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력, 나의 역사

고영직 문학평론가 2022. 8.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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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행세를 한 지 30년이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거짓말’을 하는 게 좋아 평론가 노릇을 지금껏 하고 있지만, 내가 쓴 글에 대해 언제나 만족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글쓰기에 성실히 임하지도 못했고, 나의 관심사 또한 조금씩 변했다. 이런 내 생각과 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글쓰기를 야구에 빗댄 ‘3할론’이다. 글쓰기라는 타석에 등판해 3할 타율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아무리 강타자라 할지라도 3할 이상 때리는 타자가 많지 않다는 이유가 이른바 글쓰기 3할론의 근거가 되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하지만 글쓰기라는 타석에 등장해 3할 타율을 유지했느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이 없다. 열 편의 글을 썼을 경우 내 마음에 썩 드는 경우는 어쩌다 한두 편에 불과하다. 아니, 한 편이라도 마음에 드는 글을 썼다면 다행한 노릇이다. ‘쓰던 대로’ 쓰려는 나의 관성적인 태도가 관성적인 글쓰기를 낳지 않느냐는 자괴감을 가질 때가 잦다.

무슨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실행에 옮기기가 여전히 어렵다. 하루아침에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문체’를 바꾸어야 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언어로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상투적일 때 생각도 상투적이고, 글쓰기 또한 상투적인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점은 말할 나위 없다.

문체를 바꾸는 일이 쉬운가. 문체를 바꾼다는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며, 삶 자체를 바꾼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물론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어쩌면 문체를 바꾼다는 것은 함석헌 선생이 ‘앎은 앓음이다’라고 한 명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민족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이십대 시절 위 명제와 더불어, ‘고난의 역사는 고난의 말로 써라’(1965)라고 한 문장을 처음 접하고 꽤 오래 생각에 잠겼던 시간이 떠오른다. 함석헌 선생의 명제는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리라. 누군가가 “약자는 ‘개인’으로 규정되지 못하는 존재들”(이라영)이라고 말한 것도 사회적 약자를 ‘덩어리’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말의 타락 현상이 유독 심하다. 낡은 관성과 낡은 관행을 그대로 지키려는 위정자들의 낡은 언어들이 득세하고 있다. 저마다 ‘각자의 트루먼쇼’에 몰두하는 시절을 맞아 시의 언어 또는 삶의 언어는 현실에서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개인이든 대한민국이라는 커뮤니티든 간에 새로운 언어와 삶의 비전이 절실히 필요하다. 낡은 언어들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50+ 세대라면 더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어제의 나와 결별해야 하고, 어제 쓴 글과 과감히 결별할 수 있는 작은 용기가 필요할 수 있겠다.

14년차 문화백수를 자처하다 보니 이력서를 언제 썼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흥미 있는 사실은 이력이라는 말에 만만치 않은 뜻이 내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력이란 신발(履)의 역사(歷)를 의미한다. 나와 당신이 하루하루 걷는 발자취들이 ‘나의 역사’를 이룬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위기의 순간일수록 철학자 또는 시인이 되려는 심리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비평(critic)이란 말과 위기(crisis)라는 말의 그리스어 어근이 같다는 점 또한 퍽 흥미롭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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