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목숨값 931원 보낸 일본.."사죄도 부족한데, 껌값으로 우롱"
시민모임 "모욕적, 정부의 저자세 문제" 비판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할머니에게 ‘후생연금’ 이라며 931원(99엔)을 입금했다. 일본은 이전에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1945년 해방 당시 금액을 기준으로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연금 탈퇴수당’을 지급해 왔다. 피해자들은 “악의적 우롱이자 모욕”이라며 분개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시민모임)은 4일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일본연금기구가 근로정신대에 강제동원됐던 정신영 할머니(92)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 931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931원은 일본 측이 지난달 6일 계좌로 송금한 99엔을 한화로 환산한 금액이다.
일본 측이 입금한 돈은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을 했던 정 할머니가 당시 가입했던 후생연금의 탈퇴수당 명목이다. 정 할머니는 14세 였던 1944년 5월 일제의 강압과 회유로 미쓰비스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끌려갔다.
정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배를 곯아가며 일했지만, 월급 한 푼 쥐어 보지 못했다. 함께 일했던 또래 6명은 지진으로 공장 건물더미에 깔려 사망하기도 했다. 정 할머니는 해방 이후 구사일생으로 고향에 돌아왔지만,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숨긴 채 평생을 살아왔다.
정 할머니는 대법원이 2018년 ‘미쓰비시중공업이 근로정신대 피해할머니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자 용기를 내 2020년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일본 측은 정 할머니 등이 지난해 3월 강제동원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후생연금 가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자 “기록이 없다”고 무시했다. 정 할머니가 연금번호까지 기억하자, 뒤늦게 일본 측은 연금 가입 사실까지는 인정했지만 77년 전 금액을 그대로 지급했다.
시민모임은 이날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정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삶마저도 빼앗겼지만, 일본 정부는 후생연금의 존재 사실조차 피해자들에게 감춰왔다”면서 “마지못해 수당을 지급하면서도 77년 전 액면가 그대로를 지급한 것은 악의적 우롱이자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화폐가치를 반영하지 않고 후생연금 탈퇴수당을 지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2009년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에게도 99엔을 지급했다. 2014년에도 김재림 할머니 등 4명의 피해자에게 199엔을 지급했다.
일본이 이런 행태를 반복하는 데에는 한국 정부의 ‘저자세’가 한몫하고 있다는 게 피해자들의 지적이다. 시민모임은 “일본이 피해자를 모독하고 무시하는 데에는 우리 정부의 태도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 한일관계 복원을 구실로 일본에 한없이 비굴하기 짝이 없다”고 밝혔다.
실제 외교부는 지난달 26일 배상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미쓰비중공업의 국내 상표권과 특허권을 압류해 특별현금화명령(강제매각) 절차를 진행하는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의견서 내용에 대해 “특별현금화명령과 관련해 민관협의회와 일본과의 교섭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린다는 요지”라고 설명했다.
시민모임은 그러나 “외교부의 의견서는 강제집행을 노골적으로 방해한 것으로 일본 정부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함 셈”이라면서 “‘우리들이 죽기만 바라고 사죄도 없는데 용서할 수 있겠느냐’는 피해 할머니들의 한탄에 정부는 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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