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하늘의 역린(逆鱗)

2022. 8. 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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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태풍 '송다'에 연이어 6호 태풍 '트라세'가 발생하였다. 두 태풍이 몰고 온 수증기로 전국 곳곳에 비가 내렸다. 특히 제주지역에 많은 비가 내렸는데 서귀포 인근에는 용오름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거대한 회오리바람인 토네이도가 용오름이다. 하늘에서 회오리 구름이 연결되어 서서히 움직이는 웅장한 모습이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하여 용오름이라 불린다. 용오름은 지표면과 높은 상공에서 부는 바람이 서로 다를 때 생긴다. 지표면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상층으로 올라가 수직 방향으로 높게 발달한 구름인 적란운이 형성되면 해수면이나 지표면 부근에 발생한 소용돌이 바람이 적란운 속으로 상승하며 용오름이 발생한다.

옛 기록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용을 비나 구름, 그리고 물과 관련지어 생각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는 '가뭄이 오래 지속되니 토룡을 만들고 또 민가에서도 용을 그려놓고 비를 빌게 하기를 왕에게 청한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농사가 생업이었던 옛사람들에게 용은 물과 비를 관장하는 신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용이 수호신으로 등장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문무대왕은 죽은 뒤 자신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후 그의 아들 신문왕은 682년 5월에 용으로부터 만파식적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만파식적을 불면 적군이 물러나고,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때는 맑아졌다고 하니 그야말로 신묘한 피리다.

용은 또한 제왕의 상징이기도 하다. 제왕을 용에 비유한 문헌이나 표현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한비자는 독특한 맥락에서 용을 군주에 비유했다. '무릇 용이란 짐승은 잘만 길들이면 등에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 하지만 턱밑에 한 자쯤 거꾸로 난 비늘(역린)이 있는데 이를 건드리면 누구나 죽임을 당한다.' 이는 군주를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파한 '세난' 편에 등장하는 말로 여기서 '역린'은 군주의 노여움, 군주의 노여움을 사는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역린'은 군주에게만 있는 것일까? 민본 개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백성에게도 역린은 있다. 민심이 천심이니 하늘에도 없을 리 없다. 하늘을 거스른 자, 즉 역천자가 망한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 없다. 하늘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은 군주의 마음에 어긋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질서와 바람, 구름, 물, 대기 등 자연의 조화인 날씨가 있다. 이를 거스르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기후변화와 기상이변이 바로 그 대가다. 최근 유럽을 덮친 극단적인 폭염은 기후위기의 증거이며, 폭염을 비롯해 집중호우, 위협적인 태풍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 눈앞에 가까이 온 기상재해들을 보며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간의 모습을 반성해 본다. 용을 길들여 하늘을 날 수는 없어도 하늘의 역린을 건드리는 어리석음을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박광석 전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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