 있으면 법원은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증인 신문 방식에 의해서만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할 수 있다는 의미다(제294조2). 이렇다 보니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고, 새롭게 제기할 증거가 없는 상황이면 피해자의 진술 기회는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 대구지법 류영재 판사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공판이 이처럼 피고인의 변론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는 법원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변명의 여지없는 법원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판사들 입장에서는 재판을 진행하는 내내 피고인의 호소를 듣거든요. 법정에서 표정으로 호소하든, 말로 호소하든 서명과 자료로 호소하든.이 범죄는 피고인의 입장에서 이렇게 저지를 수밖에 없었구나, 혹은 저질렀어도 피고인이 지금은 그에 대한 책임을 이런 식으로 느끼고 있구나. 친밀감이 어느 정도 형성이 되는 거죠.근데 문제는 피해자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절차는 재판 절차에서 사실상 보장이 안 되는 거예요. 
- - 류영재 현 대구지법 판사

실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1심 형종을 보면(2016~2020) 벌금형이 53.64%에 달했고 실형은 9.37%에 불과했다.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의 경우(2014~2018) 실형의 비율은 5.2%로 더 낮아진다.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의 경우 벌금형이 60%가 넘는다.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TF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오민애 변호사는 “재범방지 효과가 사실상 매우 부족했다는 것이 데이터로 드러났고, 재판부의 선고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분노와 요구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 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8년 검찰처분 현황을 보면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대한 불기소 건 수가 51.8%, 그 가운데 기소유예가 47.3%에 달했다. 사건 가운데 39.5%만이 기소되는데, 기소되더라도 정식재판으로 가는 대신 약식명령으로 청구하는 구약식 처분이 35.3%였다. 

류영재 판사는 디지털 성범죄를 경원시해 온 것은 법조계 전반의 문제라고 말했다. 류 판사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부터 사죄하고 판사의 한 사람으로서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또 사회가 끊임없이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비판하고, 재판에 대해 판사들이 몰랐던 지점을 이야기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래야 사법부도 반응하고,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가 디지털 성범죄를 굉장히 경원시하던 판사 중의 하나였어요. 저의 과거 판결을 찾아보시면 분명히 비판이 쏟아질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도 문제의식이 없었으니까. 저뿐 아니라 보통 우리 법조계의 주류적 인식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전 하고 있고. 판사들이 몰랐던 지점을 알려주는 비판이 계속될수록 사법부도 반응한다. 사법부의 몰랐던 판사 중의 한 명으로서 사죄드리고 반성하는 모습은 보여야 한다, 이런 생각도 했어요. 
- - 현 대구지법 류영재 판사

#미영 씨의 당부

2년이 지났지만 사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작년 6월, 1심 선고 이후 검찰과 김 씨 측 쌍방이 모두 항소했다. 현재 항소심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피해자 가족은 김 씨가 소속된 학교에도 징계를 요구했지만 학교는 판단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미 두 차례 징계 결정을 보류했다. 법원의 판결도, 학교의 징계도, 피해자의 고통도, 치유도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채 고통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미영 씨는 자신의 피해 사건을 뉴스타파에 알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미영 씨는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성인이 중학생한테 이렇게 직접적으로 온라인도 아니고 오프라인에서 이렇게 하는 건 거의 들은 적이 없었단 말이에요.차라리 알면 그래도 저보다는 낫지 않을까. 알려지면 좋겠다.사람들이 분노해 줬으면 좋겠어요.
- - 피해자 박미영 씨 (가명)

뉴스타파 김새봄 springns@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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