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공간' 수난사.."학교도 병원도 바다도..당연하게 누리는 것들, 우리에겐 왜 어려울까"
“이런 날이 오긴 오네요.” 3일 오전 9시 강서구 등촌역 인근에서 장애인·비장애인 복지시설 ‘어울림 플라자’ 공사 현장을 바라보던 장미라씨(52)가 말했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23살 자녀를 둔 장씨는 “이곳에 장애인 치과가 들어선다고 해서 기대가 컸는데 공사가 자꾸 지연돼 6년 넘게 기다렸다. 장애인들은 전문 치과가 부족해 멀리 원정 치료를 하러 가야 하고 대기도 매우 길다”면서 “드디어 가까운 곳에 치과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어울림 플라자’ 건립 공사가 시작됐다. 서울시는 등촌1동 한국정보화진흥원 터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경사지를 평탄화하는 등 사전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약 40일 뒤부터 터파기·흙막이 등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2024년 상반기 완공할 계획이다.
어울림 플라자는 2016년 서울시가 추진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전국 최초의 복합 문화·복지 공간으로, 장애인 단체에서 오랫동안 요구해온 숙원사업이다. 주민들의 강한 반대로 4년 가까이 진행되지 못했던 이 사업은 2020년 7월 재추진됐다. 지난해 3월 옛 건물 철거까지 완료했으나 이후로도 주민들 동의를 얻지 못해 건립이 지연됐다.
공사가 미뤄지는 사이 주민들 설득을 위해 설계도 바뀌었다. 지하 4층~지상 5층 규모 건물에 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은 5층 장애인치과병원과 3~4층의 장애인 연수 객실, 일부 층의 사무실이 전부다. 발달장애인 어머니 이은자씨(52)는 “건물 전체에서 장애인 시설은 20%밖에 되지 않는데 겨우 이 정도를 얻으려고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낸 건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시설은 이웃 반대에 종종 가로막히곤 한다. 반대 과정에서 명시적인 장애인 혐오가 튀어나오는 때도 있으나 개인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당한다는 주장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4일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어울림 플라자 주민설명회·공청회 결과 및 백석초 학부모 면담 결과 등에 따르면, 등촌동 주민들도 재산권·건강권·안전권을 이유로 시설 건립을 반대했다. 특히 백석초 학부모들은 “장애인 시설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안전권과 학습권이 침해되는 게 문제”라고 주장해 왔다.
인근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김모씨(60대)는 “집값 때문에 그렇지 당연한 걸 왜 묻나. 동네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온다고 하면 솔직히 환영할 사람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수영장, 도서관, 주차장 등)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도 생긴다고 하니 이왕 지을 거면 빨리 지었으면 좋겠다. 이 주변에 편의시설이 너무 부족하긴 하다”고 했다.
인근 초등학교인 백석초 학부모들은 여전히 안전 문제를 우려한다. 공사장 펜스는 백석초 정문과 바로 맞닿아 있다. 백석초 역시 30년 이상 된 건물이라 건물 외벽에 금이 가 있는 상태다. 백석초 학부모 A씨는 “한결같이 요구한 건 안전이었는데도 마치 우리가 장애인 시설이라 반대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서울시에 대한 불신이 쌓이면서 소통도 어려웠다. 지금도 통학로 안전대책 등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는데도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9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서울시 주요 갈등관리 사례(2012~2021)’를 보면, 서울시가 추진한 장애인 시설 및 공간 사업 중 각종 갈등 및 민원이 발생한 사례는 어울림 플라자 외에도 여럿이다. 장애인 공동생활가정(2014), 시립 서대문농아인복지관 별관(2015), 송파발달장애인 평생교육 센터(2018년) 등에서 주민 반발로 인해 시설 건립이 지연된 적이 있다.
2009년 추진했던 장애인 숙박시설 건립사업 ‘하조대 희망들’도 주민 반대로 사업이 가로막혔다. 하조대 희망들은 서울시가 강원도 양양군 하조대 해수욕장에 중증장애인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숙박시설을 지어 이들이 사계절 바다를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목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2010년 서울시는 양양군과 건축 협의를 마쳤으나 일부 주민이 “장애인 숙박시설이 들어서면 비장애인 피서객들이 오지 않을 수 있다”고 반대해 착공이 미뤄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국비(22억 원)는 결국 불용 처리됐다.
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들은 연대 활동 이래 가장 힘겨웠던 싸움으로 ‘2015년 서울 발달장애인 훈련센터’를 꼽았다.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지역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장면은 지난 2017년 강서구 특수학교(서진학교) 당시 대중에 알려져 공분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것이 ‘최초의’ 무릎 호소는 아니었다. 그보다 앞선 2015년, 동대문구 제기동 성일중학교 강당에서 “직업센터를 설립하게 해달라”며 장애인 어머니들이 무릎을 꿇는 일이 있었다.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발달장애인 훈련센터는 직업교육 훈련기관이다. 고등학교 재학 중 혹은 졸업 후 2년 이내 장애인 90여 명에게 사무보조, 도서관 사서, 제과제빵 보조, 바리스타 같은 직무 실습 기회를 제공하는 직업교육센터다. 서울시교육청이 설립하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운영하는 협업 모델이었다.
