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微微하지만.. 입에선 美味하리라

기자 2022. 8. 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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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옥 웅어회.
경남 남해군 미조항 가산식당 멸치찌개
부산 수영구 광안리 할매재첩국
전남 광양시 옴서감서 피리탕
전남 화순군 화순읍 사평다슬기수제비
전남 목포시 조선쫄복탕
충남 보령시 수정식당 밴댕이 조림
서울 마포구 향미 마라룽샤

■이우석의 푸드로지 - 작은 식재료들

다 커야 2㎝ 내외‘재첩’

하동·광양 섬진강 하구 특산품

고단백 저지방…타우린도 듬뿍

요즘이 제철인 ‘다슬기’

올뱅이·골뱅이 등 이름도 다양

타우린·칼슘 풍부…간에 으뜸

속 좁기로 유명 ‘밴댕이’

굽거나 조리고 디포리는 국물용

진짜 밴댕이 골목은 인천 구월동

그 외 작은 식재료들

박쥐똥서 걸러낸 모기눈알 수프

식용 개미 유충 ‘사막의 캐비아’

신기하다. 대체 이 맛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어찌 이 조그만 것을 찾아 먹을 생각을 했을까.

요즘 세상에는 다양한 종의 먹을거리가 있다. 같은 종류에도 크기가 완전히 다른 것이 각각 존재하고 그 맛 또한 다르다. 게(crab) 중에는 타고 다녀도 될 법한 킹크랩이 있는가 하면 손가락 두 마디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칠게도 있다. 손바닥보다 작은 벌떡게도 있다.

취향이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먹어보면 다 맛있다. 일명 독도새우라 불리는, 얼추 운동화만 한 크기의 도화새우와 새우젓에 쓰는 1㎝ 미만 젓새우의 대비는 어떤가? 생긴 것이야 비슷하지만 먹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귀하고 비싸기야 도화새우가 훨씬 더하겠지만 어디 새우젓 없이 족발을 먹을 수 있을까. 올해 초 푸드로지에서 ‘왕(王)’ 자가 붙은 커다란 음식을 다룬 바 있는데, 이번엔 반대로 크기는 작지만 그 영양과 맛이 아주 뛰어난 음식(식재료)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여름까지가 제철인 재첩이 당장 눈에 띈다. 일명 강조개(또는 갱조개)라 불리는 재첩은 한반도 남해안과 접한 섬진강 강모래 바닥에서 주로 잡힌다.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의 으뜸 특산물이다. 엄연히 백합목(재첩과)에 속하지만 다 커봤자 껍데기 기준 2㎝ 내외인지라 보통 육수를 내어 국거리로 쓴다.

재첩은 단백질을 엄청나게 함유했다. 100g당 약 13g으로 같은 무게의 두부(6∼8g)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다. 게다가 포화지방산 함량이 적은 고단백 저지방 식품이다. ‘입추(立秋) 전 재첩은 간장약’이라는 말도 있는데 실제 성분이랑 딱 맞아 떨어진다. 재첩에는 또 피로해소에 좋은 타우린이 잔뜩 들어 있어 해장에도 좋다.

중국에서도 많이 나지만 ‘허셴(河현)’이라 해서 대만에서 특히 즐겨 먹는다. 대만산 재첩은 간 영양식품으로도 쓴다. 슈퍼나 편의점에 가면 다양한 재첩환을 구입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시지미(シジミ)라 해서 된장국에 넣어 먹는다. 일본에서는 재첩을 넣어 국물을 낸 아카미소(붉은 미소된장) 된장국이나 영양보조식품 형태로 소비된다. 시마네(島根) 현이 재첩 주요산지다.

아담(?)하기로 재첩에 밀리지 않는 다슬기도 요즘 제철이다. 평소엔 다슬기가 산란한 알(새끼)을 품어 모래 같은 식감이 나는데 제철에는 그런 것이 없다. 다슬기는 중복족목 다슬깃과에 속하는 연체동물이다. 제 발로 슬슬 돌아다니며 작지만 더듬이도 있다. 영문 이름은 검은 달팽이(black snail)이지만 달팽이와는 다르다. 암수 구분도 있다.

