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권 이탈 오지산행] "길 잃으면 아무도 찾으러 안 갈 거야" 인터넷에도 없는 미답의 계곡

한효희 2022. 8. 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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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덕풍계곡 벼락바위봉 지류 8km 개척 산행
태곳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산터골.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에 있어서 전화를 못 받았어요"라고 말하면 요즘 믿을 사람이 있을까? 시골 구석구석까지 통화는 물론 데이터를 쓰는 시대. 한국사람에게 스마트폰은 필수품이다. 그런 만큼 사람들은 스마트폰 금단현상에 빠져 있다. 스마트폰 없는 삶, 인터넷 없는 하루를 받아들일 수 없다. 세상이 초록으로 눈부신 지금, 단 하루만이라도 스마트폰이라는 그물을 탈출해 보는 건 어떨까? 이 땅에 남은 마지막 '통화권 이탈 지역'으로의 망명! 압도적인 폭염과 디지털 그물을 뚫고, 오지계곡으로 떠나보자. - 편집자 주

집채만 한 바위들이 계곡 곳곳을 지킨다.

"그 험한 곳에 가겠다고? 길 잃으면 누가 찾으러 가?"

어르신에게 산터골에 대해 묻자 돌아오는 첫마디였다. 등산로도 없고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미답의 계곡을 두 손으로 더듬어가며 올랐다. 수억 년을 웅크리고 있었을 기암괴석이 거대한 자태로 방문객을 압도한다. 태초의 세계로 시간 여행 온 듯, 계곡은 자신의 시공간으로 우리를 빨아들였다.

산터골은 언론에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오지계곡이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오지계곡으로 정평 난 삼척 덕풍계곡에서도 본류가 아닌 지류이기 때문. 인터넷에는 계곡 초입만 다녀온 짧은 산행기 두 건을 제외하곤 아무 정보도 없었다. 오직 GPS와 나침반, 육감에만 의존한 채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곳이다.

산터골을 알게 된 건 필연 같은 우연이었다. 취재를 위해 오지계곡을 찾던 중 삼척 덕풍계곡에 이르렀다. 주변에 등산로가 없는 산과 계곡이 많았고, 지도를 잘 만져보면 그럴싸한 코스가 나올 것 같았다. 월간<山> 과거 기사들을 뒤져보다 본지 신준범 기자가 5년 전에 작성한 덕풍계곡 버릿골 개척 산행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서 선배는 산터골을 미완의 계곡으로 남겨두었는데 그 과업을 후배가 이어받게 된 것이다.

정예 인원을 수소문한 끝에 산터골 탐사대가 꾸려졌다. 아주대 산악부 임동예씨와 세종대 산악부 김서희씨다. 임동예씨는 작년 여름에 문경 오지산에서 함께 고생한 적 있다. 김서희씨는 한국대학산악연맹 체육대회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운동 천재다. 든든한 시작이다.

시원하고 맑은 물 덕분에 산행이 쾌적했다.

덕풍계곡 본류 아닌 지류

서울에서 차로 4시간, 덕풍계곡은 시간상으로 부산보다 먼 곳에 있었다. 차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태백에 이르자 차창 밖으로 여름을 한가득 머금은 고지들이 즐비했다. 구불구불 험준한 고개와 기암절벽을 휘감는 동월계곡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덕풍계곡 초입에 도착해 있었다. 계곡 초입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 숙소인 덕풍산장에 짐을 풀었다.

산장 주변에서 물건을 나르는 현지 어르신께 산터골에 대해 물었다. 산장 예약을 받은 아주머니도 "버릿골은 알아도 산터골은 모른다"고 하셨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그 버릿골 옆에 산터골?"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보물찾기의 첫 번째 비밀이 풀린 것 같았다.

"거기 들어갔다 길이라도 잃으면 누가 찾으러 가?"

풀린 줄 알았던 비밀이 다시 봉인된 느낌이었다.

산터골을 몇 번 가봤다는 어르신은 "용소골을 가지 왜 산터골을 가냐"며 묻는다. 산터골 상류에서 능선으로 올라 원점회귀하려는 계획을 말씀드리니 그냥 물놀이 좀 하고 계곡으로 그대로 내려오는 게 편하다고 일러 주신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차갑고 비관적이었다.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여 잠을 뒤척였다. 약간의 긴장감이 맴도는 새벽, 간단히 요기를 하고 산터골 들머리인 버릿교로 향한다. 산터골은 버릿골과 만나 버릿교 아래에서 덕풍계곡으로 합류한다. 계곡 들머리는 마치 커튼을 드리운 것처럼 그 속을 쉬이 내비치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계곡의 문을 열어 제치고 그 속으로 들어선다.

