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물로 변한 오류시장..주민도, 상인도, 손님도 떠났다[현장르포]
한 때 서울내 대표적인 전통시장 중 하나로 꼽혔던 구로구 오류시장이 최근 재개발 갈등 여파가 지속되면서 상인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 지나는 행인들이 거의 없을정도로 을씨년스러운 시장 내부 모습. 사진=주원규 기자 |
지난 1일 서울 구로구 오류시장 인근에서 만난 상인 우모(90)씨는 기자에게 꼬깃한 1만원짜리 한 장과 1000원짜리 지폐 두 장을 건네며 한탄했다. 낮 시간대임에도 지나는 행인들이 거의 없어 시장 내부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우씨는 지난 1960년대부터 이 곳에서 양장점을 운영했다. 한 때 3개의 점포를 소유할 만큼 그에게도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시장 곳곳 시설은 제대로 정비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점점 낙후돼갔다. 다른 전통시장이 각종 시설 재정비 등을 통해 활성화를 추진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자연스레 손님들의 발 길이 뚝 떨어졌고, 상인들도 하나둘씩 정든 일터를 떠나기 시작했다. 한 때 200여개에 달했던 점포 수는 지금 10여개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우씨도 소유한 점포 중 2개는 처분하고, 달랑 속옷가게 한 개만 운영중이다. 우씨는 "예전엔 여기가 참 장사 잘됐는데"라며 "살아 생전에 재개발이 되는 걸 보고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류시장 재정비 사업이 부진해지면서 시장이 갈수록 노후해지고 있다. 동시에 상권이 쇠퇴하자 상인, 고객들이 떠났다.
상인들이 떠난 자리에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 각종 위험물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낡고 흉물스럽게 방치된 시설 탓에 안전사고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주민들은 서울시와 구로구청이 주도적으로 나서 재정비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나마 남은 10여개 점포도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보였다. 녹슨 슬레이트 지붕에 군데군데 빗물이 새고 있었고, 빈 점포가 늘어선 시장 안쪽 골목에는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실제 오류시장은 건물 안전진단 평가에서 위험등급인 D등급을 받은 상태다.
지금까지 오류시장 재정비 시도는 두번 있었지만 모두 무산됐다.
첫번째 시도는 지난 2007년에 있었지만 개발업자가 사기를 치고 돈을 횡령 후 해외로 도피해 실패했다고 한다.
이어 두번째로 오류시장과 인접지역을 묶어 지상 21층의 아파트형 주상복합건물을 건립하는 '오류시장 정비사업 추진계획'이 지난 2016년부터 추진됐다. 하지만 절차상 위법성이 발견되면서 이를 지적한 상인 및 주민들의 반대로 이어졌고 행정소송까지 간 끝에 계획이 철회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 안되는 상인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A(79)씨는 "시설이 낡았는데, 누가 오겠냐"고 반문했다.
시장을 지나던 한 주민은 "이곳이 역으로 가는 최단길이라 이용하고 있다"며 "낡고 흉가같은 느낌에 오류시장에서 장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상인들도 "고객들이 찾지 않는데 아예 장사를 접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한탄했다.
시장 골목 어귀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공모(76)씨는 "자식들은 장사도 안되는데 왜 계속 가게를 나가냐고 성화"라며 "오늘 월세내는 날인데, 7만원이 없어 꿔서 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2021년 오류시장정비사업조합설립위원회가 서울 구로구청에 제출한 세번째 시장정비사업 추진계획은 전통시장없는 주상복합형 아파트로 개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상인들은 재정비사업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전통시장 활성화'와 '입점상인 보호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오류시장 상인회는 "많은 주민들과 상인들은 전통시장이 보존된 개발 방식을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로구청은 오는 10일 설명회를 열고 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두번의 재정비사업이 틀어진 경험이 있는 데다 재정비사업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수년이상 소요될 수밖에 없어 상인들은 이래저래 고통스런 날을 보내고 있다.
통상 각종 인·허가 절차를 거치더라도 재정비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면 2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오류동에서 20년째 거주중인 우모(65)씨는 "오류시장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시장으로 하루빨리 바뀌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며 "정부와 지차제가 주도적으로 나서 죽은 시장을 되살리고, 복잡한 갈등을 명쾌하게 해결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 주민도 "서울시내 대표적인 재래시장의 하나였던 과거의 영광된 오류시장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라도 조합과 주민, 상인, 지자체, 정부가 머리를 맞대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했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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