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혁신기업] "반려 단백질·평생 친구와 가는 길.. 노화 막는 '게임 체인저'될 것"

안경애 2022. 8. 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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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노화 신약 스타트업 '하플사이언스'
30년 매달린 인지질분해효소 실패가 밑거름
만성폐쇄성 폐질환 근본적 치료에 큰 기대감
골관절염·안구건조증·탈모 치료 가능성도 커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으로 트렌드 바꿀 것
김대경 하플사이언스 공동대표. 박동욱기자 fufus@
하플사이언스 연구원들이 '하플' 단백질을 이용해 만성폐쇄성 폐질환, 골관절염 등 노화로 인한 질병을 극복할 수 있는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다. 박동욱기자 fufus@

"이 정도면 '반려 단백질'이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세계에서 최초로 발견해 '하플'이란 이름을 붙여줬고, 아무도 알지 못했던 구조와 기능을 밝혀냈을 뿐 아니라 환갑을 넘긴 나이에 하플의 이름을 딴 신약개발 회사까지 창업했으니까요."

김대경 하플사이언스 공동대표(65, CSO·최고과학책임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1994년부터 중앙대학교 약대 교수로 재직하며 일생을 연구자로 살아온 김 대표는 2018년 11월, 정년을 2년 앞두고 서울대 약대 동기이자 절친인 최학배 대표(CEO)와 하플사이언스를 공동 창업했다.

김 대표가 연구자의 길을 걸어왔다면 최 대표는 산업 현장에서 신약개발과 상업화 전문가이자 기업가로 활약했다. 1985년 JW중외제약에 입사해 개발, 마케팅, 글로벌사업 부서에서 일하고 부사장까지 역임한 그는 JW중외제약이 일본 주가이제약과 합작 설립한 C&C신약 대표를 거쳐 한국콜마 제약부문 대표를 지냈다.

◇절친에서 동업자로=친구 사이인 두 사람을 동업자로 묶어준 것은 김 대표가 2014년 세계 최초로 발견해 명칭까지 붙인 단백질 '하플(HAPLN1)'이다. 노화를 극복할 열쇠를 혈액 내 단백질에서 찾던 그는 하플을 발견한 후 그동안 해 온 신기능 단백질 분리정제, 특성분석, 약물타깃 검증 연구를 과감히 접고 하플을 파고들었다.

김 대표는 "젊은 쥐와 늙은 쥐의 피를 서로 통하게 하면 늙은 쥐의 피부가 젊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실험과 연구를 거쳐 늙은 쥐의 피부를 과거로 돌려주는 주인공이 하플 단백질이란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하플은 사람과 동물의 혈액이나 조직 내 세포외기질에 폭넓게 존재하는 항노화 단백질이다. 항노화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콜라겐, 히알루론산을 생성해 노화로 인해 손상된 조직을 복구해 준다. 김 대표는 혈액 속 단백질 1129종을 뒤져 하플을 포함한 5개 단백질을 찾아내고, 그 중 하플에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연구에 집중했다. 하플을 이용하면 피부, 눈, 관절, 모발 등의 시계를 과거로 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노화로 인한 각종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가능성이 있다.

◇실패한 연구가 밑거름이 되다=뭔가에 꽂히면 밤낮과 주말을 잊고 치열하게 파고드는 김 대표가 사실 30년간 고민하고 매달린 과제는 인지질분해효소였다. 1986년부터 4년간 도쿄대 대학원에서 생명약학 박사과정생으로 있으면서 세계 최초로 발견한 인지지질분해효소 '포스포리파아제(phospholipase) A2'를 정제하고 구조를 밝혀 인류에 유용한 도구로 활용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인지질분해효소는 인체 내 염증반응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이를 정복하면 각종 염증질환을 극복하는 길을 열 수 있다. 김 교수는 일본에서 돌아와 포항공대 전임강사, 하버드대 연구교수를 거쳐 중앙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30여 년간 이 주제에 집중했다. 그러나 청춘을 바쳐 씨름했음에도 결과는 실패였다.

