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맨' 트럼프·시진핑의 천적..美 권력 '넘버3' 펠로시는 누구
"페르소나 논 그라타"(환영받지 못한 사람). 외교가에서 기피인물을 뜻하는 용어다. 미국 권력서열 3위의 막강한 거물이 어떤 지역에서는 이런 껄끄러운 존재다. 2일 대만을 전격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82)이다.
중국이 발칵 뒤집혔고, 아시아는 물론 세계가 그의 대만 공항 착륙을 숨죽여 지켜봤다. 펠로시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정치를 겪었다. 카리스마에 리더십을 갖춰 2003년부터 미국 민주당 최고위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펠로시 의장은 하원의장이면 누구나 갖는 이런 권한 외에 개인의 카리스마를 얹어 존재감을 뿜어낸다. 자신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무려 18선을 했다. 샌프란시스코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을 정도다.
여성 정치인 가운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한때 영부인(퍼스트레이디)이었고 대선후보까지 지냈지만, 펠로시처럼 권력 3위-대통령 승계 차순위까지 오르진 못했다. "이만 물러나시라"는 민주당 젊은 의원들의 요구를 수차례 받았지만 '은퇴약속'을 무기로 하원의장에 다시 오르는 등 아직도 미 의사당에선 영향력이 크다.
본명은 낸시 패트리샤 달레한드로(D'Alesandro). 1940년 미 매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7남매 중 막내이자 유일한 딸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이탈리아계로 아버지 토마스 달레한드로 주니어는 낸시가 태어났을 때 미 하원의원, 낸시가 10대일 때 볼티모어 시장을 지냈다. 낸시의 큰 오빠도 대를 이어 볼티모어 시장을 역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벽 예산에 1달러도 줄 수 없다"며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고, 때로 냉정할 만큼 계산적인 정치력을 이런 성장환경에서 자연스레 습득했을 거라는 관측이다. '정치 조기교육'이다.
낸시 펠로시가 된 그는 민주당에서 다양한 당직을 맡았다. 1987년 당시 하원의원의 별세로 치른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의원 경력을 시작했다.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이던 2003년 야당이자 하원 소수당이던 민주당의 원내대표가 됐다. 2006년 의회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 다수당이 되자 펠로시는 2007년 하원의장에 올랐다.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다.
미국에선 다수당 리더가 의장(Speaker), 소수당 리더가 원내대표(Minority Leader)가 된다. 펠로시는 2011년까지 하원의장, 민주당이 과반을 공화당에 내준 2011년부터 8년간은 원내대표를 지냈다. 트럼프행정부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시 다수당이 되자 하원의장에 재취임했다.
다만 경력이 쌓이고, 당 지도부를 수 년간 맡으며 온건 또는 중도 지향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도 있다.
펠로시의 카리스마는 숱한 화제를 뿌렸고 유명한 '짤'도 남겼다. 2019년 2월 5일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시정연설(연두교서). 그를 냉대할 줄 알았던 펠로시 의장은 예상 밖에 자리에서 일어나 '물개박수'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도 돌아보며 "생큐"를 말했지만 알고보면 이는 '조롱의 박수'였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열의 정치를 하면서, 연설에선 "적대적 정치를 끝내고 포용하자"고 말한 걸 직격했다는 뜻이다.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펠로시 의장이 '바다코끼리 박수(walrus clap)'를 쳤으며 "경멸을 담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해 겨울 미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안을 가결, 상원으로 보낸다.
2020년 2월, 1년만에 다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때 펠로시 의장은 연설문을 찢어버리면서 또 한 번 세계의 시선을 강탈한다.
그가 2년차 하원의원이던 1989년, 중국 '천안문 사건'이 터졌다. 그는 중국정부를 규탄하는 결의안에 적극 나섰다. 중국이 인권을 개선하지 않으면 대중 무역을 늘려선 안된다는 '대중국 매파'로 자리잡는다.
2년 뒤인 1991년, 중국을 방문한 그는 미중 당국을 발칵 뒤집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사전 예고도 없이 천안문 광장에서 1989년 민주화 시위 희생자를 기리는 플래카드를 펼친 것이다.
이 때부터 중국 정부는 펠로시를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여겨 주목해 온 걸로 알려졌다.
그는 이후로도 중국에 강경 태도를 유지했다. 키워드는 '인권'이다. 티베트 인권 상황을 문제삼아 2008년 베이징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했고 2019년 홍콩 민주화 인사들을 미 의회로 초청했다.
이 같은 카리스마와 정치적 감각, 강력한 '반중' 신념이 결합한 결과가 이번 대만 방문이다. 이에 동아시아는 일촉즉발 위기감이 번졌다. 한 척만 있어도 어지간한 나라의 국방력과 맞먹는다는 미국 항공모함들이 펠로시 의장을 '호위'하기 위해 대만 주변 해역에 급파됐다.
중국 전투기는 대만해협 상공을 횡단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을 둘러싼 지역에서 실탄 사격을 동원한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중국은 올 10월 당 대회에서 시 주석의 3기 집권이 유력하다. 이후 대만 병합이나 통일을 준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바이든 대통령 등 행정부 고위인사들이 대만을 찾을 경우 중국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 바이든정부는 마치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듯 애초 펠로시를 만류했다. 그럼에도 펠로시가 대만으로 향하자 세계최강 군사력을 집결시켜 그를 보호했다.
아직 의문점은 많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못 말리는' 고집이 불러온 '치킨게임'일까. 미국 정부가 고도로 계산, 연출한 작품일까. 미국이 과연 중국의 강경 대응 등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걸까. 중국은 군사적 행동 외에 대만에 대한 경제제재에도 나섰다.
그럼에도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20년 가까이 미국정치를 이끈 펠로시 의장이 격변하는 세계질서의 판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건 분명해 보인다.
펠로시 의장이 탄 항공기는 말레이시아를 떠나 대만 타이베이까지 약 7시간 비행했다. 항공기 항로를 보여주는 '플라이트레이더24'는 이때 292만명이 펠로시 의장의 항로추적 서비스를 지켜봤다고 3일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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