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펠로시 떠나자 대만 해역서 무력통일 가정 '포위·봉쇄' 훈련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2022. 8. 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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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 끝나자마자 중국이 대만을 포위한 채 주변 해역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대대적인 무력시위에 들어갔다. 대만을 고립시키는 형태의 봉쇄 작전으로, 무력 통일 시나리오를 가정한 군사훈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사전 예고한 대로 4일 낮 12시(현지시간)를 기해 대만 주변 해역과 공역에서 육·해·공군을 총동원한 군사훈련과 실탄사격을 시작했다. 대만을 관할하는 인민해방군 동부전구는 이날 오후 1시쯤 육군부대가 대만해협 동부 특정 구역에 정밀 타격을 진행했고 소기 성과를 거뒀다며 훈련 개시 사실을 확인했다. 스이(施毅) 동부전구 대변인은 “4일 오후 동부전구 로켓부대가 대만 동부 외해 여러 지역에 여러 형태의 재래식 미사일을 집중 타격했다”며 “미사일은 모두 목표물을 명중시켰다”고 밝혔다.

대만 국방부는 이날 오후 1시56분부터 오후 4시까지 중국군이 대만 동·남·북부 해역을 향해 11발의 둥펑(東風·DF) 계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밝혔다. 국방부는 즉각 방어시스템을 가동하고 전투 준비 태세를 강화했다면서 중국의 미사일 발사는 지역의 평화를 파괴하는 비이성적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중국군은 이날 무력시위에 사상 최대 규모인 100여대의 군용기를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국영방송인 CCTV는 이날 동부전구 공군 및 해군 군용기 100여대가 대만 북부, 서부, 동부 공역에서 주야간 정찰, 공중 돌격, 엄호 지원 등 임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CCTV는 이 임무에 전투기, 폭격기, 공중급유기 등 다양한 기종의 군용기들이 동원됐다고 전했다. CCTV가 인터넷판 보도에서 공개한 화면에는 중국의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인 J-20 등이 훈련에 참가한 모습도 담겼다.

이번 훈련은 대만을 빙 둘러싼 형태로 설정된 6개 구역에서 오는 7일 낮 12시까지 3일간 진행하는 것으로 예고됐다. 이 기간 훈련이 진행되는 해·공역에는 선박과 항공기 진입이 금지된 상태다. 동부전구는 훈련기간 대만 북부·서남부·동남부 해역과 공역에서 연합 해상·공중 훈련을 실시하고, 대만해협에서 장거리 화력 실탄 사격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또 대만 동부 해역에서는 재래식 미사일 시험 사격이 실시된다고 설명했다.

훈련이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대만 교통부 항항국(航港局)은 이날 공고를 통해 “중국이 오늘 오전 9시 기습적으로 대만 동부 해역을 추가해 훈련 구역을 7곳으로 늘렸고 기간도 8월 오전 10시로 연장했다”면서 “추가된 훈련구역은 대만 화롄항에서 70해리 떨어진 곳으로 항공기 운항에 추가적인 영향은 주지 않을 것이며 선박들은 해당 지역을 우회하면 된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매체와 전문가들은 이번 훈련이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을 가정한 봉쇄 작전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대만을 포위하는 형태로 설정된 6개 훈련 구역은 지룽항과 가오슝항, 화롄항 등 대만의 주요 항구와 항행로를 둘러싸고 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대만을 둘러싼 인민해방군의 훈련은 만약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경우 섬 전체를 봉쇄하고 평화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라고 전했다. 또 이번 훈련을 ‘통일 작전 리허설’이라고 규정하며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완전히 봉쇄하면서 중국의 절대적 통제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 예비역 중장인 솨이화민은 “인민해방군이 설정한 6개 훈련 구역은 대만의 주요 항구와 항로를 위협해 대만을 전면 봉쇄하려는 포석”이라며 “이번 훈련은 대만 무력 통일의 옵션 중 하나를 테스트하는 것으로 훈련이 장기화된다면 대만이 실질적으로 봉쇄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군의 훈련 구역에는 대만이 설정한 영해도 포함돼 있다. 제중(揭仲) 대만 국가정책연구기금회 연구원은 중국이 설정한 대만 서남부와 북부, 동북부 3개 훈련 구역이 대만이 2009년 선포한 12해리(22.224㎞) 영해 이내에 진입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서남부와 북부 훈련 구역 중에는 대만 육지에서 10해리도 되지 않는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군이 대만이 영해라고 주장하는 해역에서 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대만이 중국 영토의 일부임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쑨리팡(孫立方) 대만 국방부 대변인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군사훈련은 대만 봉쇄를 시도하는 것으로 지정된 해역은 대만의 영해까지 미치거나 매우 가깝다”며 “대만의 주권 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은 대만의 영해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로 영해를 주장할 권리가 없다”면서 “국방부와 인민해방군 동부전구가 밝힌 대로 이번 훈련은 대만 독립 세력을 저지하기 위한 합법적이고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들과 유렵연합(EU) 고위 대표는 3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통해 “펠로시 의장 방문을 구실로 대만해협에서 공격적 군사 활동을 벌이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중국의 확대 대응은 지역 내 긴장을 고조시키고, 불안정하게 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에 대해 “중국이 현재 취한 조치와 앞으로 취할 조치는 꼭 필요하고 제때 반격하는 방어적인 것으로, 국가 주권과 안전을 수호하고 국제법과 국내법에 부합하며 도발자에 대한 경고이자 지역 안정과 대만해협 평화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일단 이번 훈련을 3일간으로 예고했지만 만약 이후에도 비슷한 훈련이 반복되거나 장기화된다면 대만은 가시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바다로 둘러싸인 대만은 천연가스나 원유 등 전략물자를 해상 운송에 의지하고 있다. 계속된 훈련으로 해상이 봉쇄된다면 경제적 피해도 불가피하다.

대만 행정원은 이에 대비해 육·해·공의 원활한 수송 유지와 기업 자산 안전 확보, 산업 경제와 금융시장 정상 운영 등 5대 분야 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우선 18개 국제선 항로가 중국 군사훈련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훈련 공역을 우회하는 대체 항로를 확보해 비행 구역을 조정했으며 이에 따라 3일 동안 900대 가량의 항공편 운항 시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4일에만 최소 40편의 대만을 오가는 비행기가 취소됐다고 차이나타임스는 보도했다. 또 해상 운송은 모든 선박이 훈련 구역에 접근하지 않고 우회하도록 하며 육상의 핵심 교통 인프라와 공항, 항만에 대한 점검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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