김 대표는 "중앙대에 야전 침대 3개를 놓고 제자들과 함께 24시간 연구에 매달리고, 서울 마장동, 독산동 우시장을 전전하며 소나 돼지의 조직과 혈액을 확보해 치열하게 연구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워낙 함량이 적고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없이 반복한 실험과 실패는 전화위복이 돼서 하플 발견과 연구의 밑거름이 됐다.

◇노화 시계를 되돌리는 '하플'=하플이 제대로 작동하면 노화로 인한 각종 질병과 증상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연골 퇴화로 일어나는 골관절염, 폐포에 문제가 생기는 COPD(만성폐쇄성 폐질환)이 대표적이다. 그밖에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하플사이언스는 이 두가지 질환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산업적으로 활용하기 좋게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rhHAPLN1)을 개발하고 이를 대량 제조할 수 있는 공정도 갖췄다. 개발한 단백질을 노화된 쥐에 주입하자 쥐의 피부조직이 젊어지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플은 체내에 있던 단백질이다보니 적정 농도를 유지해 투입하면 부작용도 없었다.

생명공학·약학분야의 대가와 산업화의 달인이 만난 덕분에 R&D와 산업화는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 김 대표는 연구 초기부터 논문 발표를 최소화하고 특허등록에 집중하며 사업화를 준비해 왔다. 관련 기술은 현재 국내와 미국, 유럽에서 특허등록을 끝냈다. 회사에는 JW중외제약, 한미약품, 녹십자 등 국내외 기업에서 일한 인력들이 임원진으로 포진했다. 최 대표는 CEO로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김 교수는 CSO로 연구개발 전체를 이끈다. 연구개발 조직에는 김 교수의 제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노화연구, 독성, 임상연구를 하고 있다.

◇만성폐쇄성 폐질환 근본적 치료 기대=가장 앞서 나가는 것은 COPD 치료제 'HS-401'이다. 내년 상반기 글로벌 임상시험을 시작하는 게 목표로, 현재 임상 1상 설계작업을 하고 있다. 글로벌 CRO(위탁시험기관)와 협력해 흡입독성 시험도 진행 중이다. 비임상시험과 임상시험 준비는 올해 중 끝낼 예정이다.

COPD는 장기간에 걸쳐 기도가 좁아지는 질환으로, 흡연, 분진, 화학물질, 대기오염, 호흡기 감염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세계에 약 3억8000만명의 환자가 있고, 전체 질병 중 세번째로 가장 흔한 사망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는 기관지 확장제, 흡입형 스테로이드 등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제에 의존할 뿐 증상을 개선하거나 손상된 폐포를 회복시켜 질병 진행을 억제하는 치료제가 없다.

실험 결과 HS-401은 폐포 벽의 탄성을 조절하는 엘라스틴과 콜라겐의 양을 늘리고 멈춰있던 세포주기를 정상화해 폐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시에 산화 스트레스를 낮추고 염증 반응도 줄었다. 특히 단백질 분해효소인 PPE(췌장엘라스타아제)로 폐기종을 유도한 급성 폐기종 실험 쥐에서는 폐 조직이 90% 이상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대표는 "기존 제품들에 비해 확실한 장점이 있는 만큼 성공적인 비임상시험 완료를 위해 최종 점검·보완작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임상 진입 후 글로벌 기업과 기술이전 계약을 맺고 공동 개발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게 목표다.

◇노화로 인한 관절염 치료도 기대=골관절염 치료제 'HS-101'의 비임상시험도 올해 완료할 계획이다. 골관절염은 노화, 외상 등의 이유로 관절 연골이 소실되고 기능을 상실하는 질환으로, 세계적으로 3억명 이상이 앓고 있다.

현재 통증이나 염증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키는 진통제나 스테로이드 주사 등 약물 치료를 하지만 증상이 심해지면 적절한 치료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약물 치료에 의존하다 결국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연골을 재생해 근본적 치료가 가능한 약물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를 쏟아붓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HS-101은 연골 분해 과정과 염증 반응을 억제하고 조직 재생에 필요한 '아그리칸(aggrecan)'과 콜라겐을 생성해 연골 형성을 촉진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하플 단백질이 늘어나면 특정 신호 전달과정이 활성화되면서 연골 재생 관련 유전자가 증가한다는 사실도 검증됐다.

