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 탄탄해 독자생존 충분 vs 시장논리로는 파산 못 막아

문광민 2022. 8. 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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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③ 독자생존
경기변동 큰 조선업 특성상
선뜻 나설만한 매수자 없고
지난해부터 업황 다시 고개
정부 결단땐 정상화 가능성
시나리오 ④ 청산
투입된 공적자금 12조 달해
노조 몽니에 강경여론 고조
파산땐 2만명 일자리 소멸
中에 LNG선 고객 뺏길수도

◆ 대우조선 처리 어떻게 ◆

지난달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2000년대 초반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이어졌던 조선업 호황기는 중국의 경제 성장에 따라 물동량이 늘고, 이로 인해 선박 발주량이 크게 증가한 영향이 컸다. 최근 다시 찾아온 수주 호황에는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선박 교체 수요가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10년가량은 신규 선박 발주가 꾸준히 이어질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선 대우조선해양을 처리할 시나리오로 '독자생존'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매각을 통해 새 주인을 찾아주는 대신에 대우조선의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만들고, 언젠가 국민주 매각 방식으로 KDB산업은행이 보유한 지분을 시장에 내놓자는 게 독자생존 시나리오의 골자다.

정성립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대우조선은 독자생존이 가능한 기반을 갖췄다. 산업은행과 정부가 판만 깔아준다면 대우조선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력과 영업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당장 적자가 나고 있다는 이유로 대우조선을 독자생존이 불가능한 회사로 단정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지난해부터 수주 물량이 늘었고 선가도 높아졌다. 대우조선은 조만간 다시 흑자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사장은 과거 10년간 대우조선을 이끌었다. 2001~2006년 사장을 지내고 물러났지만 조선업 침체와 분식회계 등으로 휘청거리던 회사를 살리기 위해 2015년 재등판해 2019년까지 경영 정상화를 추진했다. 그는 "현재 상황에선 어떤 기업도 대우조선 인수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경기 변동성이 큰 조선산업 특성상 언젠가 닥치게 될 불황 한파를 감내하면서까지 대우조선을 인수할 만한 기업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 전 사장은 "회사 상황이 좋았을 땐 매각하려는 열의가 없었고, 회사가 어려워졌을 땐 인수할 기업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독자생존 방안은 조선업황이 고꾸라질 경우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이 또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면 산업은행이 공적자금을 수혈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이미 대우조선에 공적자금 7조1000억원, 자본 확충(출자전환 유상증자) 4조7000억원 등 총 11조8000억원을 투입한 산업은행 입장에선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지난달 정부와 채권단 일각에선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으로 피해 규모가 커지자 파산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강경한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엔 대우조선이 '밑 빠진 독'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공적자금 지원이 없었다면 대우조선은 존립이 어려웠다. 시장 논리대로라면 대우조선은 이미 청산됐어야 할 기업"이라며 "부실기업을 살리기 위해 국내 조선사 전체가 고통을 분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우조선 청산 시나리오는 파급 효과가 너무 커 실제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빅3' 체제에서 대우조선이 사라지면 국내 기자재 업체들이 줄도산하고, 조선업 생태계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청산 시나리오는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라며 "기자재 업체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결국은 조선업계 전체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조선업은 전후방 효과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기존 인프라스트럭처를 잘 유지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주도권을 끌고 갈지 고민해야 한다"며 "대우조선이 지난 50년간 쌓아온 인프라와 기술력을 한순간에 허무는 불상사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이 청산될 경우 선박 수요를 국내 조선사가 가져가리라는 보장도 없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핵심으로 꼽히는 화물창이 일례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마크3(Mark-Ⅲ)' 방식의 설계를, 대우조선은 'NO96' 방식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만약 대우조선이 사라진다면 NO96 방식의 화물창을 선호하는 선주들은 공정 관리를 강화하는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중국 조선사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지역사회 반발과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점도 대우조선 청산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을 낮춘다. 대우조선 옥포조선소에는 직영 9700여 명, 사내 하청 1만1000여 명 등 약 2만명의 일자리가 달려 있다.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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