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집단 혼수상태에 빠진 한국 정치

기자 2022. 8. 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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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변호사, 前 국회의원

과거 잘못 되풀이하지 말라는

정권교체 진의 착각한 新정권

패배한 민주당도 구태 그대로

수치심도 없는 여야 당권 다툼

오랜만에 푹 쉰다는 尹대통령

모두 계속 쉬라는 얘기 나올 판

“상대가 더 잘못했으니까 자기들도 조금 잘못해도 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이 더 큰 잘못이기 때문에 우리도 계속 잘못하겠습니다.” 요즘 SNS에 돌아다니는 ‘한 문장으로 표현한 한국 정치’라는 글귀다. 한숨이 나온다. 문재인 정권이 더 큰 과오를 저질렀기 때문에 새로 출발한 정부의 허물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쪽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다. 검찰 출신에 편향되거나 사적 인연에서 비롯된 인사를 지적받으면 “과거엔 민변 출신이 도배를 하지 않았습니까?”라며 반문한다. 마치 직전 정부의 실책이 새 정부가 하는 일에 무조건적인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는 듯이 들린다. 당연히 틀린 말이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국민이 정권교체를 해준 것이다.

그런 집권 여당의 모습에 건건이 손가락질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책임질 문제는 외면한 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편 가르기와 남 탓을 계속하겠다는 쪽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저학력·저소득층이 여당을 지지한다고 국민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놓고도 사과나 해명은커녕 언론이 앞뒤를 자르고 왜곡했다고 책임을 미룬다. 세대교체를 앞세워 전당대회에 나선 이른바 97세대 당 대표 후보들의 발언을 살펴봐도 큰 차이가 없다. 많은 사람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된 계기인 조국 사태, 아집에 가까운 부동산 정책 등에 대한 통렬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공격해서 점수를 쌓을 생각에 여념이 없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대통령선거를 치르고도 정치권은 부끄러운 줄 모른다. 국민 앞에 내세울 성과를 만들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잘못을 폭로해 타격을 입히는 게 성공의 유일한 공식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실수해서 비판을 받을 때도 문제의 원인을 찾아 고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불을 켜고 저편의 흠집을 뒤진다. 마침내 하나 찾아내면 자랑스럽게 그걸 내민다. 정치권 전체의 공동 책임이라는 개념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듯이.

과거에는 그런 전략이 먹히기도 했다. 직전 정부에 대한 대규모 사정은 정권 출범 초기의 지지율을 올리는 데 특효약이었다. 반대로 집권 여당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면 야당의 인기가 올라갔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이나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을 들고나와 기세등등하게 전직 국가정보원장들을 고발한 윤 정부는 기록적으로 낮은 지지율을 보인다. 문 정부가 한 일에 분노하는 국민이 적지 않음에도 그렇다. 지난 정부의 잘못과 이번 정부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여당의 인기가 급락해도 야당에 대한 신뢰가 올라가지는 않는다. 윤 대통령이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도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찍었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목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유권자들도 진화한다. 이제는 한쪽에 실망했다고 자동적으로 다른 쪽에 점수를 주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면 여야 정치권도 새로운 전략을 꺼내 들고 성과 경쟁에 나서는 것이 자연스럽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집권을 하기도 어렵고, 설사 정권을 잡는다 해도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동력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변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징계를 받은 당 대표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당권 다툼에 여념이 없다. 자신들이 뽑은 대표가 중징계를 받은 사실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자각 같은 건 애초에 없다. 경쟁자의 잘못을 부각해서 자신들 이익으로 연결시키면 그만이라는 태도다. 야당도 다르지 않다. 유력한 당권 주자의 ‘사법 리스크’가 걱정스럽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스스로의 문제로 여기지는 않는다. 저 사람한테 문제가 있으니 나를 당 대표 시켜 달라는 얘기를 할 뿐이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푹 쉬신다고 한다. 휴가 중에 정국 구상을 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대통령실 관계자가 “일 같은 건 덜 하시고 오랜만에 푹 쉬고 있는 상태”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한국 정치 전체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단적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다. 아직까지는 SNS에 조롱의 말이 오르내릴 뿐이지만, 이대로 계속 가면 모두 푹 쉬라는 얘기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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