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딴 외국인 62% 짐싸… “기업·학교가 적응 도와야”

실리콘밸리/김성민 특파원 2022. 8. 4.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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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외국인 200만명 시대] [下]
석·박사 마친 후에 고국·제3국행 급증
해외인재들 언어·문화장벽 고통
직장 회식·티타임에 초대 못받아
계약기간 끝나면 바로 떠나기도
다양한 인종 공존하는 실리콘밸리
구글, 아시안 직원 돕는 모임 운영
애플 등 매년 다양성 보고서 공개
3일 서울의 한 대학교 도서관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 지난해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외국인은 1944명(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으로 10년 전보다 4배 이상 늘었지만, 학업을 마치고서 한국에 정착하는 외국인은 많지 않다. 지난해의 경우, 박사 학위를 딴 외국인 가운데 약 62%가 한국을 떠났다. /김지호 기자

국내 한 지방 국립대에서 6년간 기계공학 석박사 통합 과정을 마친 베트남인 르엉(37)씨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로 포닥(post-doc·박사 후 연구원)을 하러 떠났다. 그는 “원하는 한국 대기업에 들어갈 수 없었다”며 “더 공부해 선진국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지리학과 박사 과정 다무라 후미노리(41)씨는 “대학원을 한국에서 나와도 회사나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주변 외국인들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글로벌 인재 쟁탈전에 나서면서 고학력 외국인 인력 수요가 늘고 있지만 해외 인재들은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석·박사를 한 외국인들 가운데 고국이나 제3국으로 나가는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외국인은 1944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12년의 473명보다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국내 전체 신규 박사 학위 취득자에서 외국인 비율도 14.3%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들도 2018년 45.6%에서 2019년 50.4%, 2020년 54%, 2021년 62%로 갈수록 늘고 있다.

이민 정책 전문가인 오정은 한성대 교수는 “결국은 언어와 문화적 폐쇄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은 한국어를 잘 못하거나 우리식 직장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을 뽑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고학력 외국인은 취업 후 한국 직장에 적응하는 걸 어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국인 꺼리는 폐쇄적인 문화도 문제

영화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해외에 판매하는 기업에서 임원으로 근무했던 프랑스인 A씨는 첫 계약 기간을 채우자마자 한국을 떠났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언어 때문에 늘 회사에서 고립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A씨는 “회식이나 티타임에 초대받지 못하고 내가 주최하는 회식에 사람들이 오지 않으려 하는 게 특히 힘들었다”며 “회사에 통역을 고용하자고 건의해봤지만 ‘한 사람을 위해 인력 채용을 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한국 스타트업에서 소셜미디어 매니저로 근무했던 핀란드인 조안나 이선씨는 유튜브를 통해 “퇴근 후 상사·동료들과 술마시는 회식 문화와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지 못하는 문화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대 공과대의 한 교수는 “한국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하는 외국인 학생들은 ‘왜 이렇게 영어 강좌가 없느냐’고 한다”며 “해외 박사 출신 교수가 대부분인 서울대조차 영어 강좌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뛰어난 유학생들도 결국 이 단계에서부터 한국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된다”고 말했다.

◇다양한 인종이 섞인 실리콘밸리

한국이 ‘외국인으로 살기 힘든 사회’라는 한계를 벗어나려면, 기업과 대학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들을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멜팅팟’(melting pot·인종의 용광로)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가장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이 운영하는 아시안 직원 모임 ‘AGN(Asian Google Network)’이다. 이 모임은 미국 내에서 ‘소극적이고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 아시아인들이 사내 영향력을 높이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게 핵심 목적이다. 애플, 구글, 메타 같은 기업들은 매년 직원들의 인종 비율과 다양성 정책을 검토하는 ‘다양성 보고서’를 공개한다.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농구팀에 센터만 있으면 안 되듯 다양한 문화와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토론하며 긴장감을 유지해야 더 좋은 서비스와 상품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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