야트막한 3단 폭포는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

처음 드러내는 품속

재잘재잘 나긋한 물소리 외엔 모든 것이 고요하다. 수량이 많지 않아 압도하는 기세는 없지만 계곡은 포근하게 자연을 품고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중생대로 되돌아간 듯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아무런 인위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계곡은 타임캡슐 속에 오랫동안 고이 간직된 듯했다.

계곡을 따라 들어서면 이내 야트막한 3단 폭포가 나타난다. 울퉁불퉁 각진 바위를 계단삼아 오른다. 시원한 맛은 없지만 소소하고 아기자기하다. 폭포를 올라 계곡의 품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산터골과 버릿골이 Y자 형태로 만나는 곳에 이른다. 오른쪽 계곡이 버릿골이고, 왼쪽으로 오르면 산터골이다. 산터골 입구에는 거대한 바위가 마치 출입문마냥 계곡을 틀어막고 있다. 문지기 바위를 살포시 비껴 오르면 본격적으로 산터골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가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번엔 앙증맞은 실폭포가 현관 노릇을 한다. 산터골의 서막을 장식하듯 10여 m의 바위벽으로 수줍은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폭포 오른편에 마련된 로프를 잡고 올라서면 이제 거대 바위들이 향연을 펼치는 대회랑이 나타낸다. 산터골 터줏대감인 바위들은 계곡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 지나가는 방문객을 내려다본다. 수억 년의 시간을 인내한 바위의 위용 앞에서 인간의 시간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경외가 차오른다.

집채만 한 바위틈으로 요리조리 계곡을 오르다보니 마치 개미가 된 것 같다. 바위 곳곳에 철근으로 만든 계단이 있어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이 깊은 첩첩산중에도 인간의 손길이 뻗쳐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계곡을 오르다보면 젖지 않고 가기 힘든 구간이 있다.
산터골 초입의 실폭포. 로프와 철근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상류는 뱀들의 놀이터

바위지대가 막을 내리면 산터골은 더 은밀해진다. 우락부락한 아저씨가 어린아이로 변한 듯 계곡은 부드럽고 완만해진다. 푸르다 못해 짙은 나뭇잎들이 물길을 낮게 드리워 한여름인데도 서늘하다.

계곡 양옆으로 이따금 흙길이 나타나고 돌로 만든 축대도 듬성듬성 보인다. 덕풍계곡을 60년 넘게 지킨 덕풍산장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옛날에는 산터골에도 사람이 살았다고 일러준다. 볕조차 들지 않는 이 깊은 계곡까지 떠밀려와 살아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진다.

"앗!"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탄식 섞인 외마디 비명이 들린다. 상류에 이를 때까지 물에 빠지지 않았던 양수열 사진기자가 결국 산터골에 굴복하고 말았다. 산터골에는 제대로 된 길이 없기 때문에 물길을 따라 그대로 오르는 게 가장 수월하다. 수량이 많지 않을 때는 발을 적시지 않고 산행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계곡에 모든 걸 내맡기는 것도 산터골을 오롯이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물살이 약하고 숲이 우거진 상류는 동물들의 터전이다. 뱀도 예외는 아니다. 상류에 접어들자 시원한 계곡에서 반신욕을 즐기는 뱀을 종종 마주쳤다. 갓 태어난 녀석부터 다 큰 성체까지 크기도 다양했다. 대부분 살모사 계통이었다. 한국에 서식하는 독사의 독은 혈액독으로 사람을 죽일 만큼 강하진 않지만 환부가 썩어 괴사하거나 심하면 절단해야 한다. 체질이나 합병증 여부에 따라 사망에 이를 수도 있으니 여름철 인적이 드문 계곡을 오를 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들머리 3.5km 지점에서 북쪽 능선으로 오른다. 서쪽 벼락바위봉 능선과 북동쪽 783m봉 능선이 만나는 안부에서 작은 계곡이 산터골로 흐른다. 두 계곡이 만나는 곳에는 돌 축대가 쌓여 있다. 등산로는 없지만 능선을 오르는 원점회귀 코스를 구상하다 보니 여기로 오르는 게 제일 만만해 보였다.

도망가나 싶던 살모사는 이내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린다.
산터골을 오르기 위해서는 큰 바위를 이리저리 넘어 다녀야 한다.

소나무가 지키는 능선

행복 끝 고생 시작이다. 능선에 이르는 길은 가파르고 흙이 무너져 힘이 배로 든다. 다만 한여름에도 잡목이 많지 않아 최악은 아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도를 올리다보니 금세 주능선에 올랐다. 일단 능선 위에 오르고 나면 거사를 치른 셈이다.