하천이 많은 한반도에선 전국적으로 식용하는 단백질원이다. 따라서 이름도 많다. 표준어 다슬기보다 충청도 사투리 올갱이국으로 더 익숙하다. 지역에 따라 올뱅이(충주), 골뱅이(제천), 골팽이(강원 영서), 골부리(안동), 고디(경북), 고둥(경남), 대사리 또는 대수리(전남)라 부른다. 다슬기는 보통 유리박스나 물안경을 이용해 강바닥 돌멩이를 들쳐 뒤져 가며 잡는다. 다슬기가 활동하는 야간에 저인망으로 훑어 대대적으로 노획하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 요즘 씨가 말라 귀하다. 잡혀도 해감도 해야 하고 식당에선 일일이 까야 하니 손이 많이 간다.

다슬기 역시 ‘해장의 끝판왕’이다. ‘코딱지만 하다’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다슬기에도 타우린이 많다. 아미노산, 칼슘, 칼륨, 철분, 마그네슘 등 미네랄과 엽록소(피트산)까지 풍부해 간 기능 개선에 최고란 평이다.

작은 생선 중에는 졸복과 밴댕이, 멸치, 피라미가 맛이 좋다. ‘속 좁기로 유명한’ 밴댕이는 청어과에 속해 가시가 많고 등푸른생선이다. 연안에 서식하는 밴댕이는 6∼7월이 산란기다. 횟감으로 쓰기도 하지만 주로 굽거나 조려 먹고, ‘디포리(말린 밴댕이)’로 말렸다가 육수를 내는 데 쓴다. 젓갈 담그기에도 좋은 재료다.

지금이야 그저 별미로 통하지만 밴댕이는 선조들이 대대로 먹어온 생선이다. 조선 시대엔 진상하는 밴댕이를 관리하는 관청이 따로 있었을 정도였다. 어른 중지 손가락(15㎝) 크기까지 자라기도 하지만 주로 10㎝ 내외로 잡히니, 멸치(대멸)만큼 작다. 강화도에서 밴댕이를 내걸고 회무침이나 구이를 팔지만 사실 그건 멸칫과에 속하는 ‘반지’다. 이것도 작고 맛있지만 같은 인천 구월동에는 진짜 밴댕이 골목이 남아있다.

바다에 밴댕이가 있다면 강에는 피라미가 있다. 낚시꾼이나 천렵꾼은 자신이 잡은 고기가 작으면 무조건 ‘피래미’라 부른다. 잡기도 쉬운 데다 보잘 것이 없단 뜻으로 통한다. 하지만 피라미는 당당하게 잉어목에 속한다. 게다가 다년생이라 크게는 20㎝ 이상 자란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작다고 한다). 피라미는 아주 맛좋은 매운탕 재료가 된다. 비린내나 흙내가 없어 튀겨도 되고 뼈가 잘아 그대로 먹을 수 있다. 오래 끓여 뼈와 살을 녹이면 어죽이 된다. 불명예스럽게도 일본어 이름은 자코(雜魚)다. 엄연히 이름이 있는데 잡어라니. 피라미로선 땅을 칠 일이다.

중국집에는 또 하나의 작은 식재료를 쓴 메뉴가 있다. 마라룽샤(麻辣龍蝦)다. 민물가재를 매콤하고 얼얼한 마라 소스에 재빠르게 볶아낸 요리다. 원래 재료도 익으면 붉게 변하고 양념도 빨간색이라 그냥 봐도 맵다. 실제로도 쓰촨(四川)성 식 매운 요리의 대명사로 꼽힌다. 영화 ‘범죄도시’에서 장첸(윤계상)이 비닐 장갑을 끼고 먹다가 2층에서 뛰어내린 장면에 등장한 요리다. 바닷가재보다 작고 살도 별로 없어 까먹는 게 귀찮지만, 특유의 풍미가 있는 데다 마라의 유행으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살은 적지만 맛은 진하다.

작기 때문에 더 귀한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 진미로 알려진 모기눈알 수프(蚊子眼睛湯)가 대표적이다. 모기 눈알이라니 이보다 작은 식재료가 있을까. 실존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헌에는 꽤 많은 기록이 있다. 중의학서에 박쥐의 배설물인 야명사(夜明砂)로 만든 탕(약)으로 등장하며, 이는 모기의 눈에서 나온 것이라 소개한다. 중국 바이두(百度) 백과에도 야명사 요리법이 나온다. 일본 문헌에도 쓰촨성 충칭(重慶)의 요리로 ‘모기눈알 수프’가 소개돼 있다. 느닷없이 박쥐 배설물이 등장하는 이유는 박쥐 배설물에서 소화되지 않은 모기의 눈알만 걸러내 만드는 수프라 알려진 까닭이다. 실존 여부도 확인되지 않는 음식이니 ‘사람들이 이런 것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가십거리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멕시코에는 에스카몰(escamol)이란 음식이 있는데 재료는 식용개미 유충이다. 유충은 ‘사막의 캐비아’로 불리며 매우 비싼 값에 팔린다. 칠리와 함께 튀긴 다음 타코와 함께 내온다. 콜롬비아에도 오르미가 쿨로나(Hormiga Culona)라는 개미 튀김 요리가 있다.

