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감별사' 자처한 서울시..재개장 광화문광장 집회 불허 방침에 "조례가 헌법 위에 군림"
서울시가 오는 6일 광화문광장 재개장을 앞두고 ‘정치적 목적’이 있는 집회·시위는 원천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서울시 조례에 규정된 광화문광장의 조성 목적이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이기 때문에 이 같은 방침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논리다. ‘사전에 걸러내겠다’는 서울시의 허가 기준이 지나치게 자의적인 점도 문제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지자체 조례로 제한하겠다는 것이어서 재개장 전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4일 집회·시위 목적의 광화문광장 사용 신청에 대해서는 “허가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제’로 신고된 행사여도 집회·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사전에 걸러내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조례에 따라 광화문광장 사용을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계획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서울시는 광장 사용을 신청해 접수된 행사가 집회·시위로 볼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안건을 ‘자문단’에 올려 의견을 구하기로 했다. 이달 출범하는 자문단은 경찰을 비롯해 소음·교통·행사·법률까지 5개 분야를 대표하는 각 1명씩 총 5명으로 구성된다. 주로 광장 사용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민사회단체는 자문단에 포함돼 있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소음이나 교통체증 때문에 지역 주민들 민원이 많았다”며 “적정 소음을 유지하고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문화제로 신고했다가 집회 성격으로 변질되면 허가가 취소되고 변상금이 부과되는 등 행정 절차가 취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시 관계자는 “정치 목적으로 보이는 행사는 자문단에 안건으로 올릴 수 있다”며 “추모문화제도 이에 해당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서울시의 이 같은 방침이 집회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겠다는 것이어서 헌법이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헌법 제21조 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에서 집회에 대해 허가제를 금지하는 이유는 행정기관의 뜻에 맞는 의견만 표출할 수 있게 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며 “행사가 어떤 내용이냐에 따라 선별해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집회·시위에 대한 일종의 허가제가 돼 헌법 위반”이라며 “광장 사용 조례를 보다 엄격하게 해석해 행사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하려는 맥락이 보여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정한 불허 기준이 자의적이어서 무턱대고 집회를 막는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화제로 신청이 됐더라도 집회·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면 광장 사용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식인데, 서울시와 자문단이 문화제와 집회의 경계를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그을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선임간사는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사용 방침은 일도양단하기 어려운 최근 집회 양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며 “발상 자체가 관료적이고 권위적”이라고 했다.
시가 광장 사용을 제한하는 주된 사유로 꼽는 ‘시민 불편’은 소음 규제 기준 재정비 등의 방식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견해도 있다. 차진아 교수는 “소음 기준을 장소·시간별로 보다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오는 8일부터 광화문광장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광장 사용 신청을 받는다. 광장 사용은 22일부터 가능하다. 광장 내 사용이 허가된 곳은 광장 북측의 육조마당(2492㎡)과 세종대왕상 앞 놀이마당(2783㎡) 등 2곳이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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