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는 실제 붕괴되고 있다"
(시사저널=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최근 미국 예일대의 한 연구보고서가 유럽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기업 철수와 제재는 러시아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는 요지의 이 보고서는 7월20일 처음 발표되고 8월2일 최종 업데이트됐는데, 무려 118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는 끄떡없다는 기존 보도를 완전히 뒤엎는 것이어서 파장이 클 전망이다.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미친 여파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첫 학술 보고서로 평가된다. 이 연구의 공동저자는 제프리 소넨펠트, 스티븐 티옌, 프라넥 소콜로프스키 등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들과 다국적 연구원들이 이 연구의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러시아 GDP 40%가 사업 철수하거나 축소
예일대 교수들은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이 5개월째로 접어드는 가운데, 러시아에 저항하는 전 세계의 단합이 러시아 경제의 '복원력'과 '번영'으로 인해 오히려 '서방의 희생을 가져오는 경제적 소모전' 양상이 되는 서사로 바뀌고 있다"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푸틴 정권이 스스로에게 유리한 경제 통계치만 선별적으로 발표하고 있어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공동저자 중 한 명인 제프리 소넨펠트 교수는 현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난 5개월간 러시아 정부 발표를 믿기 어려워 경제학자들이 의심하게 되었다"면서 "신중하지 않게 러시아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검증 없이 보도하는 언론도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이 보고서에서 학자들은 러시아 정부가 총수입 및 수출 정보, 해외무역 및 직접투자 정보, 석유 및 가스 월별 생산량 데이터, 자본 투입 및 산출 흐름, 주요 기업의 재무제표, 중앙은행 통화 기반 데이터 등 10가지 주요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가 러시아 경제 상황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러 전략에서 제재의 압박을 유지 또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보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위해 러시아어로 된 민간 정보, 중국 등 러시아와 거래하는 외국의 무역 정보 등 비전통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을 활용해 조사했다고 전했다. 이 방대한 연구보고서에서 제시한 러시아 경제 악화의 근거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쟁 발발 후 패션에서 재정 분야에 이르기까지 약 1000개 이상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했는데, 이는 러시아 국내총생산의 40%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난 30년간의 거의 모든 외국 기업 투자를 되돌리는 것이다. 또한 '전례 없는' 자본과 수만 명에 달하는 고학력 전문기술자의 대거 해외 이탈도 경제 기반을 약화시켰다. 실제 제재로 인해 러시아의 수입업계는 '거의 붕괴'한 상황으로 수입 규모가 50%가량 축소되었다. 이로 인해 촉발된 반도체·칩 등 부품 공급 부족으로 해외 기술과 부품 수입에 의존하는 러시아 내 업체들의 생산이 중단되었다.
아울러 러시아 국내총생산의 40% 가치에 상응하는 외화준비금은 이미 10%로 낮아진 상태로, 이렇듯 급격히 증가한 재정지출로 러시아 정부의 재정은 오랜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전쟁 개시 이래 대규모 실업자 증가, 현재 16%에서 20%를 향하는 급격한 인플레이션 또한 비틀거리는 경제 상황의 지표로 지적되는 가운데 경제의 모든 부문이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러시아 정부의 연간 재정의 60%를 차지하는 에너지 수출이 차질을 빚게 됨에 따라 수출도 회복할 수 없는 큰 타격을 받았다. 가장 큰 고객이었던 EU 시장이 러시아 화석연료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에 중국과 인도를 상대로 한 석유 수출은 할인된 가격으로 인해 배로 증가했지만, 천연가스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천연가스 수출에 필수적인 운송 파이프라인이 중국과 인도에 아직 건설되지 않아 향후 상당한 인프라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9년 개통된 중·러 간 유일한 가스 파이프라인인 '시베리아의 힘'을 통한 대중 가스 수출은 러시아 수출 총량의 10%에 불과하다.」
유럽시장 대체할 대안 찾기란 거의 불가능
글로벌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인스티튜트(IISS)의 마리아 샤기나 에너지안보 및 제재 전문가도 예일대 연구보고서와 비슷한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러시아가 에너지 초강국으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제목의 IISS 6월 기고에서 러시아가 향후 아시아 시장에서도 큰 난관을 겪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대러 경제제재에 동참하고 있고, 중국은 한 국가에만 에너지 공급을 의존하지 않는 다각화 전략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에 구매에 한계가 있으며, 이로 인해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는 과도하게 높아진다고 봤다.
한마디로 러시아가 대규모 유럽시장을 대체할 대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러시아가 전통적인 주요 고객인 유럽시장과 작별함에 따라, 러시아가 화석연료를 유럽에 제공하고 대신 유럽의 자본과 기술을 받는 상호 호혜적인 관계가 끝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EU 집행부는 지난 5월 러시아 화석연료에서 독립하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앞당기기 위한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는 러시아산 가스의 3분의 2, 2027년까지는 100% 독립을 목표로 정하고 에너지 인프라를 위해 2100억 유로(약 28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 4월 "서방의 경제적 맹공격 전략은 실패했다"며 "오히려 서구 사회의 경제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일부 전문가와 친러 성향의 극좌 및 극우 정치인들 또한 이에 호응하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리틀 푸틴'이라는 별명을 가진 극우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7월15일 "비효율적인 대러 제재로 EU는 자신의 허파에 총을 쐈다. 취소하지 않으면 유럽 경제를 파괴할 위험이 존재한다"며 새로운 전략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러 제재의 무용론을 주장해 오던 이들은 최근 예일대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한동안 SNS에서 침묵을 지키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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