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여가부 폐지' 방침에, 국제여성단체 "취약한 여성 권리에 큰 위협"

입력 2022. 8. 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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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 시민사회 단체들이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공동 NGO 보고서 살펴보니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여가부 폐지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25일 지시사항으로 현 정부 여가부 폐지 의지가 재확인된 가운데, '윤 대통령의 반 페미니즘 인식'이 "가뜩이나 취약한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 운동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국제 시민사회의 지적이 나왔다.

지난 1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4차 한국 UPR 아시아·태평양 여성시민사회 공동보고서'를 공개하며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국제 여성·시민사회 단체들이 "한국 여성들이 겪는 경제·사회적 차별을 부정하는 윤 대통령의 입장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

해당 보고서는 2023년 한국정부 심의가 예정된 국제연합(UN)의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를 앞두고 작성된 것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30개 국가 265개 여성단체 연합체인 '아시아·태평양 여성과 법 개발 포럼(APWLD)', 한국여성단체연합, 유엔인권정책센터가 지난달 14일 UN에 공동으로 제출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폭력은 '안전 문제'? … "가부장제와 성 고정관념"이 성폭력 유발

지난달 24일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같은 달 15일 발생한 '인하대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학생 안전의 문제지, 또 남녀를 나눠 젠더갈등을 증폭하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APWLD 등은 이번 보고서에서 현 정부의 이 같은 현실 인식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성폭력은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유해한 성 고정관념"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며, 그러한 성폭력을 제대로 방지하고 소거하기 위한 정책 및 사법적 노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예산 및 인력의 투입 등이 한국사회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지난 2020년 세상에 드러난 텔레그램 성착취(소위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를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젠더폭력 문제로 지적했다.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2020년 국내 기소 건수가 2003년 대비 11배 증가(국제앰네스티)했으며, △성폭행 과정에서 촬영되거나 △동의 없이 촬영되거나 △동의 없이 유포되거나 △조작·합성된 이미지들이 "수익을 창출하는 데 사용"(휴먼라이츠워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가 지속·증가하는 이유로 △불법촬영 사진, 영상 등의 '판매' 구조 △성적 순결의 이미지가 여성의 평판과 직결되는 문화 △피해자 지원센터의 인력 및 훈련 부족 △사건 방지를 위한 당국과 소셜미디어 플랫폼 간의 협업 부재 △성범죄 기소 과정의 결함과 불충분한 처벌 등을 제시했다.

'여성폭력에 대한 언론, 사법부, 정치권 등의 태도' 등이 사건의 구조적 원인이자 "공범"으로 자리한다는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의 발언(7월 16일)이나 "성폭력은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고, 성차별적 통념이 범죄 발생에 중요한 이유인 가장 전형적인 여성 폭력"이라는 권인숙 의원의 발언(7월 27일)과도 맞닿아 있는 인식이다.

한편 여성 대상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는 이번 '인하대 성폭력 사건'에서도 경찰이 가해자의 휴대전화에서 발견한 영상을 토대로 가해자에게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를 추가하면서 화두가 된 바 있다.

김 장관은 24일 발언에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남성 피해자 비율이 20%가 넘는다"며 이를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 갈 게 아니"라고 언급했지만, 검찰 통계상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의 94%가 남성인 점, '몸캠피싱'에 집중된 남성 대상 범죄와 직접적 성폭행은 물론 '성착취를 통한 수익구조'와 직결되는 여성 대상 범죄를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점 등이 해당 발언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 심각한데 … "반 페미니스트 대통령, 성평등에 위협"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페이스북 갈무리.

단체들은 이외에도 OECD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격차,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 등을 들어 "여성들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불평등과 차별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남성의 중위소득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중위소득의 차이'로 정의하는 OECD 기준 성별 임금격차에 관하여, 한국은 OECD 통계상 1995년부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8년 시중은행 채용 성차별(관련기사 ☞ 성차별·가족찬스 채용비리 은행원들은 여전히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2020년 언론사 채용 성차별(관련기사 ☞ '남녀고용평등법'은 있는데...대전MBC 채용 성차별 못 막은 이유는) 등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의 성차별, 낙태에 대한 접근성 부족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단체들은 "국회 300석 중 여성은 57석(19%)에 불과"하며,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형사처벌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헌재) 결정 이후 정책과 프로그램의 진행이 없는 탓에" 여성들이 "포괄적인 낙태 서비스와 치료를 제공"받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여성 인권과 성 평등에 대한 공격"이 한국 내 성평등 관련 상황을 악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3월 대선 국면부터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반 페미니즘 기조와 성평등 전담기구인 여성가족부 폐지론 등이 한국사회의 공고한 구조적 성차별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특히 "윤 대통령의 공약과 반 페미니즘적 발언은 가뜩이나 취약한 국내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 운동에 큰 위협"으로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여가부 폐지 방침에서 엿보이는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 정부의 인식이 성폭력 등 "성 불평등 문제들에 대한 법적, 정책적, 규범적 해이함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보고서에선 "성평등 전담부처인 여성가족부의 권한과 역할을 강화하고 모든 정부 부처에 성평등 전담 부서를 신설할 것"을 필두로 △차별금지법 제정 △정치 및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 대표성 확대 △온라인에서의 성적 괴롭힘을 성폭력의 형태로 규정 △강간죄 판단 기준을 동의 여부로 개정 △안전한 임신중지에 관한 보편적인 접근권 보장 등을 한국 정부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이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여가위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지난 2일 국회에선 여당 의원들의 불참 하에 여성가족위원회가 열리는 등 여가부 존폐를 둘러싼 여야 간 대립이 감지되기도 했다.

유정주 민주당 국회 여가위 간사는 이날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여가부 폐지에 대한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했다. 여가위 업무보고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라고 회의 참여의 취지를 밝혔다.

국회 여가위원장 권인숙 의원도 이날 "여가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가부의 존재 여부"라며 "여가부 폐지 자체에 대한 로드맵에 대한 점검 등 모든 것을 포함해 빨리 책임 있게 업무를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국민의힘 측 의원들은 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회의를 일방적으로 개최했다"며 이에 반발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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