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비상경영'..조선-철강업계, 후판가 협상 난항 예고

함정선 2022. 8. 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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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사-조선사, 후판 가격 두고 하반기 협상
원자잿값 인하에 후판 가격 인하에 무게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에 포스코 등 비상경영 돌입하며
후판 가격 동결·인하 협상 쉽지 않다 분석도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선박에 쓰이는 철판인 ‘후판’ 가격을 두고 벌일 예정인 철강사와 조선사 간 협상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애초 철광석과 제철용 연료탄 등 원자잿값이 크게 내리며 후판 가격 인하에 무게가 실렸지만 인플레이션에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까지 겹치며 공급사인 철강사들의 경영환경이 급속도로 악화한 탓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철강사와 조선사들은 지난달부터 후판 가격에 대한 협상을 시작했다. 조선용 후판 가격 협상은 상반기와 하반기, 1년에 두 차례 진행된다. 올해 상반기 가격 협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중국의 봉쇄 등으로 원자잿값이 널뛰면서 통상 3월이면 마무리되는 협상이 5월에야 끝났다.

하반기에는 그간 후판 가격 인상을 이끌었던 원자잿값이 안정화하며 가격 협상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이후 3차례 연속 인상됐던 후판 가격이 인하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철강사들은 원자잿값 상승을 이유로 지난해 상반기부터 후판 가격을 총 세 차례 인상했다. 각 철강사와 조선사 간 계약에 따라 구체적인 가격은 다르지만 세 차례 인상으로 60만원대 후반이었던 후판 가격은 현재 약 110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위=원, t당 자료=대우조선해양 분기보고서)
특히 지난해는 조선사들이 수주 호황을 맞으면서 후판 수요도 크게 늘어난 터라 철강사들이 협상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조선사들은 지난해 후판 가격 인상분을 충당금으로 반영하며 조 단위 영업손실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철강사들의 후판 가격 인상의 이유로 손꼽혔던 원자재, 철광석 가격이 지난해 7월 t당 200달러 수준에서 올해 같은 시기 100달러대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조선사들이 여전히 수주 랠리를 이어가고 있기는 하나 러시아 선박 계약 해지와 대우조선해양 파업 등 여파로 후판 수요도 일정 수준 감소했다. 철강업계에서조차 후판 가격을 인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현대제철은 최근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원료 가격 등 상황을 고려하면 후판 가격을 인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포스코그룹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는 등 철강업계의 하반기 전망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어서다. 에프앤가이드 전망치에 따르면 포스코홀딩스는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7%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제철의 영업이익 전망치도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잿값이 하락했다고 그대로 후판 가격을 인하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얘기다.

철강사와 조선사 간 후판 가격 협상은 원자잿값과 수요 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업황과 실적 등의 상황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조선사들의 수주절벽 시절 철강사들은 조선사들의 실적 악화 등을 고려해 후판 가격을 동결하거나 인하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 후판 가격이 협상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상경영 상황인 두 업계가 가격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조선사들은 수주 랠리를 이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실적에서는 여전히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또 대우조선해양은 파업 여파에 비상경영체제를 유지 중이다. 특히 조선사들은 언제 다시 원자잿값이 다시 치솟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원자잿값이 내릴 때 후판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아직 인플레이션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판 가격에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애초 8월 초 또는 중순이면 후판 가격 협상이 끝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으나 이보다 더 길어질 것으로 본다”며 “원자재 가격만 보면 후판 가격을 인하하거나 동결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야 하는데 경영 상황이나 시황 등도 고려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함정선 (min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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