김 대표는 "HS-101가 골관절염 수치와 통증을 확연하게 감소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경쟁개발 약물인 SM04690에 비해서도 우월한 통증 감소효과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플사이언스는 비임상시험을 끝내고 내년에 주사제 형태로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어 2024년 임상시험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골관절염 전문 글로벌 CRO와 협업해 추가 시험을 하고 있다.

◇안구건조증 치료와 예방을 동시에=안구건조증 치료제로 개발하는 'HS-601'에 대한 기대도 크다. 노화, 만성 결막염, 갑상선 질환 등으로 인해 발병하는 안구건조증은 2020년 기준 세계적으로 약 15억명이 앓을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다. 2027년에는 환자가 17억명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는 근본적 치료제가 없다 보니 인공눈물, 항염증제 등을 통한 일시적 증상 완화에 만족하는 수준이다. 약물 치료는 약효를 얻기까지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리고, 그마저 독성과 부작용이 심각하다. 이 때문에 다양한 발병원인을 고려한 복합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근본적인 약효를 발휘하는 치료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HS-601은 안구건조증으로 손상된 안구 조직을 회복시키고 염증을 개선하면서 부작용과 이물감이 없는 근본적 치료제로 주목 받는다. 특히 뮤신 분비를 촉진하고 산화 스트레스를 낮춰 치료와 예방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게 강점이다.

김 대표는 "HS-601은 안과용 제제 전문기업과 공동 개발전략을 펴고자 한다. 9월중 토끼를 대상으로 한 시험결과가 최종 정리되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면서 "조속한 제품개발을 위한 비임상시험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피부노화·탈모 치료 효과도 확인=IPF(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인 'HS402'도 섬유화 진행 70% 이상 감소, 섬유화 수치 50% 이상 감소가 확인돼 근본적인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노화로 인해 손상된 표피와 진피 조직을 회복해 주름을 감소시키고 피부 탄력을 높이는 피부노화 치료제 'HS-201'도 개발하고 있다. 자체 실험 결과 수분량 회복, 표피 두께 정상화, 주름 개선 등의 효과를 확인했다. 현재 피부노화를 막기 위해 쓰이는 스킨 부스터, 보톡스, 필러 같은 방법에 비해 효과가 좋으면서 부작용과 부자연스러움은 적은 치료제를 선보이는 게 목표다.

하플의 효과는 탈모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현재 주로 쓰이는 탈모치료제는 두가지 정도로,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 역시 약효, 부작용, 투약 번거로움 등의 문제가 있다. 여성 탈모, 남성 M자형 탈모 등 기존 약제로 치료가 힘든 탈모 유형을 타깃으로 치료제를 내놓는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신약개발 기업은 개발 중인 제품의 권리 판매, 제품 개발을 위한 원료나 물질 판매, 신약 판매를 통해 매출을 얻을 수 있는데 하플사이언스의 첫 상용화는 올해말이나 내년초 안과전문회사와의 HS-601 협업을 통해 일어날 전망"이라면서 "이어 연계된 매출이 발생하고, 본격적인 신약 판매는 임상시험을 거쳐 2030년께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으로 게임 체인저 되겠다"=회사의 가능성을 알아본 투자자들은 대규모 자본을 실어주면서 R&D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플사이언스는 설립 후 반년만에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은 데 이어, 2020년 DSC인베스트먼트, 컴퍼니케이, 중소기업은행, 스틱벤처스, 라이프코어파트너스, 메가인베스트먼트, 알바트로스인베스트 등으로부터 230억원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자체 개발 전략과 기술 이전 및 협업을 통한 상품화 전략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2025년 코스닥 입성도 계획하고 있다.

김 대표는 "자체 개발한 항노화 신약발굴 플랫폼과 오픈 이노베이션 시스템을 바탕으로 노화 관련 질병 퇴치를 이끌겠다"면서 "손상된 조직을 재생시키는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을 통해 시장의 트렌드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되겠다"고 밝혔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사진=박동욱기자 fuf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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