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제개편 공론화..코로나19가 영향 미친 영유아 발달 문제부터 논의돼야
“지금 코로나 때문에 애들 사회성 떨어지고 학력 떨어지고…저소득층은 더 심하고. 그런 것은 안 보이나. 왜 급한 현안들은 처리하지 않고 공감 못 할 것들만 내놓는지 모르겠다.”
교육부가 취학연령 1년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공개한 후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지난 2일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폐기할 수 있다”라고 밝히면서 학제개편안이 사실상 폐기 순서를 밟는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교육부는 일단 공론화 과정을 시작했다.
‘만 5세가 발달단계상 초등교육을 시작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며 비판 여론이 큰 가운데, 정부가 2025년 이후로 학령기에 접어드는 영유아들이 코로나19 대유행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책 추진안을 짰다는 비판이 나온다. 범정부 차원에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한 아동의 발달 지연 및 심리적 문제 등을 해소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교육부의 추진안을 보면 2025년부터 4년간 취학연령을 조정한 후 2029년부터는 만 5세 취학이 일반화된다. 조기 입학은 2019년생(현재 만 2세)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2020년 전후 몇 년간 출생한 영유아들은 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사회적 접촉이 줄었고, 어린이집에서도 상황에 따라 만 2세부터 마스크를 쓴 채 생활한다. 코로나19 유행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태어날 영유아들도 영향권에 들 수 있다.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은 영유아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이 2020년 11~12월 부모 및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와 아동의 삶’ 설문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만 0~6세 아동의 부모들은 코로나19에 따른 언어발달에 대한 염려(5점 척도에 평균 3.23점)가 높았다. 보고서는 “특히 일상화된 마스크 착용,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교육기관의 휴관 등으로 인해 만 0~6세 자녀에 대한 언어발달에 대한 걱정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짚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지난해 6월 개최한 ‘코로나19, 영유아 발달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같은 해 5월 서울·경기 지역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 및 교사 709명, 학부모 742명 등 총 145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어린이집 원장 및 교사의 71.6%, 학부모의 68.1%가 코로나19가 아동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원장 및 교사들은 ‘마스크 사용으로 인한 언어발달 기회 감소’(74.9%)를, 학부모들은 ‘바깥 놀이 위축으로 인한 신체운동시간 및 대근육·소근육 발달 기회 감소’(76.0%)를 가장 큰 영향으로 꼽았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양신영 사걱세 정책대안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코로나19 유행이 2022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면 아동들의 발달지연은 3년 이상 누적되는 셈”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초등 1학년에 진학했을 때의 발달 격차 및 수준을 고려해 교육과정의 양을 핵심성취기준 위주로 진행하거나 난도와 속도를 조절하는 등 교육과정 운영상의 묘가 필요하며 입학 후 개별 아동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 및 도움 제공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장 코로나19 유행 장기화 속 영유아들의 발달지연 문제나 학령기 아동의 교육격차, 정신건강 문제 등에 대한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서울시보육특별자문단은 지난 2월 자문회의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영유아”라며 서울시 차원의 대책을 건의한 바 있다.
교육부가 취학연령 하향 시점을 2025년으로 못 박아 제시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신속히 강구하라”고 힘을 실어준 것을 보면 영유아들의 코로나19 영향은 정책 수립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추진안을 짜기 전 학부모·전문가들에 사전 여론 수렴이나 논의를 거쳤다면 짚어낼 수 있는 문제다. 김영연 한국교육개혁전략포럼 사무총장은 지난 2일 교육부 장관과 학부모단체 관계자들 간 간담회에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엄마, 아이들도 힘들었고 발달경계선에 있는 아이들도 상당히 많다. 학급당 인원수를 줄여 어떻게 아이들을 잘 돌볼 것인가를 신경 써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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