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외환거래가 또 발생할까요?".. 은행이 답했다 "네!"
①'가짜 송장' 확인 의무 은행에 없고
②개별 은행이 자금 출처 확인 한계
"이상 외환거래, 또 발생할 수 있을까요?"
복수의 시중은행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언제든 또 발생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현재 추정하는 '이상 외환거래' 규모는 약 7조 원.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를 빠져나온 대규모 자금이 앞으로도 은행을 창구 삼아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은행들이 이 같은 답변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외환거래의 사각지대를 점검해 봤다. 가상의 무역업체 A사가 시중은행 창구를 찾았다고 가정했다.
외환거래의 두 가지 관문: CDD와 송장
은행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A사가 해당 은행의 신규 고객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신규 고객이라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고객확인제도(CDD) 절차를 거쳐야 한다. 첫 거래를 트기 위해서 고객은 내가 누군지 밝혀야 하고, 금융기관은 고객이 누군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 수상한 신생 무역업체가 걸러지는 1차 관문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A사에 △사업자등록증 △법인 등기부등본 △주주 명부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은행 관계자는 "거래 문의만 하고 막상 CDD 절차에 들어가면 이를 회피하려는 법인들도 있다"고 했다. 다만 A사가 신규 고객이 아닌 기존 고객일 경우 CDD 단계는 생략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은행은 해외 송금의 근거가 되는 송장을 확인한다. 송장은 수입업체와 수출업체 간 거래명세표로 △수출업체 △수입업체 △품목 △수량 △가격 등 거래 정보들이 적혀 있다. 중요 정보가 빠져 있다면, 은행은 A사와 거래할 수 없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래를 했다면, 은행은 외국환거래법에 의해 처벌받게 된다. 일종의 2차 관문이라 할 수 있다.
해외 송금에 구멍이 뚫린 이유는?
문제는 이 단계에서 크게 두 가지 공백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①외국환거래법상 은행엔 송장의 진위성을 확인할 의무가 없다. '가짜 송장'이라고 하더라도, 수출업체와 돈을 받는 계좌주가 일치한다면 은행은 돈을 보내줄 수 있다. 이는 신용장(지급보증제도) 거래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즉 A사가 실제로 물건을 받았든 안 받았든 은행 입장에선 중요하지 않다.
②은행이 자금의 출처를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특금법상 은행은 자금 출처를 확인할 의무가 있지만, 은행에 주어진 수단은 해당 은행과 A업체의 거래 내역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나온 자금이 타행 개인·법인 계좌로 여러 번 세탁된 뒤 특정 무역업체로 집결됐다면, 해당 은행 단계에서 이를 걸러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론적으로 △A사가 기존 거래 업체이거나 CDD 절차를 통과했고 △제출한 송장이 서류상 문제가 없고 △자금 출처가 타행에서 주로 유입됐다면 '수상한 외화 송금'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FIU 분석 인력 고작 40여 명… STR 보고는 73만 건
더 큰 문제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대응책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먼저 은행에 송장 진위성 확인 의무를 부여하기 곤란하다. 국내 송금과 마찬가지로, 민간 영역에서 발생한 무역 거래에 대해 은행이 거래의 실제성까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대형 시중은행 3곳에서 보낸 해외 송금 건수만 무려 578만 건에 달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외국환거래법은 대외 거래의 자유를 보장하고 원활하게 하는 게 원칙"이라며 "은행이 수사권을 갖고 무역 거래를 검증하게 하는 것은 과도한 의무이자 동시에 무역 거래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했다.
자금 세탁 우려가 있는 자금을 사전에 걸러내는 것도 쉽지 않다. 은행은 특금법에 따라 이상 거래에 대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의심거래보고(STR)를 할 의무가 있긴 하다. 그러나 그 기준은 은행의 자체 판단에 기초하고, STR 역시 사후적으로 이뤄진다. 불법성 자금이라고 하더라도 개별 은행 결정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FIU 관계자는 "보고해야 할 특정 유형들을 안내하고 있지만, 한 해 수백만 건의 거래가 발생하는 만큼 금융회사의 주관적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STR가 무분별하게 늘어도 문제다. 은행은 STR만으로 처벌을 회피할 수 있기에 면피성 보고가 늘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STR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로 FIU는 지난해 73만 건의 STR를 받았다. 그러나 이를 분석할 FIU 분석팀 인력은 40여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송장 진위성 확인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개별 은행의 STR 수준을 높이고 FIU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거래가 아닌 이상 거래"라며 "FIU와 은행 간 교류를 통해 이상 거래 유형을 더욱 다양화하고, 그렇게 들어온 보고를 FIU가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시신이라도 찾고 싶어요"... 돌아오지 못하는 우리 곁의 '우영우들'
- [단독] 국방부, 유엔사에 탈북 어민 강제 북송 CCTV 영상 공개 요청...공개시 파장 예상
- 한소희, 촬영 중 안면 부상..."응급 치료 후 휴식"
- 美 펠로시, 대만 찍고 한국으로…정부, 미중 갈등 불똥 튈라 고심
- 커지는 정책실장·민정수석 공백... 尹은 참모 다독이며 고심
- "전입신고, 이삿날 안 했으니 보증금 못 줘"... 세입자 또 울리는 정부
- 과학방역 비판에... 이름만 바꾼 '코로나 표적방역'
- 코로나 확진인데 회사에선 업무 연락...어쩌죠?
- 이준석 "끼리끼리 욕하다 비상선포... 참 잘하는 당"
- "尹대통령, 펠로시 만날 계획 없다"... 미중 갈등 격화 속 中 반발 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