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극한 갈등, 프놈펜에 불똥 튈까..ARF 협상 '촉각'

신지혜 2022. 8.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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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3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열리는 캄보디아 프놈펜 소카호텔 미디어센터


■ 전 세계 27개국 외교장관 프놈펜에 집결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외교 번호판을 단 고급 승용차들이 도로 곳곳에 등장했습니다. 5성급 '소카(Sohka) 호텔'은 입구에 레드카펫을 깔고, 아세안 회원국을 상징하는 붉고 푸른 천으로 수 미터 높이 원형 기둥을 휘감아 장식했습니다. 호텔 내 행사장은 방역이 한창이었습니다.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리는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를 위해섭니다. 안보 문제를 다루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대표 행사입니다. 회의에 참여하는 27개국 외교장관들은 어제(3일) 프놈펜에 집결했습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앤서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대신,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회의에 참석합니다. 18년째 러시아의 외교 수장을 맡고 있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도 올해 7월 G20 외교장관회의에 이어 이번에도 모습을 드러낼 예정입니다. 여기에 호주, 뉴질랜드, 유럽연합(EU) 등도 회원국으로 참여합니다.

분위기는 냉랭합니다. 어제(3일)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타이완 방문으로 주요 참가국인 미·중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 논의할 주제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과 남중국해 안보, 미얀마 민주주의, 북핵 등 참가국 간에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들입니다.

어제(3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비롯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열리는 캄보디아 프놈펜 소카호텔 회의장에 한국, 일본, 중국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 3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북핵 문안 주목

그동안 북핵 문제는 ARF의 핵심 의제였습니다. 군사·안보 문제를 직접 논의하는 자리인 데다 북한이 빠짐없이 참여하는 사실상 유일한 지역 협의체였기 떄문입니다. ARF 폐막 후 발표되는 의장 성명에서 북핵 문제를 어느 정도 수위로 다룰지를 놓고 남북한과 주변국이 벌이는 협상은 해마다 치열했습니다.

올해는 어떨까요? 한국 정부 입장에서 올해 상황은 더욱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7차 핵실험 우려가 큰 상황인 만큼 우리 정부는 이전보다 강도 높은 입장을 견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한·미·일과 북·중·러의 간극이 유례없이 커진 상황입니다. 사실상 신냉전 구도가 형성된 만큼 협상은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미국은 지난달 30일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블링컨 장관이 북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박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도 지난달 26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토론회에서 "ARF는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등을 논의할 훌륭한 기회"라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올해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최초로 대북제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중국과 러시아는 예년보다 강경한 태도를 고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과 가깝고 북한에 우호적인 캄보디아가 성명을 주도하는 의장국을 맡았다는 점도 변수입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비롯한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어제(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日 매체 "한·일 외교장관 만날 것"…강제징용 변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한·일 문제입니다. 우선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기정 사실로 보입니다. 일본 교도통신은 한·일 외교장관이 프놈펜에서 만나는 방향으로 일정이 조율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양국 장관은 상대국을 번갈아 방문하며 한 차례씩 회담했지만, 나토정상회의나 G20 외교장관회의 등 다자회의에서는 대면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만남이 성사되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다자회의에서도 한·일이 처음 공개 회담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양국 내부 사정은 복잡합니다. 우선 어제(3일) 한국에서는 외교부가 꾸린 강제징용 배상 관련 민관협의회에 피해자 측이 불참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외교부가 피해자 측과 협의 없이 법원에 배상 절차를 지연해 달라는 취지로 의견서를 낸 것으로 보인다며 "외교부와 피해자 측 사이에 신뢰 관계가 파탄났다"는 겁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어제(3일) 인천공항 출국길에서 "민관협의회 이외에도 당사자, (배상 소송) 원고 측과 계속 소통할 수 있는 노력을 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고 프놈펜으로 향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 외교수장과 만나는 모습 자체가 국내에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과속'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일본 내부에서도 일부는 한·일 회담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 외교부회 등은 어제 "아세안 관련 장관회의를 계기로 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결의를 자국 외무성에 전달했습니다. 한국이 독도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해양조사를 하는 상황에서 회담을 하면 한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외교부는 한·일 장관회담에 대해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박 장관도 어제(3일) "확정된 것은 없다"며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앞으로도 지속해서 대화해 나가기로 한 만큼, 이번 회의 기간에 자연스레 소통할 기회가 있을 거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신지혜 기자 (ne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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