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라며 비대위 꾸린 3당..진짜 '비상' 민생은 뒷전으로

고재연 2022. 8. 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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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직후 비대위 꾸린 민주·정의
집권당도 두달여만에 지도부 공백
민생특위 2주만에 '개점휴업'
법인세 감면 등 세제개편안
여야 이견 속 통과 여부 불투명
쟁점 없는 반도체 지원법도 밀려
"허약한 정당정치 민낯 드러났다"

새 정부 출범 80여 일 만에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6월 지방선거 패배 직후 일찌감치 비대위 체제를 꾸렸다. 원내 1·2·3당이 정상적인 지도부 없이 모두 비대위로 당을 운영하는 초유의 사태다. 주요 정당이 모두 리더십 공백에 빠지면서 고유가·고물가 등 비상 상황과 관련된 민생 현안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현안을 조율하고 신속한 입법을 통해 경제위기에 대응해야 할 국회가 제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확대되는 입법 논의 공백

경제위기 대응을 목표로 여야 합의하에 출범한 국회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여야 합의를 통해 유류세 탄력세율 50% 확대 법안과 근로자 식대 비과세 한도 20만원 상향 법안의 본회의 통과를 이뤄냈지만, 국민의힘 내홍이 확산된 이달 들어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이후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하면서 나머지 민생 관련 법안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물가·고유가 시대에 서민들의 부담을 덜고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대중교통비 환급안이 단적인 예다. 여야 모두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각론에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8월부터 연말까지 대중교통 이용료 50%를 환급하는 이른바 ‘반값 대중교통비’를 밀어붙이고 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올해 하반기 대중교통 사용분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기존 40%에서 80%로 확대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반값 교통비’를 시행하기에는 재정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에서다.

법인세와 주택 보유세 감면 등을 핵심으로 하는 정부 세제개편안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1일 정부 발표 직후 국회에 관련 법 개정안이 넘어왔지만 여야는 한 차례도 마주 앉아 논의하지 못했다.

 이견 없는 법안도 처리 밀려

여야 간 쟁점이 거의 없는 법안 처리도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올 들어 여야는 한목소리로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국회 차원의 반도체 특위 구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는 2일 반도체 시설투자 기업에 30%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법안’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마무리했다.

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국민의힘 차원의 특위는 ‘시즌1’이며, 국회 차원의 반도체 특위를 설치해 ‘시즌2’를 이어가야 한다”며 여야 합의를 통한 특위 설치를 촉구했다. 세액공제안 외에도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풀어야 할 규제나 지원책이 많기 때문이다. 양 의원은 “여야 모두 특위 설치에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 입장이지만, 관련 특위 구성 논의에 별 진전이 없다.

도입 필요성에 양당이 공감하는 납품단가 연동제도 비슷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한 정부 부처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서다. 국회가 나서 교통정리를 하는 대신 입장이 정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민생특위 위원장인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납품단가연동제는 정부의 통일된 의견이 중요한 만큼 부처 간 정리를 요청한 상황”이라며 “그외 안건은 여야 간사 협의를 통해 논의할 안건이 정해지면 일정을 잡고 심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허약한 정당 정치의 민낯”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면서 정당 정치 자체의 문제점도 부각되고 있다. 특히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여당이 정권 초반 당 내홍으로 정책과 관련해 제 역할을 못 하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당이 허약하니 갈라지려 하고, 그 안에서 당직을 나눠 먹고 권력 투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인물 중심의 정치, 투쟁 중심의 정치로 ‘정책 정당’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연금개혁을 비롯한 중요한 사회적 현안보다 정쟁을 앞세우는 정당 정치 구조에서 사회 및 경제적 비용이 불어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병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부소장은 “비대위 상황뿐만 아니라 당이 추구하는 정책적 노선도 부재한 상황이라 협상과 타협도 부재한 것”이라며 “당정이 추진하겠다는 ‘노동개혁’과 ‘연금개혁’도 아직까지 로드맵이 없는 ‘레토릭’만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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