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철원 지뢰사망 한 달..지척의 시신 수습조차 못 했다

CBS노컷뉴스 허지원 기자 2022. 8. 4.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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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수해복구 작업 중 대전차 지뢰 폭발…50대 사망
사고 한 달 지났지만 시신 수습은 극히 일부만
'미확인 지뢰지대' 이유로 수색 못해…책임 떠넘기는 군과 지자체
철원군 도창리 지뢰 폭발 사고 현장. 사고 수습을 위해 안전 끈으로 좁은 길을 냈고 나머지는 '미확인 지뢰지대'다. 허지원 기자

지뢰가 폭발하고 남은 구덩이는 물이 고여 분화구처럼 보였다. 폭은 5~8m, 어른 대여섯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크기였다. 뒤로는 유곡천이 흐르고 주변에 정리되지 못한 나무들이 너저분했다. 지난달 3일 오전 9시경, 굴착기를 타고 수해 복구 작업을 하던 50대 남성 A씨는 이곳에서 대전차 지뢰로 추정되는 폭발물을 밟고 숨졌다.

군부대는 사고 수습을 위해 사람 한 명 지나갈 법한 좁은 길만 내놨다. 나머지 흙과 수풀은 '미확인 지뢰지대'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사고 장소 지근거리인데도 시신 수색이 불가능하다. 실제 사고 현장에는 굴착기 파편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하는 대로 고향에 내려가 장례를 치르겠다고 한다. 생업을 미뤄두고 타지에 올라온 이들은 그때까지 텅 빈 임시 빈소를 번갈아 지킬 예정이다.

철원군 도창리 지뢰 폭발 사고 현장. 대형 구덩이가 파이고 물이 고여있다. 허지원 기자


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에서 지뢰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한 달이 됐지만 피해자 시신은 극히 일부만 발견된 상황이다. 그동안 비가 온 데다 지뢰가 있을지 모르는 늪지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터무니 없이 더딘 작업이 됐다.

시신 수습이 안 된 배경과 관련, 수색을 위한 '사다리 제작'을 누가 할 것인가를 놓고 군청과 군부대가 옥신각신하며 시간을 끌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뢰 탐지 작전을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에 사다리를 놓고 시신 수습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장치 제작 주체를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7월 25일 '화강2공구 지뢰사고 수습 대책본부'와 피해자 유족 등과의 간담회 모습. 평화나눔회 제공


지난달 25일 철원군, 제3보병사단, 경찰 등으로 이뤄진 '화강2공구 지뢰사고 수습 대책본부'는 피해자 유족 측과 시신 수습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간담회를 열었다. 유가족이 군 관계자를 만난 건 사고 후 20여 일 만에 처음이었다.

해당 자리에서 군 관계자는 "장마가 끝나고 땅이 굳을 때까지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어 미수색 지역에 못 들어간다"며 "상급 부대에서 '추가적인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하라'는 지침이 내려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기간을 두고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 상태로는 작전이 안 된다는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 드렸지만 철원군과 경찰이 '유족이 그렇게 기다릴 수 없으니 작전 지역으로 갈 방법을 만들어보자'고 해 사다리 얘기가 나온 것"이라며 "군에서 직접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철원군에서 해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간담회에선 철원군과 군부대가 그간 사다리 제작을 놓고 이견을 보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철원군 측은 "피해자 시신을 일부라도 찾기 위해 의논하는 자린데 모든 건 군부대가 주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군 관계자는 "부대의 책임이 아니다"라며 즉각 반박했다.

철원군 도창리 지뢰 폭발 사고 현장. 허지원 기자


유족 측은 기한 없이 기다리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간담회 결과 철원군이 사다리를 제작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업체와 시기 등을 결정해 유관기관과 협의한 내용은 없다.

이와 관련, 강원 철원경찰서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시신 수습은 유족분들이 원하실 때까지 한다는 입장"이라며 "아직 수풀이 우거진 부분은 군부대에서 지뢰 탐지 작업이 되지 않아 추가로 시신을 발견한 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지뢰의 폭발력이 유난히 컸던 정황을 놓고 새로운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파괴력이 30톤에 달하는 굴착기 파편을 최대 600m까지 날려 보낼 정도로 컸다. 그간 지뢰 사고를 숱하게 겪어온 접경지역 마을 주민들이 "지뢰가 한 발이 아니라 3~5발이었을 것"이라고 증언하는 배경이다.

민간인 지뢰 피해 조사 및 지원 단체인 (사)평화나눔회 조재국 상임이사는 "주민들이 땅을 개간하다가 발견한 지뢰를 묻어놓은 '지뢰 무덤'일 수도 있다"며 "군이 아니라 민간인이 만든 것이라면 (사고 예방을 위해) 지역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뢰가 최초 군 부대에서 설치했던 그대로의 상태에서 터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인위적으로 위치를 변경해 한쪽으로 몰아놓은 상태였을 수 있다는 얘기다.

철원군 도창리 지뢰 폭발 사고 현장. 지뢰 탐지가 되지 않은 구역에 굴삭기 파편이 남아있다. 허지원 기자


또 해당 지역은 지뢰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곳에서 약 150m 떨어진 지점에서는 20여 년 전 똑같이 대전차 지뢰가 폭발해 포크레인 운전자 1명이 사망했다.

따라서 지뢰 사고 위험이 큰 지역에서 군부대의 지뢰 탐지 및 안전 관리가 제대로 됐는지도 의혹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경찰 조사 결과, 사고 구역은 수해복구 작업을 위해 철원군 요청으로 제3보병사단이 지난 6월 일주일간 지뢰 제거 작전을 완료한 곳으로 확인됐다.

사고 책임 소재와 관련해 경찰은 군 관계자 10여 명과 군청 직원 등에 대한 조사를 마쳤으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입건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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