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4 동맹' 해법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미래 가른다
(지디넷코리아=이나리 기자)칼날 앞에 설 것인가, 칼자루를 쥘 것인가. 미·중 갈등 속에 '반도체 칩4 동맹' 참여 여부는 우리 반도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래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당면 과제는 메모리 영역을 넘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글로벌 1등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명실상부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양수겸장을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기업(IDM)으로서의 면모를 세우는 것이죠. 지디넷코리아가 '반도체 칩4동맹'에 대한 해법을 전문가 9인에게 들어본 데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래에 미칠 영향을 살펴봤습니다. [편집자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반도체 신공장 건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양사는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파격적인 보조금 지원 혜택과 함께 미국이 보유한 반도체 설계 원천 기술을 공급받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이 미국 진출에 성공하려면 우리 정부가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동맹'에 참여해 공급망 확보에 유리하도록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장비의 수출 규제 강화에 나서면서 한국의 칩4 참여의 필요성은 더욱 가시화됐다.
■ 삼성전자 美에 11개 팹 추가…SK하이닉스, 후공정패키징 팹 투자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2024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향후 20년간 텍사스주 테일러시와 오스틴에 1천921억달러(약 252조원)를 투자해 추가로 11개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11개 팹은 모두 파운드리 관련 생산시설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투자가 아직 100% 확정은 아니지만, 삼성전자가 텍사스주에 세제혜택 신청서를 제출한 만큼, 시행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SK하이닉스도 최근 150억달러(약 19조원)를 투자해 미국에 첨단 패키징 제조시설과 연구개발(R&D)센터를 세운다는 계획을 밝혔다. 팹 위치와 착공시기는 아직 미정이다. 이 팹이 건설된다면 SK하이닉스의 첫 미국 반도체 공장이 된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반도체 제조시설을 짓는 이유는 파운드리 수요 업체인 미국의 팹리스 업체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현지 수주 물량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더불어 미국이 보유한 반도체 원천 기술과 인력들을 활용하기에도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도체 장비(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KLA), EDA(시놉시스, 케이던스) 업체뿐 아니라 다수의 반도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또 퀄컴,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 미국 팹리스 업체들은 파운드리의 대형 고객사들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미국이 68%를 차지했다. 한국의 팹리스 점유율이 1%라는 점과 비교하면 미국의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는 압도적이다.
SK하이닉스의 후공정 패키징 공장 투자 역시 적층 원천기술 확보에 유리할 것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는 후공정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기업, 대학 등과 협업할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패키징 분야는 칩 미세화와 같은 전공정에 비해 중요성이 평가절하돼 왔다. 그래서 그동안 패키징 분야는 저렴한 인건비로 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 대만에서 주로 담당해 왔다. 하지만 반도체 전공정의 회로 선폭 미세화에 한계가 드러나면서 첨단 패키징 기술의 고도화를 통한 반도체 성능 향상으로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최근 인텔, TSMC가 패키징 분야 투자를 늘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전공정만으로 미세 공정 진화는 2016년 이후로 유효하지 않게 됐다"라며 "3나노, 2나노로 갈수록 비용이 많이 들고 공정 한계에 직면했는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어드밴스드 패키징'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근 삼성전자도 어드밴스드 패키징사업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듯이, 국내 기업들도 후공정 기술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라며 "새로운 후공정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전체 반도체 시장을 뒤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미국 정부의 반도체지원법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투자를 늘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과학법'은 미국에 반도체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업에 총 390억달러 지원, 25%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최근 이 법은 미 상하원을 통과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 대표는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는 반도체 초일류 기업으로 가려는 과정 중 전략적인 포석"라며 "TSMC와 경쟁 중인 파운드리 시장에 최근 인텔도 가세하면서, 삼성전자는 메이저 기업과 경합에서 파이를 키우기 위해 미국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을 잘 활용하면, 우리가 그동안 부족했던 비메모리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정부, '칩4 참여'로 국내 기업 반도체 기술 초격차 지원해야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수혜를 받게 된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세부 내용을 보면 미 연방 지원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투자가 제한된다는 조항이 담겼기 때문이다.
중국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뿐 아니라 TSMC는 앞으로 중국 시장에서 28나노(㎚·10억분의1m) 이하 반도체 생산시설을 증설하지 못한다. 이는 미국이 중국을 대놓고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우리가 칩4 동맹에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그리고 그런 동맹이 없더라도 현재 중국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미국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상황이다"라며 "칩4 참여 여부를 떠나 향후 삼성전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중국에 공장을 더 짓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투자를 이어 가려면 우리 정부의 칩4 참여가 불가피해졌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미국과 대척점에 놓이게 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유재희 반도체공학회 부회장겸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원천 기술, 지적 재산권, 기술 표준, 설계 소프트웨어, 극자외선(EUV) 등의 생산장비 없이는 삼성전자는 존립하기 어려우며 기술적인 초격차는 더더욱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또 "정부가 국제 외교 통상 측면에서 활로를 만들어 삼성전자 등 우리나라 반도체 회사가 기술 개발에만 매진할 수 있게 해주면, 유리한 국면이 될 수 있다"며 "한국은 미국의 중국 반도체 산업의 견제로 인해 생긴 소중한 시간에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의 기술 격차를 반드시 만들어 내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연구위원은 "칩4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시장을 교란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술 협력, 인재 육성, 인재 교류 등 큰 차원의 협력을 얘기하는 것 같다"며 "정부 차원에서 칩4 협력은 도움이 될 만한 일이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국내 기업의 미국 투자에 대해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반도체 등 첨단 산업 투자를 늘린다는 정책들이 나오면서, 앞으로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기회가 많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며 "그런 부분에 있어서 기업은 기회를 보고,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나리 기자(narilee@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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