능선 곳곳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우람한 소나무가 정승처럼 지키고 서있다. 야생동물 배설물도 곳곳에서 보인다.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이곳의 주인은 나무와 동물이다. 조망이 터지는 작은 암릉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벼락바위봉에 이르기 전에 야영이 가능한 넓은 터가 나온다. 여기서 서쪽 능선으로 계속 가면 벼락바위봉을 지나 덕풍계곡 유원지 주차장으로 하산할 수 있다. 우리는 원점회귀하기 위해 남쪽 718m봉으로 올라 식치골로 하산한다. 벼락바위봉 정상을 포기하는 셈이지만, 조사한 바로는 별다른 경치가 없는 무명봉이었다. 하산길 곳곳에 붉은색 표지기가 있다. 누군가 이 길을 왔었다는 사실이 큰 안도감을 준다. "고맙습니다. 선배님!"하고 속으로 되뇐다.

718m봉 정상에서 식치골로 하산하는 능선은 가파르고 미끄럽다. 몇 번이고 미끄러지고 낙석을 굴리며 아슬아슬하게 산을 내려왔다. 저 아래 덕풍계곡 물소리가 가까워지고 이따금씩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빨리 계곡에 몸을 던지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날머리가 가까워질수록 산은 우리를 놓아 주지 않으려는 듯 거친 잡목으로 길을 막아섰다. 몇 차례 산과 씨름한 뒤, 마침내 산은 우리를 놓아 주었다.

날머리로 나오자마자 너나할 것 없이 계곡으로 풍덩 몸을 내던졌다. 시원한 계곡물에 흙먼지와 땀이 씻겨 내린다. 흐르는 계곡에 몸을 누이고 뜨거운 몸을 식혔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에 산터골이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우람한 소나무가 능선을 지키고 있다.
하산 후 시원한 덕풍계곡에 몸을 던지자 피곤이 싹 가신다.

산행길잡이

총 8km 정도의 코스이며 등산로가 없기 때문에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계곡을 따라 올라온 길을 그대로 내려가면 어려운 산행은 아니다.

수량이 많을 때는 물에 빠지지 않고 건널 수 없는 구간이 있다. 우천 시에는 탈출이 힘드니 산행을 금한다.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해야 하며 능선에서는 독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계곡에서는 휴대폰 신호가 잡히지 않으며 능선으로 오르면 잘 잡힌다.

산행은 버릿교에서 시작한다. 3단 폭포를 오르면 산터골과 버릿교가 만나는 Y 계곡에 이른다. 여기서 왼쪽이 산터골이다. 이내 실폭포가 나오고 오른편에 로프와 철근 계단이 있다. 이후에도 바위를 올라야 하는 구간이 몇 있는데 철근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상류로 오를수록 바위 지대는 잦아들고 계곡은 걷기 편해진다. 들머리 3.5km 지점에서 왼쪽을 보면 돌 축대가 있고 수량이 거의 없는 작은 계곡이 있다. 축대를 이용해 계곡으로 오른다. 작은 계곡 왼편 능선으로 올라 주능선까지 오른다.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진행한다. 능선 곳곳에 표지기가 걸려 있다. 몇몇 봉우리에서는 능선이 모호한 곳이 있으니 GPS를 세심히 봐야 한다.

벼락바위봉에 이르기 전 삼거리 안부에서 718m봉으로 이어지는 남쪽 능선을 탄다. 하산 길 곳곳에 붉은색 표지기가 있다. 718m봉 정상 부근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가장 큰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기이한 망루가 있는 카페 다정 부근으로 하산한다.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다시 들머리에 이른다.

교통 및 숙박(지역번호 033)

대중교통편이 많지는 않다. 태백버스터미널에서 풍곡·호산 방면 버스에 탑승해 풍곡에서 하차한다. 1일 2회(08:30, 14:50) 운행하며 소요시간은 40분이다. 호산에서 풍곡으로 가는 버스는 일 6회 운행한다. 덕풍계곡 유원지 주차장에서 버릿교까지 3.3km, 덕풍산장까지 5km 거리이다. 태백에서 택시를 이용할 경우 4만 원 안팎이다.

덕풍계곡 유원지 주자창 부근에 캠핑장(0507-1337-0394), 1박2일민박(575-1821), 계곡민박(572-7130), 풍곡통나무집(573-0777)이 있다. 계곡 안쪽에는 덕풍계곡펜션(572-9083), 아름골펜션(0507-1407-2920), 덕풍계곡펜션 귀밤나무(573-9437), 덕풍마루(010-4379-1235), 펜션꽃밭거랑(010-3114-9446)이 있다. 용소골 등산로 주변에는 덕풍산장(572-7378), 덕풍황토방(010-3203-0472), 토봉민박(572-7386)이 있다.

월간산 2022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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