어쨌든 인류는 자신의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보다, 작은 것에 숨은 큰 맛을 찾아냈다.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아닌 소탐대득(小貪大得)을 이뤄낸 것이니, 작다고 마냥 무시하면 안 될 노릇이다. 올해도 절반이 더 지났는데 이제 제 주변을 한번 세세하게 들여다봐야 할 듯하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어디서 맛볼까

◇재첩 = 광안리 할매재첩국. 구포에서 시작,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집은 부산 시민은 물론, 관광객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시원하게 우려낸 국과 비빔그릇에 담아내는 밥, 호박잎 등 상차림도 푸짐해 문전성시를 이룬다. 재첩을 따로 잔뜩 우려내 진한 맛을 내는 진국을 따로 판다. 부산 수영구 광남로 120번길 8. 재첩정식 9000원, 재첩진국 1만3000원.

◇다슬기 = 사평다슬기수제비. 투실한 다슬기를 듬뿍 넣고 끓여낸 수제비로 유명하다. 개운하고 시원한 맛을 내는 국물에 매끈한 수제비가 푸짐히 들었다. 다슬기 살을 한 움큼 올린 비빔밥과 고르곤졸라 피자를 연상시킬 만큼 얇게 부쳐낸 다슬기 전도 유명하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서양로 79. 1만 원.

◇졸복 = 조선쫄복탕.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이 집은 목포 술꾼들에게 든든한 해장을 제공한다. 이른 아침부터 졸복을 다듬어 갖은 채소와 함께 어죽처럼 푹 고아 낸다. 뜨겁고 걸쭉하지만 후루룩 마시면 가슴이 탁 트이며 숙취가 대번에 날아간다. 맑은 탕도 있다. 전남 목포시 해안로 115. 1만5000원.

◇피라미 = 옴서감서. 광양 사투리로 ‘피라미’를 의미하는 피리 매운탕을 판다. 청명한 물에서 잡은 피라미는 비린내가 없고 고소하고 달달하다. 여기다 매콤한 양념을 넣고 끓여 낸 피리탕은 지역 별미다. 제피 가루를 넣어 더욱 시원하게 즐길 수 있다. 요즘이 ‘천렵’ 제철이라 평상에서 즐기면 더욱 좋다. 전남 광양시 옥룡면 백계로 165. 2만5000원.

◇웅어 = 황산옥. 우어회 또는 우여회로 부르는 웅어회를 판다. 멸치만 한 작은 생선을 새콤달콤한 양념에 무쳐 먹는다. 부드러운 살에 막걸리 식초를 넣어 더욱 부드럽고 상큼하다. 이 집은 원래 강경에서 금강을 건너던 황산나루의 주막집에서 출발, 100년을 넘긴 노포 중 노포다. 충남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34. 웅어회(소) 4만 원.

◇밴댕이 = 수정식당. 사투리로 ‘빈뎅이’ 조림을 판다. 매콤한 밴댕이 조림에 쌈밥을 먹는 집이다. 냄비에 밴댕이를 깔고 대파와 마늘, 고춧가루 양념을 잔뜩 얹고 짜글짜글 조려낸다. 바쁘지 않으면 사장님이 젓가락질 두어 번으로 뼈를 발라준다. 뽀얀 살만 남은 밴댕이를 양념에 적셔 쌈을 싸면 된다. 콩나물, 장아찌, 조개젓 등 곁들인 반찬 면면도 훌륭하다. 충남 보령시 대해로 8. 1만 원.

◇마라룽샤 = 향미. 룽샤(龍蝦)는 가재를 뜻한다. 민물 가재를 벌건 마라양념을 넣고 강한 화력으로 순식간에 볶아낸다. 까먹기는 다소 귀찮지만 속에 든 조그만 살이 그 강한 양념 속에서도 진한 풍미를 내니 멈출 수 없다. 몇 마리 까먹다 보면 입술 주변이 벌써 화끈하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93.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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