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속으로 곪은 軍, 대체 누가 적인가

김진욱 2022. 8. 4.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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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윤석열 정권과 군대는 전멸될 것이다."

'주적(主敵)'이라는 표현에 꽤나 민감했나 보다.

북한을 주적으로 경계하는 우리 군의 위력을 뽐내는 자리다.

외부의 적을 상대로 존재감을 키우기 앞서 속으로 곪은 병폐와 악습부터 도려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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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전투 준비" 수뇌부 공언 무색하게
당연한 '기강 확립'도 지키지 못하는 軍
외부의 적 앞서 내부 단속부터 강화해야
이종섭(왼쪽)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5일 서울 용산구 합참에서 열린 합참의장 이·취임식에서 김승겸 합참의장에게 부대기를 건네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윤석열 정권과 군대는 전멸될 것이다."

지난달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내뱉은 엄포다. '주적(主敵)'이라는 표현에 꽤나 민감했나 보다. 허나 대수로울 건 없다. '빈틈없는' 대비태세만 갖춘다면 북한의 협박은 고작 말에 그칠 뿐이다.

"언제든지 싸워 이길 수 있어야 한다(5월 이종섭 국방장관)", "항상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7월 김승겸 합참의장)". 우리 군 최고 지휘부가 취임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에 굳건하게 맞서는 각오가 묻어 있다. 안보를 핵심가치로 중시하는 보수 정부의 군 사령탑답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공군부대에서는 여군 하사가 숨졌다. 지난해 경종을 울리고 세상을 떠난 이예람 중사가 근무하던 곳이다. 이 중사의 마지막 근무부대에서는 여군 하사에게 코로나19 확진자의 침을 핥고 입맞춤하도록 강요한 엽기적인 성폭력 사건이 적발됐다.

앞서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부대에서는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서울을 지키는 수방사 부대원이 세상을 떠난 건 올해에만 세 번째다. 육군 신병교육대에서는 훈련병들이 기한이 지난 백신을 맞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모두 헤아리기 숨가쁠 정도다.

그럴 때마다 군 당국의 대답은 판에 박힌 듯 똑같다. "담당자의 실수다", "진상을 조사해 엄벌에 처하겠다",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다짐하며 파장을 축소하는 데 급급할 뿐이다.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어떻게든 은폐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누구 하나 시원스레 책임을 인정하고 폐쇄적인 군 문화를 바꾸려 앞장서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차라리 구타 사례를 신속하게 인정한 해병대가 낫다는 자조섞인 푸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기강 확립.' 말은 좋다. 반면 행동은 딴판이다.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제 아무리 외쳐도 일선부대에는 좀처럼 먹혀들지 않는다. 군 특유의 가치이자 철칙인 '상명하복'이 무색할 지경이다. 군 문화가 갈수록 왜곡되는데도 이를 바꾸려는 문제의식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말과 행동, 지시와 이행, 규정과 현실이 따로 가는 괴리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원칙을 지키고 군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자는 당연한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군이 과연 유사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연합군사연습이 곧 실시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훈련이다. 북한의 말 폭탄에 맞서 본때를 보여줄 기회다. 야외에서 실제 병력과 장비가 실전상황처럼 움직이는 기동훈련도 예년보다 수준을 높였다. 북한을 주적으로 경계하는 우리 군의 위력을 뽐내는 자리다.

군 내부에 구멍이 숭숭 나서는 곤란하다. 외부의 적을 상대로 존재감을 키우기 앞서 속으로 곪은 병폐와 악습부터 도려낼 때다. ‘빈틈 있는’ 군을 믿을 수 없다는 아우성이 더 커지기 전에.

김진욱 정치부 기자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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