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의 신' TSMC 창업자 만난 펠로시..中 "회사 존립 위험해진다" 경고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를 놓고 미국과 중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낸시 펠로시(82) 미국 하원의장은 대만 방문 이틀째였던 3일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장중머우·91) 전 회장과 류더인 회장을 만났다. 지난달 미 연방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반도체·과학법(The CHIPS and Science Act)’과 TSMC의 미국 추가 투자 가능성에 관해 얘기를 나눴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며 TSMC의 미국 밀착 움직임을 견제했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놓고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외국 기업을 향한 양국의 편 가르기 압박도 커지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3일 페이스북에 “펠로시 의장과의 오찬에 나의 오랜 친구 모리스를 초청했으며, 우리의 걸출한 기업가인 류더인 TSMC 회장, 페가트론 정젠중 부회장도 현장에 있었다”는 글과 함께 사진 여러 장을 올렸다. 자유시보 등 대만 언론은 펠로시 의장이 오찬 전 TSMC 류 회장과 별도 화상회의를 했으며, 입법원(국회)을 방문해서도 ‘반도체·과학법’이 반도체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을 말했다고 전했다. 펠로시 의장과 TSMC 수장과의 만남에 이목이 집중되자, TSMC 대변인은 “류 회장은 오찬에만 참석했을 뿐, 펠로시 의장을 따로 만나진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펠로시 의장이 TSMC 최고위층 두 명을 만난 것은 대만 반도체 생산이 미국 국가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보여준다”고 했다.
미 의회는 최근 ‘국가 안보 법안’이란 평까지 나오는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중국 위협에 맞서 미국 반도체 제조 역량을 키우고 미국이 중심이 되는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법안이다. 전체 2800억 달러(약 367조 원) 규모의 ‘반도체·과학법’은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약 68조 원)를 지원하며, 그중 390억 달러(약 51조 원)가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시설 건설 보조금으로 배정됐다. 조 바이든 정부와 미 정치권은 미국에 공장을 짓는 외국 기업에도 보조금을 주겠다며 TSMC·삼성전자 등에 미국 투자를 압박했다. 그 결과로 TSMC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120억 달러(약 15조7000억 원)를 투입해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짓고 있다. 2014년부터 애리조나 공장에서 5나노미터 반도체를 생산한다. 미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삼성전자도 이 법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포천은 “펠로시 의장과 TSMC 경영진의 만남은 TSMC가 중국의 분노를 견딜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TSMC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지 선택을 한 것 같다”고 했다. TSMC가 미국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는 해석이다.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난 모리스 창은 미국 유학 후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경력을 쌓았다. 반도체 산업을 연구하는 대만 국책연구소장을 거쳐 56세이던 1987년 TSMC를 창업했다. 대만 정부가 초기 자본금 절반을 댔다. 현재 TSMC 최대주주는 대만 정부 산하 국가개발펀드(약 6%)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미국이 TSMC에 곤란한 선택을 강요한다고 비판하면서도, TSMC를 향해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말라는 압박 메시지를 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신원이 확실치 않은 업계 전문가의 말을 인용, “펠로시와 TSMC 회장의 만남은 TSMC로부터 추가 투자를 이끌어내거나, 애리조나 공장 건설을 가속화는데 도움이 되기는 커녕, TSMC를 더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 제조사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존립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도 했다. 중요한 시장인 중국 시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다.
중국은 2021년 4325억 달러어치(약 567조 원) 반도체를 수입했는데, 그중 36%를 대만에서 수입했다. 대만산 수입의 상당 부분이 TSMC 제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난해 TSMC 전체 매출에서 중국 판매 비중은 10%에 그쳤다. TSMC의 최대 고객은 미국이다. 미국 판매가 지난해 TSMC 전체 매출의 64%를 차지했다. 특히 아이폰 제조사인 미국 애플 혼자 TSMC 매출의 약 25%를 차지했다.
중국이 TSMC를 갖기 위해서라도 대만 무력 통일에 나설 것이란 추측은 이미 널리 퍼져 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산하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연구원의 천원링 총경제사는 올해 5월 30일 한 포럼에서 ‘대만 수복’을 주장하며 “본래 중국에 속한 기업인 TSMC를 반드시 중국 수중에 빼앗아 와야 한다”고 했다. TSMC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류더인 TSMC 회장은 지난달 31일 방송된 CNN ‘파리드 자카리아 GPS’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도 TSMC를 무력으로 장악(콘트롤)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TSMC는 가장 가치가 큰 자산인데, 이게 중국 국경 밖에 있어 중국이 TSMC를 완전히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진행자 말에 “군사력을 쓰거나 침략하면 TSMC 공장은 가동 불가(non-operable) 상태가 된다”고 했다. 유럽·일본·미국 등 외부 세계와 실시간 연결돼 있고, 원료부터 화학물질, 예비 부품,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진단까지 모두 연결된 아주 정교한 제조 시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모든 사람의 노력으로 이 공장이 돌아가기 때문에, 무력으로 뺏는다 해도 가동시킬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은 대만·한국·일본을 참여시켜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고립시키는 이른바 칩4(chip 4) 반도체 동맹도 추진 중이다. 대만·일본이 참여를 확정한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의 참여 가능성을 견제하며 윤석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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