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드러난 실태..어느 날 '필수 노동'이 멈추면?

황현규 2022. 8.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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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늘진 곳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는 분들입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선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도 노동을 멈출 수 없는 분들이죠.

방역 업무를 맡고, 어르신을 돌보고, 생활 쓰레기를 치웁니다. 택배를 배송하고, 주문한 음식을 배달하기도 하죠. 도시철도 전동차나 건물 곳곳을 청소하기도 합니다.

이 노동자들 앞에는 '필수'라는 단어를 붙여 부릅니다. 바로 이 사회의 '필수 노동자'입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 9월. 당시 국무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은 '필수 노동자'를 처음으로 언급하며 이렇게 주문했습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대면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분들이 필수노동자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고, 우리 사회의 유지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비대면 사회도 이분들의 필수적 노동 위에 서 있습니다.
정부 각 부처는 코로나 감염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고,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놓여 있는 필수노동자들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쓰고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 2020년 9월 제48회 국무회의 발언 中-

이후 범정부 대책이 나오고, 지난해 5월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도 국회를 통과해 그해 11월 시행됐습니다. 필수 노동자를 보호하고 지원할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죠.

그렇다면 필수 노동자의 처우는 나아졌을까요? 노동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필수 노동자의 실태조차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필수 노동자의 직업별, 또 지역별 실태를 파악하지 않고선 맞춤형 지원 대책이 나올 수 없죠.

KBS가 빅데이터 분석과 노동 현장 취재를 통해 처음으로 필수 노동 실태를 추적한 이유입니다.


■ 코로나19 겪으며 더 심해진 '필수 노동'의 고령화·저임금

취재진은 부산노동권익센터, 통계 등 분야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필수 노동자 현황부터 파악했습니다.

통계청 고용조사를 토대로 28만여 건의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직업별, 지역별 표본 데이터를 묶고 가중치를 줬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분석 기간도 최근 4년으로 잡았습니다.

정부 발표에 포함된 업종과 통계청 직업 분류표를 토대로 보건과 돌봄, 청소, 운송 등 4개 분야에서 일하는 9개 직업 종사자를 필수 노동자로 봤습니다.

그 결과, 전국 필수 노동자 규모가 드러났습니다.


2018년 하반기 388만 9천 명에서 해마다 늘어 지난해 하반기 448만 명으로 파악됐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취업자 수 대비 필수 노동자 비율을 보면 14%대에서 코로나19를 겪으며 16%대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가 확산한 첫해인 2020년에 필수 노동자 비중이 크게 늘었습니다.

필수노동자 규모를 4개 분야별로 나눠 볼까요?


지난해 하반기 기준인데요. 필수노동자 중에서도 운송 분야 종사자가 가장 많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며 택배와 음식 배달 수요가 급증하자 노동자도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필수 노동자들의 나이를 분석해보니 고령화가 가팔랐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전국 필수 노동자의 평균 나이는 57.5세. 같은 기간 전체 취업자보다 4살 정도 많습니다.

특히 60살 이상 필수 노동자의 비중이 갈수록 커져 코로나19 이후 33%를 넘겼습니다. 필수 노동자 3명 중 1명은 60살 이상인 셈이죠.


성별로 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전국 필수 노동자의 56% 정도는 여성입니다. 필수 노동 중에서도 돌봄과 청소 분야에서 고령의 여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초의수/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동의 조건은 좋지가 않은 그런 부분에 이분(필수 노동자)들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할 수밖에 없는, 저임금에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로 내몰리는 어떤 상황이다…."

노동 조건이 나쁘고 일자리 진입 장벽도 낮기 때문이란 분석인데요. 실제 필수 노동자의 처우는 어떤지 살펴봤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전국 취업자의 3개월 평균 임금은 257만 원, 필수 노동자는 162만 원 정도입니다.

95만 원가량 차이가 나죠. 코로나19 전후 4년을 비교해 볼까요?

전국 취업자의 월 평균 임금은 9만 원 이상 올랐지만, 필수 노동자는 오히려 5만 원 가까이 줄었습니다.


전국 필수 노동자의 주간 총 근무시간은 코로나19 전후 4년간 3시간 넘게 줄었는데요. 시급제 등 고용이 불안정한 임시직 필수 노동자의 경우 근무 시간 감소가 임금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됩니다.

■ '숫자에는 드러나지 않은' 필수 노동, 현실은?

취재진은 빅데이터 분석에 그치지 않고 필수 노동 현장을 찾았습니다. 숫자에 드러나지 않은 필수 노동의 실태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코로나19 재유행으로 검사 건수가 늘자 다시 분주해진 부산의 한 보건소. 새로 방역 업무를 시작한 직원이 대부분이고, 지난 4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지원 인력마저 빠져 어려움이 컸습니다.

