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개발에 푹 빠진 오세훈..'좋긴 한데 가능성은'
하계·은평엔 '세대 공존형' 임대주택
근거 법 없고 주민반발에 이해관계도 엇갈려
오세훈 서울시장이 고층 개발에 푹 빠졌다. 앞서 법정 한도 용적률을 초과하는 내용의 용산정비창 개발 방안을 내놓은 데 이어 종로구 세운지구와 노원구 하계5단지 등에도 고층·고밀 재개발을 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해당 부지의 기존 용도에서 벗어나 이같은 개발을 하려면 근거 법부터 마련해야 한다. 주민 설득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은평 등에서는 이미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도 저기도 고층건물 올린다
최근 싱가포르와 베트남으로 출장을 떠난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들 도시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서울 개발 계획을 내놨다. 사업 대상지로는 노원구 하계5단지와 종로구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은평구 혁신파크를 꼽았다.
서울 최초의 공공임대주택인 하계5단지는 재건축을 통해 고층 주거단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애초 용적률 93.1%를 435%까지 확보하고, 가구 수도 이전보다 2배 이상 확보한다. 평형 확대, 커뮤니티시설 확충 등을 통해 '타워팰리스' 같은 임대주택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재건축을 앞둔 영구·공공임대 단지 34곳에 대해 용적률 상향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2009년 재건축된 싱가포르의 공공주택 '피나클 앳 덕스톤'이 롤모델이다. 50층, 7개동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공공주택으로 알려졌다. 도심에서 일하는 중·저임금 근로자에 저렴하게 공급됐으며 현재 1848가구가 살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용도, 용적률에 관계없이 고밀 복합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지난달 청사진을 발표한 '용산국제업무지구'와 마찬가지로 법적 상한 용적률인 1500%를 뛰어넘는 초고층 건물을 건립할 계획이다. ▷관련 기사:용산정비창, '1만 가구' 대신 국제업무지구로…'용적률 1500% 이상'(7월26일)
이를 위해 싱가포르의 도시계획 정책인 '화이트 사이트(White Site)'를 도입하겠다는 목표다. 다만 규제를 완전히 풀어주는 화이트 사이트 대신 용도용적제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식으로만 관련 법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은평 혁신파크에는 노인복지주택인 '골드빌리지'를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실버타운인 '캄풍 애드미럴티'에서 착안, 실버타운을 중심으로 공공주택을 건립해 3세대가 근거리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할 전망이다.
오 시장은 "새집을 지을 택지가 없는 서울에서 신규주택을 건설해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노후 임대주택 재건축"이라며 "앞으로 임대주택은 실제 시민의 삶을 고려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완전히 탈바꿈시키겠다"고 말했다.
법적 근거 없고 각 지자체 이해관계 엇갈려
개발 계획을 밝혔다고 해서 바로 추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조차 없다. 오 시장이 '서울판 화이트사이트'로 꼽은 '도심 복합개발 특례법'은 지난 2020년 발의된 뒤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작년 6월 열렸던 국토법안심사소위가 마지막 논의다. 이때 회의에서는 △타법과 충돌지점 다수 △개발이익 환수 미흡 △상업시설 과잉 및 주거시설 부족 등의 지적을 받았다.
같은 당인 국민의힘 소속 김희국 의원도 당시 "주택법에 따른 실수요자의 문제라든지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개발부담금을 징수 안 하는 등 이 법에서 예외 조항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타법이 다 무너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시가 구상하는 고층 고밀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측면에서 특례법 제정을 시도할 수 있지만 꼭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과도한 특혜 문제를 두고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존에 높이규제 등이 지나치게 강하게 오랜 기간 유지됐기 때문에 구도심 활성화가 저해된 건 사실"이라며 "규제의 부작용을 덜어내고 입지가 갖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개발은 한 두곳 정도 시범 삼아 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 동의까지도 첩첩산중이다. 서울시가 지난 1일 은평구 '골드 빌리지' 계획을 발표하자 김미경 은평구청장(더불어민주당)은 즉시 "주민과의 사전 소통과 협의가 없었다"며 "혁신파크는 계획대로 성장동력 클러스터로 조성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서울시는 "서울혁신파크 복합개발 계획을 수립 중"이라며 "세대공존형 임대주택 공급은 기존 계획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구상단계부터 구청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서 주민반발 등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오세훈 시장은 시정 기조를 유지하고자 지속적으로 개발 계획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존 주거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재개발 방식으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하은 (le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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