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억 지원' 공무원 국외연수..보고서는 1쪽 빼고 '복붙'이었다

서혜미 2022. 8. 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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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보공개센터 보고서 462건 분석
표절률 30% 이상 24.2%
30~50% 55건, 50~80% 41건
16건은 표절률이 80% 웃돌아
정부 "표절 확인땐 체류비 2배 환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전국 17개 지방자치단체에 정보공개청구를 해 확보한 466건의 공무원 국외 장기연수보고서를 <한겨레>와 함께 표절 검증 프로그램인 ‘카피킬러’를 활용해 분석했다. 이미지 파일로 정보를 공개해 표절 여부를 정확히 가릴 수 없는 보고서 4건은 제외했다. 국외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 충북, 지난해부터 운영을 시작한 전북은 분석에서 빠졌다.

한 남성이 만리장성, 윈강석굴 등 중국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며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제주도 6급 공무원인 이 남성은 2016년 중국으로 1년 장기연수를 다녀온 뒤 ‘중국의 세계유산 보전관리·활용실태’라는 연수보고서를 제출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의 표절률은 59%에 달한다. 생생한 현장 사진과 달리 보고서 내용 대부분은 유네스코 누리집에 있는 내용을 복사해서 붙여넣었기 때문이다.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 예산을 지원받는 공무원 국외 장기연수 보고서 상당수가 여전히 표절 등 함량미달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정보공개센터)와 함께 전국 15개 시도 공무원이 최근 5년(2017~21년) 제출한 국외 장기연수 보고서 462건을 확보해 표절률을 분석했다.

연수보고서는 학위논문처럼 엄밀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존에 나온 논문·보고서 등의 자료를 참고하는 비중이 높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표절률이 30~50%로 확인된 보고서가 55건(11.9%), 50~80%는 41건(8.9%), 80% 이상을 베낀 보고서는 16건(3.5%)에 달했다. 공무원 4명 중 1명(112건·24.2%)이 거액의 예산을 지원받고도 손쉬운 베끼기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다. 학계에서 통상적으로 표절로 판정하는 기준은 15%이다. 80% 이상 표절의 경우 앞뒤 표지만 빼면 사실상 모두 베낀 셈이다.

왼쪽이 대구 한 공무원이 작성한 연수보고서, 오른쪽이 2005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발간한 자료.

직접 쓴 분량은 1쪽뿐

표절률이 80%를 넘는 보고서 16건은 7개 지자체(강원·경기·경북·대구·세종·서울·전남) 공무원들이 작성했다. 이 가운데 연수 지원 금액이 파악된 4~6급 공무원은 12명이다. 모두 8억5964만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보고서 16건 대부분 목차나 연수 프로그램 정보, 연수 소회 등을 제외하면 기존 보고서나 학술논문 등을 짜깁기하는 식으로 작성됐다. 2015년 9월~2017년 6월 미국으로 연수를 다녀온 6급 공무원(대구)이 쓴 ‘해외 창조산업 클러스터 현황 및 지역 클러스터 발전방향’ 보고서 표절률은 89%에 달한다. 표지와 참고문헌을 제외한 보고서 분량은 44쪽이다. 이 가운데 34쪽 분량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가 2005년 발간한 ‘북미 산업 클러스터의 성공비결’을 사실상 복붙(복사·붙여넣기)했다. 이 공무원이 직접 쓴 분량은 서론 1쪽뿐이다. 그는 연수 기간 9600만원을 지원받았다.

2016∼18년 미국 연수를 다녀온 4급 공무원(세종)이 쓴 ‘선진국 저출산 극복사례 및 우리나라 대응방향 모색’ 표절률은 86%였다. 보고서는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저출산 원인 및 종합대책 연구’, 2017년 충북도청에서 생산된 ‘충청북도 저출산 대응 종합계획’ 등의 자료와 대부분 일치한다.

왼쪽이 전남 한 공무원이 2021년에 제출한 연수보고서, 오른쪽은 2004년 국정감사 자료집.