당시 주민들은 서울시교육청이 성일중 내 비어 있는 공간을 개조해 센터를 만들겠다는 방안을 내놓자 청소년 안전, 교통량 증가, 의견수렴 절차 부족 등의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다. “발달장애인의 돌출 행동으로 사고가 날 수 있다” “장애인이 여자아이들을 성추행하면 어떡하냐” 등 노골적인 말도 나왔다.
야간 토론회 당시 주민들이 횃불을 든 채 찾아오는 일까지 벌어졌다. 큰 규모의 공사는 아니었음에도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개소하기까지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6차 주민설명회가 열린 날 ‘한 번만 얘기를 들어달라’며 무릎을 꿇었다는 김남연씨(55)는 “그때와 비교하면 다른 반대 현장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졌다. 각종 욕설과 인식 공격을 들으면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발달장애인 훈련센터는 우여곡절 끝에 2016년 12월 개소한 후 지금까지 정상 운영되고 있다. 성일중과는 센터 사이는 철제 펜스가 놓여 있다. 당시 학교 내에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던 제기동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발달장애인 훈련센터의 초대 센터장인 이효성씨(52)는 “센터가 개소하고 1년이 지나자 주민 반대 여론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시설을 반대했던 주민들이 일상에서 장애인과 자주 마주치며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난 29일 성일중 근처에서 만난 원룸 임대업자 정모씨(67)는 당시 반대 집회에 나가고 서울시교육청·성일중·주민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에도 참여했다고 했다. 정씨는 “안 그래도 집값이 낮은 동네인데 장애인 시설까지 들어오면 집값이 더 내려갈까 걱정됐다”면서 “막상 센터가 들어서고 보니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워낙 부동산값이 오르는 추세라 그런지 이 일대 집값도 올랐다”고 말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고 했다. 정씨는 “자식들이 다 커서 손주도 봤는데, 내 아이들도 언제든 장애인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냐”면서 “지금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당시 자녀가 성일중에 다녔다는 인근 아파트 주민 B씨도 “주민들이 반대하는 시설을 짓는 대신 (서울시교육청에서) 학교에 잔디도 깔고 과학실 공간도 정비해줘 학생들이 더 편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는 학교 근처에 인도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면서 “센터 설립 이후 길이 정비되는 등 동네가 훨씬 깔끔해진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처음 우려했던 아이들과 것처럼 장애인 간 불미스러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하루아침에 여론이 변한 건 아니었다. 센터 건립이 확정된 이후에도 각종 민원 때문에 여러 차례 공사 중지와 재개를 반복했다. 주민들은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센터를 설립할 법적 근거가 없고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등의 내용으로 두 차례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센터는 지역사회에 어우러지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발달장애인이 만든 빵과 쿠키나 직접 담근 김장김치 등을 이웃들에 나눴고, 성일중 앞 정릉천 일대를 따라 걸으며 쓰레기도 주웠다. 발달장애인도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주민들이 하나둘 마음을 열었다. 선두에 서서 설립을 반대했던 이가 ‘그때는 미안했다’며 악수를 청하는 일도 있었다.
서울 발달장애인 훈련센터가 지역사회에 안착하면서 다른 시도에서도 비슷한 사업이 추진됐다. 현재 전국에 19곳 센터가 문을 연 상태다.
이 전 센터장은 장애인 시설이 주민 반대를 넘어 지역사회에 자리 잡기 위해 시설 자체가 ‘인식개선의 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설립 이후에도 그 안에서 장애인과 주민들이 어울릴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이 (시설만 만들고) ‘나 몰라라’ 하면 안 되고 계속 진정성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강서구 어울림 플라자 사업에 서울시 관계자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C씨는 “갈등이 극심할 때마다 돌파구를 찾으려면 기관장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면서 “공사를 시작해도 앞으로도 각종 민원이 많이 들어올 것인데 서울시장 의지가 없으면 일선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매번 휩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021년 보궐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어울림 플라자의 재건축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논란이 일자 철거한 바 있다. 당시 오 후보 측은 “해당 현수막은 중앙선대위와 협의없이 지역 판단으로 붙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C씨는 “2017년 서진학교 ‘무릎 호소’ 때 사회적 공분이 일면서 일부 주민들에게는 장애인 시설을 반대하면 ‘도덕적 지탄’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면서 “명백한 혐오표현은 줄었을지 몰라도 안전권, 학습권 등 외면하기 어려운 명분을 내세워 반대하는 일도 많다. 복잡해진 갈등을 공공기관이 더 세심하게 다룰 수 있도록 갈등관리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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