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담] "한국이 마약 '신흥시장'으로 여겨져.. '마약과의 전쟁' 시작해야"
“지금 확산세 못 꺾으면 통제불능 임계치 넘어설 것”
지난 7월 초 발생한 서울 ‘강남 유흥주점 마약 사망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에 마약이 얼마나 흔하게 번져 일상화했는지를 새삼 드러낸 충격적 부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조차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 손님과 종업원을 사망에 이르게 한 문제의 마약은 필로폰(메스암페타민)인 것으로 추정된다. 마약 유통 혐의를 받고 있는 사망 손님의 차량에선 수천 명분의 필로폰과 필로폰 성분 복합제인 ‘엑스터시(MDMA)’가 발견되기도 했다.
발견된 마약의 종류와 양으로 볼 때, 사건 주인공은 그쪽의 ‘선수’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마약은 필로폰이나 코카인, 아편 같은 ‘선수’들의 전통적 마약뿐만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 클럽 등지를 통해 일명 ‘도리도리’로 통하면서 급격히 확산된 엑스터시를 비롯해 수면제 계열인 ‘졸피뎀’과 ‘프로포폴’ ‘케타민’ ‘허브’ 등 대마 계열 마약, ‘물뽕’으로 통하는 ‘GHB’, 여성 흥분제로 통하는 ‘러시(알킬 나이트리트)’ 등 변종 마약류가 법망을 교묘히 피하며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히 번지는 게 문제다.
장재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은 “국내 마약인구는 범죄로 단속된 수치를 훨씬 뛰어넘는 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마약이 관리 가능한 임계치를 넘어 국가 리스크로 확산하기 전에 전 사회적인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지불식간에 해이해진 마약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게 시급하다”고 호소한다. 장 이사장으로부터 국내 마약 확산 현황과 배경, 억제ㆍ퇴치 방안을 들었다.
“한국 ‘마약청정국’ 지위 2016년 상실 뒤 급증세”
-한때 우리나라는 마약청정국으로 꼽힐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마약 뉴스가 넘쳐난다. 국내 마약 확산 현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유엔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이 20명 미만인 나라를 마약청정국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2016년 25명을 넘긴 뒤 계속 증가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 수는 1만6,153명인데, 검ㆍ경 등 단속기관에서는 그 10배, 마약 연구자들은 대략 28배 정도를 실제 마약사범 수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16만~40만 명 정도로 볼 수 있으나, 우리 본부에서 마약사범 재활 지원활동에서 각종 증언 등을 토대로 추정하는 수치는 마약류 중독 경험이 있는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정도라면 아직은 사회적으로 통제,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본다. 하지만 지금 증가추세는 관리 가능한 임계치를 향해 빠르게 다가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칫 고삐를 놓치기 전에 뭔가 해야 한다.”
-마약 유통과 오용이 증가하는 상황이 실제 지표들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
“모든 지표들이 마약의 심각한 확산세를 확인해주고 있다. 당장 최근 경찰청이 밝힌 데 따르면 올 상반기 검거된 마약류 사범은 5,988명으로 지난해 상반기 5,108명보다 무려 17.2%나 급증했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 자료를 분석한 데 따르면, 연간 마약사범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8,000명대를 유지하다가 2019년부터 2021년에 1만 명대로 늘어난 정도다. 하지만 검거된 마약사범 수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실 검ㆍ경이 마음만 먹으면 훨씬 더 많이 검거할 수 있다고 본다.
관세청 마약류 밀수 단속 지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6일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1~6월 국경 반입 단계에서 적발된 마약 중량은 총 238㎏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14㎏) 대비 11.2% 증가했다.”
“변종 마약 확산과 함께 청년층 가파른 증가세 심각”
“국내외 가격차, ICT 인프라 악용, 경각심 해이가 문제”
-양적인 측면과 별개로 질과 양상에 있어서 최근 마약 확산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우선 10~20대 청년층 마약사범이 급증하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크다. 10대 마약사범은 2016년 81명에서 2021년 309명으로 5년 만에 3.8배 늘었다. 20대는 같은 기간 1,327명에서 3,507명으로 2.64배 많아졌다. 마약사범 중 초범 비율이 계속 증가하는 것도 중요하다. 초범 비율은 2017년 69% 정도였던 게 매년 높아져 지난해와 올 상반기엔 80%에 육박하고 있다.