17년 전 자료까지 베껴

오래된 자료를 짜깁기한 탓에 현재 시점과 동떨어진 내용이 담긴 보고서도 있다. 2019∼21년 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온 4급 공무원(전남)은 일본의 저출산 현황과 출산장려 정책을 살핀 뒤 한국의 정책과제를 도출하는 보고서를 썼다. 그는 “현재 저출산 대책은 대통령 정책자문기구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등에서 지극히 부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저출산사회 대책기본법’ 제정을 통해 저출산 정책의 방향과 원칙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서 언급한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는 2004년 만들어진 위원회다. 이미 2005년에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됐고, 같은 해 해당 위원회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로 격상됐다. 2021년 작성한 연수보고서에 무려 17년 전 내용이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담긴 것이다. 보고서는 2004년에 나온 국회 국정감사 자료집을 베낀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연수에 지원된 비용은 1억800만원에 달한다.

연수 지역이 같을 경우, 후임 연수자가 전임자 연수보고서를 대놓고 베낀 사례도 있다. 강원도 공무원 ㄱ씨는 2018∼19년 베트남 호찌민시로 연수를 다녀온 뒤 베트남 신시장 개척을 주제로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는 코트라의 ‘2019 국별 진출전략: 베트남’ 등 기존 자료를 인용 표시하지 않고 가져다 썼다. 이후 강원도 공무원 ㄴ씨가 2019~20년 같은 곳으로 연수를 다녀온 뒤 작성한 보고서 표절률은 80%에 달했다. 그가 짜깁기한 여러 자료 가운데, ㄱ씨 보고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다. ㄱ씨도 베껴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ㄴ씨 역시 베낀 보고서를 다시 베낀 셈이다.

“배우자 학습 기회” 황당 내용도

공무원들이 제출한 국외 장기연수 보고서를 보면, 외국 정책 현장을 경험해 정책개발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애초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황당한 내용도 담겨 있다.

제주도 6급 공무원은 2018년 미국으로 연수를 다녀온 뒤 ‘도시재생 선진사례’를 주제로 보고서를 썼다. 국토연구원이 2015년에 낸 ‘도시재생 선진사례 조사 및 미래형 도시정책 수립방향’ 등을 상당 부분 베낀 탓에 표절률은 63%에 달한다. 표절하지 않고 직접 작성한 대목 상당수는 정책개발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이 공무원은 20쪽에 걸쳐 현지 생활의 즐거움을 전했다. “배우자가 영어학습을 할 기회도 많다”며 인근 교회 등에서 제공하는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식이다. 그는 “같이 온 두 아들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소회를 적기도 했다.

2017년 미국 연수를 다녀온 광주시 공무원은 표절률 50%가 나온 ‘미국의 조세제도’ 보고서 말미에 “타향살이 1년은 나를 애국자로 만들었다”며 연수 소감을 적었다. “집 거지와 다름없는 처지로 낯선 곳에 정착해야 하는 딱한 사정의 난민들을 보면, 상대적으로 내가 대한민국 공무원 자격으로 떳떳하게 미국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내용이다.

문제 계속되자, 정부 관리 강화

엉터리 연수보고서 문제가 끊이지 않자 정부는 지난 6월 장기 국외연수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방공무원 교육훈련 운영지침’을 개정했다. 기관별로 국외훈련심의위원회를 통해 연수자가 제출한 연수보고서를 평가하도록 하고, 표절이 드러나면 지급한 체류비의 2배를 환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조민지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공무원들의 장기국외연수에 대해 시민들의 불신이 큰 이유는 이처럼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연수를 통해 취득한 지식이 공무로 접목될 수 있도록 연수 전 단계에서부터 이 사람을 어떤 식으로 배치할지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체계적인 국외훈련 교육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남의 한 공무원이 2017∼2019년 미국에 다녀온 뒤 쓴 보고서. 오른쪽은 2009년 한림과학기술원의 ‘우리나라 식량안보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다. 이 공무원이 쓴 보고서의 표절률은 86%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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