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담 불발됐지만..'휴가중' 尹, 펠로시와 "전화회담" 막전막후(종합)
中의식 관측엔 "대만 방문은 1주일 뒤 결정, 中의식 아냐"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이동환 기자 = 여름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방한 중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직접 만나는 대신 4일 오후 전화 통화를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초동 자택에서 펠로시 하원의장과 오후 2시30분부터 약 40분간 통화를 했다. 미국 측에서는 펠로시 의장을 비롯해 방한에 동행한 하원 의원 5명,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등이 '스피커폰' 방식으로 통화에 함께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전하며 '전화 회담'이라는 표현을 썼다. 또 "확대회담 식의 통화"라고도 부각했다.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 만나지 않은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종일 논란이 이어진 가운데 통화의 외교적 의미를 최대한 부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통화 일정은 대통령실이 이날 오전 취재진에게 공지했다.
여야 정치권 일각에서 윤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도 미국 의회의 1인자이자 의전서열 3위인 펠로시 의장을 만나야 한다는 의견이 터져나오는 시점이었다.
미국 하원의장 방한은 2002년 데니스 해스터트 당시 의장 이후 20년 만이다
대통령실은 전날 펠로시 의장 방한이 윤 대통령의 휴가 기간(1∼5일)과 겹쳤기 때문에 별도의 만남 일정을 잡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통화 예고는 없었다.
급작스러운 통화 공지가 또다른 논란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대통령실은 펠로시 의장과의 통화 조율 과정을 상세히 공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약 2주 전에 펠로시 의장의 동아시아 방문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윤 대통령과의 만남이 가능하냐는 문의가 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때 마침 (윤 대통령의) 지방 휴가 계획을 확정해놨기 때문에 휴가 기간을 변경하면 좋겠지만, 꼭 그 기간에 서울에 오신다면 힘들지 않겠느냐고 (답하면서) 2주 전에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당초 2∼3일 지방에 머물며 민생 현장 방문 등을 계획한 바 있다.
그러나 휴가 첫날인 지난 1일 휴양지 방문을 전면 취소하고 서울에 머물면서 펠로시 의장과의 깜짝만남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짧은 일정에 식사라도 대접하는 게 마땅한 도리"라면서도 펠로시의 방한 반나절 동안 이미 국회에서 식사 일정이 잡혀있고 이후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까지 방문하는 빡빡한 일정을 고려해 통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윤 대통령이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지만, 전화라도 따뜻한 인사를 하고 싶다"는 의향을 이날 아침에 일찍 타진했고, 펠로시 의장도 흔쾌히 응하면서 이날 오후 장시간 통화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최영범 홍보수석은 통화에 앞선 브리핑에서 '통화가 펠로시 의장이 방한한 뒤 조율된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런 (통화) 의사를 갖고서 의중에 담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갑자기 만들어진 일정은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초 펠로시 의장의 '카운터파트'는 우리나라 국회의 수장이자 국내 의전서열 2위인 김진표 국회의장이란 점도 대통령실은 강조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이날 YTN 라디오에서 "국회의장이 파트너인데 윤 대통령이 휴가 중에 (펠로시 의장을) 만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이 만남에 다소 소극적 태도를 보이자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직후인 점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고개를 들었다.
중국과의 관계에 따른 외교적 부담을 감안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펠로시 의장 대만 방문은 (만남을 갖지 않기로 한 뒤) 약 1주일 뒤에 결정됐고, 따라서 우리가 만나지 않은 것은 중국을 의식해서가 아니라고 간단히 말씀드린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선후관계가 다르다는 취지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결정 이전에 이미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던 만큼 '대중관계'는 변수가 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야권에서는 '패싱 논란'이 이어졌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미 권력 서열 3위인 하원 의장이 왔는데 대통령이 안 만난다는 것은 얘기가 안 된다"라며 "꼭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쪽에서도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동맹국 미국의 의회 1인자가 방한했는데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회동 여부를 두고 혼선이 일었던 과정을 비판하는 의견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국회 정책조정회의에서 "펠로시 의장이 다른 나라에서 정상을 만나고 방한했는데,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만남을 조율한다고 했다가 다시 번복했다"며 "아마추어 국정 운영"이라고 비판했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다소 결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우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휴가 중이어서 (펠로시 의장을) 안 만난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이라면서도 "미국이 중국과 상당한 마찰을 빚고 방한하는 것인 만큼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김의겸 의원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펠로시를 만나는 것은 미중 갈등에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것으로, 그를 슬쩍 피한 건 유일하게 잘한 일"이라며 우 위원장과 견해를 같이했다.
다만 "문재인 정부를 향해 '친중 굴종외교'란 말은 입에 담지 말라"고 했다.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은 것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전략으로 평가할 만하지만, 그와 같은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dh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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