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병 교정한 복제 개 탄생, 국내 연구진 세계 최초 성공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2. 8.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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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카페] 충남대·툴젠 연구진, 고관절 이상 교정한 래브라도 두 마리 복제
고관절 이형성증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교정된 복제개 진과 제니./Scientific reports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질병 유전자를 교정한 개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반려견 품종 개발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유전병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충남대 동물자원과학부 김민규 교수와 툴젠 구옥재 박사 연구진은 지난달 28일 네이처 자매지인 온라인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고관절 이형성증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교정한 래브라도 복제개 진(Gene)과 제니(Geny)가 태어났다”고 밝혔다.

반려견 고관절 이상 부르는 유전병 교정

반려동물의 품종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교배가 자주 일어나 질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가 증가한다. 고관절 이형성증도 그런 돌연변이의 하나이다. 고관절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고 훨씬 빨리 닳아 통증을 유발하고 움직이기 힘들게 한다. 이 돌연변이는 특히 래브라도와 골든 리트리버, 독일 셰퍼드, 뉴펀들랜드 품종의 반려견에서 자주 일어난다.

김민규 교수 연구진은 앞서 연구에서 반려견의 고관절 이형성증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확인했다. 이번에는 먼저 고관절 이형성증 돌연변이가 있는 래브라도 반려견에서 피부세포를 채취했다. 다음엔 프라임 교정이란 차세대 유전자 교정 기술로 해당 돌연변이를 교정했다.

생후 18개월인 고관절 이형성증 래브라도 순종견(왼쪽)은 고관절 이상으로 대퇴골이 골반에서 빠져 있다(붉은색 원). 반면 유전자 교정을 한 같은 나이 복제개들은 대퇴골이 골반에 제대로 끼어 있다(오른쪽)./충남대

처음 개발된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가위는 효소 단백질로 DNA 두 가닥을 모두 잘라내기 때문에 유전자 교정 과정에서 잘못된 부위가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프라임 교정은 DNA 한 가닥만 잘라내고 원하는 염기서열을 삽입하는 방식이어서 이런 문제가 없다. 과학자들은 크리스퍼가 유전자 가위이고 염기 하나만 교정하는 방식이 연필이라면 프라임 교정은 워드 프로세서와 같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유전자가 교정된 세포와 세포핵 DNA가 제거된 난자를 융합시켜 복제 수정란을 만들었다. 수정란은 대리모 자궁에 착상시켰다. 나중에 태어난 진과 제니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교정된 피부세포와 같은 DNA를 가진 체세포 복제개이다.

김민규 충남대 교수는 “같은 생후 18개월에 X선 영상을 찍은 결과, 고관절 이형성증에 걸린 래브라도 개는 다리 대퇴골이 골반에서 빠져 있지만 유전자 교정 복제개는 대퇴골과 골반 결합이 정상이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유전자 교정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교정 부위에 형광단백질 유전자를 함께 집어넣었다. 이로 인해 두 복제개에 자외선을 비추면 녹색 형광이 나타났다.

유전자 교정이 제대로 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형광 단백질 유전자가 추가됐다. 유전자 교정 복제개에 자외선을 비추면 형광이 나타난다. /Scientific reports

사람 유전자 교정은 성인 환자만 가능

고관절 이형성증은 사람에게도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연구진은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유전자가 교정된 수정란을 만들어 여성 자궁에 이식하는 것은 거의 모든 국가가 금지하고 있다. 유전자 교정이 개인의 선천적 특성을 바꾸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중국 남방과기대의 허젠쿠이 교수는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에이즈에 면역을 가진 유전자 교정 아기를 태어나게 해 논란을 일으켰다. 허젠쿠이 교수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특히 이번처럼 복제 수정란을 만드는 것은 복제 인간으로 이어질 수 있어 더 큰 문제가 된다.

허젠쿠이 중국 남방과기대 박사가 2018년 11월 25일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유전자를 교정한 아기 출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유튜브 화면 캡처

대신 성인 환자에게 유전자 교정을 하는 임상시험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스위스의 크리스퍼 세러퓨틱스는 미국 버텍스 파머슈티컬과 함께 지난 5월 난치성 빈혈 환자 75명에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적용한 임상 시험에서 대부분 호전되는 성과를 거뒀다고 발표했다. 두 회사는 올해 안으로 치료법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다.

미국 인텔리아 세러퓨틱스는 리제네론과 손상된 간 단백질이 혈액에 쌓이면서 생기는 트랜스레틴 아밀로이드증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치료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근본 치료하는 방식이어서 단 1회 주사로 평생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미국 빔세러퓨틱스는 콜레스테롤 저하에, 툴젠은 신경 손상을 일으키는 유전 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병에 대해 각각 임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툴젠은 면역세포에 암세포 탐지 능력을 부여한 차세대 면역 항암제에 크리스퍼 기술을 추가하는 임상 시험도 추진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특정 유전자 기능을 차단한 비글 복제개./충남대

실험동물 개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앞서 툴젠과 충남대 연구진은 지난달 13일 국제 학술지 ‘바이오메드센트럴(BMC) 생명공학’에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가위로 특정 유전자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교정한 비글개를 복제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복제 수정란 68개를 대리모 6마리에 착상시켜 두 마리 복제개를 탄생시켰다.

당시는 질병 유전자를 교정한 개를 복제한 것이 아니라 연구용으로 질병 유전자를 일부러 유발한 개를 복제했다. 연구진은 정상적인 비글개의 피부세포를 채취하고 유전자 가위로 파킨슨병 환자에서 발현되지 않는 유전자의 기능을 차단했다. 이렇게 복제된 개는 파킨슨병 치료제 효능을 알아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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