신종 마약이 급증하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다. 당장 올 상반기 관세청이 단속한 밀수 단속 현황에 따르면 총 단속 455건 중 필로폰과 코카인 등 기존 마약은 15%(68건) 정도였고 경각심이 덜한 대마가 32%(143건)였던 반면, 향정신성의약품과 임시마약류가 포함된 신종마약이 53%(234건)로 적발 건수로만 따지면 우세종이 된 셈이다. 이 밖에 외국인 마약사범 증가, 마약 투약 계층 확산 등의 문제도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세 가지 특징에 가장 주목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청년층이 온라인이나 클럽 등지에서 신종마약에 쉽게 노출되어 별 거부감 없이 마약을 접했다가 초범으로 단속되는 케이스’가 요즘 마약 확산의 중심축이라는 얘기다.”
-국내 마약 급증세의 배경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우선 글로벌 공급 측면에서 보면 동남아 등지의 국제 마약류 공급량이 증가하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마치 마약의 ‘신흥시장’으로 여겨질 만한 상황이 조성됐다. 필로폰 가격을 보면 국내 거래가격이 1g당 450달러로 태국(13달러)이나 미국(44달러)보다 크게 높다. 다른 마약류도 비슷하다. 자연히 밀수 동기가 커지고, 공략대상 시장이 되는 셈이다. 둘째,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및 SNS 인프라 등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환경과 청년층 등의 매우 높은 온라인 활용성 등이 근년 들어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마약 유통의 진화 추세와 맞아떨어지며 마약 확산을 촉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크웹’ 등을 통한 유통 증가가 대표적 사례다.
셋째, 신종ㆍ변종 마약류가 증가하면서 마약에 대한 부정적 정체성이 희석되어 심리적 방어기제가 무너지고 있는 것도 중요한 현상이다. 필로폰이나 코카인 같은 기존 마약엔 거부감이 강하지만, 엑스터시나 LD, 물뽕 같은 건 ‘한 번쯤 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게 문제다. 대마 사범 급증은 미국 캐나다 일각의 합법화 추세가 반영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다크웹’ 등 통한 청년층 무분별 확산세 주목해야"
-온라인을 통한 마약 유통의 증가세가 그렇게 심각한가.
“식약처 사이버조사단이 2020년에 밝힌 ‘온라인 마약불법유통 적발’ 통계에 따르면 인터넷 쇼핑몰이나 SNS 등을 통한 마약 유통이 적발된 건수는 2018년 1,492건이었던 게 2019년 9,038건으로 1년 사이 6.3배나 급증했다. 그 이후로도 급증세는 이어졌을 것이다. 특히 추적과 단속이 어려운 ‘다크웹’을 통한 거래 등을 감안하면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9년 말 얘긴데, 다크웹 한국어 마약 사이트에 가입된 인원이 당시 5,500명이고 영어로 운영되는 사이트까지 치면 훨씬 많을 것이라는 추정까지 있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텔레그램 마약방’을 운영한 고교 3학년 학생의 사례는 온라인 마약 유통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학생이 외국의 ‘상선’으로부터 마약을 공급받아 저보다 나이 많은 익명의 국내 ‘하선’을 통해 유통시켰다는 것이 아닌가. 다크웹에 들어가 보면 청소년 청년들에게 마약을 권하고, 유통을 유혹하는 광고와 사이트 링크가 넘쳐난다.”
-요즘엔 클럽 같은 곳에서도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영화 같은 콘텐츠에서 재벌 3세나, 부유층 유학생 등 소위 ‘잘나가는 특권층’들의 클럽이나 파티문화에서 마약 투약 상황이 자주 비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은연중 마약이 무슨 ‘럭셔리한 일탈’이거나 ‘다크히어로의 저항문화’ 쯤으로 왜곡되어 인식되는 경향까지 번지는 것 같다. 또 그런 맥락에서 마약을 한 번 해본다는 게 교통법규 위반 정도 하는 걸로 가볍게 여겨지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그런 경각심 해이가 클럽 같은 감성적 장소에서 극대화하면서 마약 확산의 가장 활발한 무대가 되고 있다고 본다.”