부산 00보건소 공무원/
"신규 직원들이 거의죠. 기존에 있는 직원들은 이제 이 업무를 안 하시고 신규로 발령받아 오시는 분들이 하다 보니까."
"(인력을) 받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데,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빼는 건 아주 빠르게 빼거든요."

코로나19 3년 째지만, 보건소 감염병 대응 부서의 규모는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고광욱/고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보건소에) 팀이 하나밖에 없다든지, 이런 인력이나 조직의 문제 등을 어떻게 확충을 하는가가 앞으로 과제가 아닐까…."

가정을 방문하거나 요양원에서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보살피는 돌봄 노동자들도 만났습니다.

방문 요양보호사에게 정해진 돌봄은 하루 3시간, 최저 시급을 받습니다. 근무 시간을 넘기기 일쑤지만, 시간 외 수당은 따로 없습니다.

방문 요양보호사/
"사람을 상대하는데 시간 됐습니다, 가겠습니다, 이럴 수는 없고 계속 그 상황을 종료될 때까지 지켜봐 줘야 하잖아요."
"그 순간을 놓쳐버리면 어르신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닐까, 이 생각에 항상 전화를 받아야 하고."

야간엔 2명이 교대로 20~30명을 돌보는 시설 요양보호사. 휴게 시간을 지키기 힘들 뿐 아니라 돌봄의 책임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합니다.
시설 요양보호사/
"어떤 소리가 나면 맨발로. 맨발로 그냥 뛰쳐나가고. 왜냐면 자기 (근무) 시간대에 사고가 안 나야 하지 않습니까."
"어르신이 다치면 그것도 다 요양보호사 책임인 거에요. 요양보호사한테 모든 책임을 다 지우는 거에요."

노동자들은 어르신 돌봄을 사회서비스원처럼 공공 분야에서 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은정/전국돌봄서비스노조 부산경남지부장
"제대로 된 처우와 인권이 보장되어야 어르신들께도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은 마치 엄마가 건강해야 자식을 잘 돌볼 수 있는 마음과 똑같이…."

코로나19 이후 20% 이상 늘어난 물량에다 대리점주에게 주는 수수료 부담에 과로할 수밖에 없다는 택배 기사.

배달 대행 업체가 늘어 속도 경쟁이 심해진 데다, 야간엔 배달료 단가가 떨어져 무리하게 오토바이를 몰 수밖에 없다는 음식 배달 노동자(라이더) 얘기도 들어봤습니다.

최종호/택배 노동자
"(건당 수수료를) 평균적으로 맞춰 달라, 내지는 전국적으로 공통된 안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 부산 지역이 상대적으로 좀 많이 취약하거든요."

윤영원/배달 노동자(라이더)
"신호를 다 받고 가도 최저임금 이상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청소 분야 노동자들의 근무 여건도 여전히 열악했습니다.

환경부가 마련한 환경미화원의 근무 지침은 주간, 또 작업량 등에 따른 3인 1조. 하지만 주민 민원과 자치단체의 민간 위탁 예산 등을 이유로 대부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청소 분야 노동자는 용역 회사 소속이 많아 고용도 불안한데요. 부산의 경우 임시직 비율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하반기 47%에서 2년 사이 63%로 높아졌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월평균 급여가 96만 원으로 임금 수준도 낮습니다.

전필녀/부산노동권익센터 연구위원
"(고용) 안정성으로 가기보다는 좀 짧게 일하고 시간도 단축시키고 그러면서 노동 강도는 더 높아질 수 있는 그런 조건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필수 노동자 지원법 제정 1년 지났지만…

지난해 5월 제정한 필수 노동자 지원법에 따라 자치단체마다 지역위원회를 꾸리고 필수 노동자 보호 조례도 제정해야 합니다.

지난 5월 말 기준 조례를 제정한 자치단체는 부산 등 광역 13곳과 기초 85곳. 전국 자치단체 243곳 중 98곳으로 조례 제정률이 40%에 그칩니다.


조례를 제정했더라도 자치단체장이 위원장을 맡아 전문가 등과 지원 방안을 논의할 위원회를 구성하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 부산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남구와 해운대구 2곳만 일자리 등 다른 위원회와 통합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필수 업무와 노동자 범위, 지원 계획을 마련할 시기 등에서 법 취지와 맞지 않는 조례도 다수 확인됐는데요.

이 때문인지 현장에서 만난 필수 노동자들은 아직 '필수'라는 단어가 낯설고, 코로나19 이후 노동 환경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초의수/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공공성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사회가 관심을 갖고 법이 제정될 필요성이 있었던 만큼 같이 책임감을 갖고 대처를 해야…."

그림자처럼 늘 우리 주변의 그늘진 곳에서 일손을 놓지 않는 필수 노동자들. 그들이 노동을 멈추면 우리 사회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취약한 곳부터 말입니다.

그때에서야 필수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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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규 기자 (tr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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