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에 수혜주로 떠오른 韓 배터리 업계..마냥 웃을 수 없다?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후폭풍이 경제 분야로 번지는 모양새다.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닝더스다이)이 북미 투자 계획 발표를 보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최근 잇따라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국내 배터리 업계로서는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여기에 전기차 구매에 세액 공제 혜택이 담긴 '인플레 감축법'이 내달 미국 의회를 통과한다면 한국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마냥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튬을 경제 보복 카드로 꺼내든다면 국내 배터리 업계가 난감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미·중 갈등 속 세계 1위 배터리 中 업체, 美 투자 머뭇머뭇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3일(현지 시각) CATL이 북미 투자 계획 발표를 보류했다고 보도했다. CATL은 미국과 멕시코에 50억 달러(6조5000억원)를 들여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하고 인센티브 등 막판 조율 중인 상태였다. 하지만 미·중 관계가 민감해진 시기를 고려해 투자 계획 발표를 미룬 것으로 보인다.
CATL은 2026년까지 미국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설립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변동 없이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반도체, 친환경차 등 첨단 산업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낮추겠다는 미국의 강한 의지 속에 계획대로 투자를 진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울러 중국 정부의 눈치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CATL다.
CATL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CATL과 경쟁하고 있는 한국 배터리 업체로서는 손 안대고 코 푸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 배터리 업체에게는 또 하나의 호재도 있다. 미국 의회가 친환경 사업분야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처리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해당 법안에는 전기차 구매자에게 7500달러, 중고 전기차 구매자에게 4000달러 규모의 세액공제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기차 대중화를 앞당기려는 의도다. 해당 법이 통과되면 전기차 구매 관심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원자재 포함한 배터리에 보조금 없다…수출 제재하면 韓 기업 유탄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핵심은 세액공제 대상이 되는 전기차의 배터리에 들어가는 원자재 비율에 따라 보조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원자재를 미국 내에서 조달하거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한 국가에서 원자재를 들여와서 만든 전기차 배터리에 보조금을 줄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비율은 2024년에는 40%, 2026년에는 80%까지 늘려가겠다는 계획이다.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에도 중국 견제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6월 미국 리튬 생산업체 컴파스 미네랄(Compass Minerals)과 업무 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번 MOU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부터 7년간 컴파스 미네랄이 생산하는 친환경 탄산·수산화리튬의 40%를 공급받을 예정이다.
미국이 중국 배터리 산업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섰지만 한국 배터리 업계에 마냥 희소식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을 가장 많이 정제해 수출하는 국가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리튬 거래 화폐단위가 '위안'인 이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대미 보복 수단으로 리튬 수출 제재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제재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리튬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대중 무역 적자가 큰 5대 품목 중 하나가 '리튬'으로, 지난 상반기 수입 금액(11억7000만 달러)이 전년 동기 대비 404% 늘어났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내 업체들은 공급망 다각화를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 최대 리튬 생산업체 중 하나인 칠레 SQM과는 오는 2029년까지 9년간 약 5만5000톤의 리튬 계약을 맺었고, SK온은 지난 3월 아르헨티나 리튬 생산 공장 건립에 착공한 포스코홀딩스와 2차전지 사업의 포괄적 MOU을 체결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배터리 원료 채굴에서부터 정제까지 전기료와 인건비를 따져보면 중국이 가장 저렴한 것이 사실"이라며 "짧은 시간에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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