“클럽 등서 ‘페노바르비탈’ ‘MDMA’ ‘러시’ 일상화”
“청년들 마약을 ‘럭셔리한 일탈’로 여기는 풍조 번져”
-최근 확산되는 마약 중 주목되는 종류는.
“필로폰 같은 기존 마약류 유통은 꾸준한 증가세다. 올 상반기에도 필로폰 밀수 적발량은 전년 동기 대비 100% 증가했을 정도다. 공급과잉인 동남아 ‘골든트라이앵글’ 지역과 미국을 통한 유입이 많았다. 대마류도 급증세를 타고 있는데, 상반기 적발량의 60% 가까이가 미국과 캐나다 등 합법화 지역으로부터 유입됐다. 대마와 함께 청년층 마약 확산의 주범인 ‘페노바르비탈’ ‘MDMA’ ‘러시’ 등 신종마약이 문제인데 상반기 밀수 단속 증가세는 17% 정도지만 실제 확산세는 훨씬 심각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게 지금 청년층 마약 확산의 취약고리다.”
-신종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 등은 중독성이나 부작용이 좀 덜한 것 아닌가.
“해외 유학생 등에서 번져 클럽 같은 곳에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처럼 알려지면서 그런 생각이 청년층에 번지는 게 사실이다. ‘물뽕’이나 ‘러시’ 같은 변종마약은 물론이고 엑스터시까지도 흥분제 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약사로서 또 마약 전문가로서 볼 때 모든 마약 및 향정신성의약품은 치명적 부작용과 중독성이 엄연히 있다. ‘한 번쯤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인식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다.”
“왜곡된 인식 바로잡는 전 사회적 ‘노(NO)마약 캠페인’ 절실”
-마약 확산 저지를 위한 방안은.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를 거론하기도 하고, 임시마약류 및 향정의약품 등의 엄격한 유통관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나름 유효하며 필요한 조치라고 본다. 하지만 처벌과 유통관리보다 더 절실하고 근본적인 방안은 우리 사회와 국민이 단호히 마약을 거부할 수 있도록 각성시키는 방향의 전 사회적인 ‘마약과의 전쟁’이다.”
-‘마약과의 전쟁’은 적발과 단속, 처벌 강화, 보다 엄격한 마약류 유통관리 같은 걸 염두에 두는 건가.
“처벌과 단속, 관리를 넘어 국민의식 각성을 겨냥한 사회운동과 캠페인이 절실하다. 사법 당국이든, 식약처든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해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크다. 우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도 식약처 예산지원을 받는 유관기관으로서 전국적인 ‘노(NO) 마약캠페인’을 추진할 의지와 계획이 있다. 걱정스러운 건 부처 간 ‘칸막이 관행’ 같은 것 때문에 서로 미루다 자칫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상황을 방기하는 거다. 어느 쪽에서 이끌든 전 사회적인 마약 반대 캠페인이 시급하다.”
“중독재활센터 광역 단위로 추가 설치 필요”
“‘마약청’ 신설보다 ‘컨트롤타워’ 정립이 현실적”
-마약은 처벌 못지않게 재활치료도 중요한데, 국내 마약 재활치료 시스템 현황을 평가한다면.
“재활시스템 구조 자체는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다고 본다. 검찰단계에서 교육조건부나 선도조건부, 치료조건부 기소유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법원 판결로 치료명령제도와 치료프로그램 수강명령 및 이수명령이 있고, 검사 청구로 판사가 결정하는 치료감호제도도 존재한다.
시설로는 각 지역사회의 치료보호기관이 있으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의 중독재활센터도 전국에 2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다만 중독재활센터는 정부와 공조해 마약류 중독자 치료 및 재활의 중추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광역 단위로 3개 정도는 추가 설치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마약청 신설 주장도 있다.
“법무부와 검찰 쪽에서 나온 얘기인 걸로 안다. 미국식으로 법무부 산하에 ‘마약단속국(DEA)’ 같은 걸 두자는 것 같은데, 추적과 단속을 강화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마약 시장의 크기 같은 걸 감안할 때,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DEA 같은 조직이 당장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걸로 안다. 검찰, 경찰, 관세청, 식약처, 보건복지부 등으로 분산돼 있는 업무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보다 통합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일종의 컨트롤타워가 명확히 구축돼 유기적인 업무 협조가 이뤄질 수 있는 체제를 보강하는 게 일단 현실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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