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280억, '외계+인' 330억..한국영화 제작비, 200억원 훌쩍 넘어선 이유?

오경민 기자 2022. 8. 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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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커지니 '통' 커진 한국영화
OTT 등 부가판권 시장 커지고
수출도 활기.. 과감한 투자 늘어
표준근로계약서 정착 등도 영향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는 순제작비만 330억원을 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CJ ENM 제공.

<외계+인> 1부 330억원(7월20일 개봉), <한산: 용의 출현> 280억원(7월27일 개봉), <비상선언> 260억원(8월3일 개봉), <헌트> 195억원(8월10일 개봉).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순제작비 200억원을 넘나드는 한국 영화가 줄줄이 개봉하고 있다. 총 제작비가 100억원만 들어가도 ‘대작’ 평가를 받던 시기는 지났다. 올여름에만 순제작비 200억~300억원에 달하는 영화를 4편이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의 제작비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영화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영화 수익원이 다변화하고 시장이 확대된 것을 한 요인으로 꼽았다. 영화제작사 관계자 A씨는 “이전에는 극장 수익만이 영화의 손익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었다면 요즘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IPTV 등 부가 판권 시장이 매우 크고, K콘텐츠의 수출도 잘되는 편이라 극장 관객 의존도가 많이 줄었다”며 “극장에 일반관 외에 4DX, 아이맥스 등 특수관이 많아지고 관람료가 오른 것도 영향이 있어 보인다. 관객 수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따지는 것은 실효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의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은 순제작비만 113억원이었다. 극장 관객에만 의존하는 과거였으면 3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었으나, 해외 193개국에 선판매되면서 손익분기점을 낮췄다. 향후 주문형비디오(VOD) 등 부가수익을 고려하면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130만~140만명선으로 추정된다. 이 영화는 3일까지 171만 관객을 동원했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 B씨도 “한국 극장 관객에만 의존하던 과거에는 영화를 만들 때 ‘제작비 200억원 이상’은 설계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아무리 관객이 많이 들어도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었다”며 “최근에는 해외 시장이 넓어지고 OTT 플랫폼이 많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200억~300억원대 제작비 설계가 가능해졌다. 해외 시장에서 한국 영화 판매단가도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명량> 때와 다르게 배를 물 위에 띄우지 않았다. 컴퓨터 그래픽(CG)과 시각특수효과(VFX)를 이용한 디지털 촬영을 택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OTT 등을 통해 국내 시청자들이 해외 콘텐츠를 많이 접해 눈높이가 올라간 만큼, 한국 영화도 기대에 발맞춰 제작비를 늘렸다는 해석도 있다. 세트장 제작, 컴퓨터그래픽(CG)이나 시각특수효과(VFX) 등 후반작업에 비용을 더 많이 투자하며 영화 품질과 완성도를 해외 콘텐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B씨는 “예전에는 ‘한국 드라마는 이 정도면 훌륭하지’ ‘한국 영화는 이 정도면 됐지’ 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제 그런 정서가 없어졌다”며 “관객 눈높이에 맞춰 세트장, CG, VFX 등 모든 것을 더 정교하고 고퀄리티로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영화계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등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도 제작비 상승을 일부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A씨는 “표준근로계약서를 보편적으로 쓰는 업무 환경이 조성되면서 인건비를 무작정 줄일 수 없어졌다는 얘기가 현장에서 들려온다”고 했다. B씨 역시 “배우들 몸값이 오르기도 했지만, 그 외 전체적으로 영화 제작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인건비가 모두 올랐기 때문에 제작비가 늘어났다”고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영화 스태프들이 법정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비율, 표준근로계약서 계약 경험을 한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20년 영화 스태프가 최근 1년 이내 프로젝트 계약 형태로 표준근로계약서 및 기타 서면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답한 비율은 96.3%에 달했다.

업계는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의 예산이 증가하는 배경과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A씨는 “그동안 연출부, 촬영부, 조명부 등 영화 인력들을 쥐어짜며 일을 시켰다가 이제 정상화된 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B씨는 “과거에는 시장 사이즈가 작다보니 창작자들의 상상력도 한계에 부딪혔다. 200억~300억원 제작비는 아직 미국의 독립영화 예산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비용을 들여서 콘텐츠에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했다.

다만 올여름 제작비 수백억원의 영화가 잇달아 개봉한 데에는 거리 두기가 해제되며 공개를 미뤄오던 고예산 영화들이 앞다퉈 개봉한 영향도 일부 있다. 영진위가 펴내는 ‘한국 영화산업 결산’을 보면 2017년부터 순제작비 100억원 이상을 들인 한국 영화 개봉 편수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년과 지난해에는 급감했다. 영화 평균 순제작비도 감소했다. 영진위는 “2021년 평균 순제작비가 전년 대비 감소한 것은 코로나19의 확산 영향”이라며 “상대적으로 높은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들이 극장 개봉을 연기한 사이 저예산 영화들이 연내 개봉을 이어나갔다”고 분석했다.

실제 올여름 개봉한 <비상선언>은 지난해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던 작품이다. 결국 해를 넘겨 지난 1월로 개봉 시기를 확정했던 <비상선언>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반년 이상 일정을 늦춰 이번 여름 개봉했다. <한산: 용의 출현>도 2020년 촬영을 마쳐 지난해 여름 개봉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올해 스크린에 올랐다.

영화 <비상선언>은 비행기 세트를 만들어 360도 회전할 수 있는 짐벌에 올려서 실제 상황 같은 장면을 만들어 냈다. 쇼박스 제공.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영화 <헌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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