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고국 왔으나 떠날 때와 마찬가지.. 마음붙일 수 없구나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2022. 8.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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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시테라섬으로의 여행'(1984년)에는 늙은 망명객의 귀국 여정이 펼쳐진다.
그리스 정치 현실에 절망해 35년간 망명했다 돌아온 그는 가족과 해후하지만 끝내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그는 검문을 피해 다시 망명지로 떠나기 위해 변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목숨을 거는 것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토로한다.
귀국한 목적은 저술할 역사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었지만 조국의 상황은 망명할 때와 다름없이 암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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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영화로 읊다]〈42〉망명객의 노스탤지어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시테라섬으로의 여행’(1984년)에는 늙은 망명객의 귀국 여정이 펼쳐진다. 그리스 정치 현실에 절망해 35년간 망명했다 돌아온 그는 가족과 해후하지만 끝내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해 중국 난퉁(南通)으로 망명한 김택영(1850∼1927) 역시 1909년 귀국했다 떠나며 다음 시를 남겼다.
김택영은 구한말 대표 시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검문을 피해 다시 망명지로 떠나기 위해 변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목숨을 거는 것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토로한다. 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조국에선 감춰야 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망명지에 가서야 드러낼 수 있게 된 처지가 애틋하다.
영화 속 주인공도 오랜 망명 생활 끝에 돌아왔지만 모든 것이 변해 버린 현실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된다. 결국 공해상으로 추방된 그는 아내와 바다 위를 부표처럼 떠돈다. 감독은 제목의 시테라섬이 부질없는 희망의 끝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김택영도 마찬가지였다. 귀국한 목적은 저술할 역사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었지만 조국의 상황은 망명할 때와 다름없이 암울했다.
후일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고향을 잃고 떠도는 사람(失土流離之人)’(‘自誌’)이라고 썼다. 그는 망명지에서 박지원 등 조선 문인들의 문집을 간행하고 자신의 고향인 개성의 역사와 인물을 되살리는 데 전념했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노스탤지어’(1983년)에는 18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러시아 음악가 파벨 소스놉스키의 전기를 쓰기 위해 이탈리아에 온 소련 시인이 등장한다. 소스놉스키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탈리아에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귀국한 인물로, 영화 속 주인공도 그의 자취를 찾아가다 짙은 향수에 빠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감독 역시 후일 소련에서 서방으로 망명해 죽을 때까지 향수에 시달렸다.
김택영도 시 후반부에서 자른 머리카락은 새로 자라지만 그리운 마음만은 배로 더한다고 향수를 드러냈다. 당나라 백거이가 읊었던 것처럼 불에 타도 봄바람에 다시 돋아나고야 마는 풀처럼(‘賦得古原草送別’),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계속 자라만 갔다.
시인은 20년이 넘는 망명 생활 끝에 생을 마감했다. 난퉁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한국 시인 김창강의 묘’라고 써 있다. 창강(滄江)은 김택영의 호로, 젊은 날 시인의 울화를 씻어주던 강에서 따왔다.
영화 속 주인공도 오랜 망명 생활 끝에 돌아왔지만 모든 것이 변해 버린 현실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된다. 결국 공해상으로 추방된 그는 아내와 바다 위를 부표처럼 떠돈다. 감독은 제목의 시테라섬이 부질없는 희망의 끝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김택영도 마찬가지였다. 귀국한 목적은 저술할 역사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었지만 조국의 상황은 망명할 때와 다름없이 암울했다.
후일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고향을 잃고 떠도는 사람(失土流離之人)’(‘自誌’)이라고 썼다. 그는 망명지에서 박지원 등 조선 문인들의 문집을 간행하고 자신의 고향인 개성의 역사와 인물을 되살리는 데 전념했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노스탤지어’(1983년)에는 18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러시아 음악가 파벨 소스놉스키의 전기를 쓰기 위해 이탈리아에 온 소련 시인이 등장한다. 소스놉스키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탈리아에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귀국한 인물로, 영화 속 주인공도 그의 자취를 찾아가다 짙은 향수에 빠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감독 역시 후일 소련에서 서방으로 망명해 죽을 때까지 향수에 시달렸다.
김택영도 시 후반부에서 자른 머리카락은 새로 자라지만 그리운 마음만은 배로 더한다고 향수를 드러냈다. 당나라 백거이가 읊었던 것처럼 불에 타도 봄바람에 다시 돋아나고야 마는 풀처럼(‘賦得古原草送別’),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계속 자라만 갔다.
시인은 20년이 넘는 망명 생활 끝에 생을 마감했다. 난퉁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한국 시인 김창강의 묘’라고 써 있다. 창강(滄江)은 김택영의 호로, 젊은 날 시인의 울화를 씻어주던 강에서 따왔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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