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만에"..고려대 청소노동자들, 본관과 '헤어질 결심'-취[재]중진담
이시열 2022. 8. 3. 23:20
청소노동자‧용역업체 "시급 400원 인상" 잠정 합의
원청인 학교는 '묵묵부답'
원청인 학교는 '묵묵부답'
마침내, 지난달 28일부로 고려대학교 노동자들이 본관 점거를 해제했습니다. 지난달 6일부터 본관 1층 복도를 점거한지 22일 만입니다. 용역업체와 시급 400원을 인상하기로 잠정 합의가 이루어진 것인데, 학교 측은 끝내 협상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은 한창 본관 점거 집회가 이루어지고 있던 당시 학교를 찾아 고려대학교 노동자들을 만나 근로환경을 살펴봤고 문제점들을 들어보았습니다.
30도를 웃도는 날씨 속, 냉방은 청소 이후
지난달 25일 새벽 5시 40분쯤, 취재진이 찾은 고려대학교 국제관은 이미 청소가 한창이었습니다. 여성 11명, 남성 1명의 청소노동자가 담당하는 빌딩의 면적은 약 7천200여 평. 방학기간이지만, 학생과 교수들이 학교에 나오기 전인 아침 8시까지는 청소를 모두 끝마쳐야 합니다. 하지만 청소를 하는 동안 냉방은 가동되지 않습니다. 중앙 냉난방 시스템인 탓에 건물 관리자가 출근하기 전까지는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훔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건물에 청소노동자들이 씻을 수 있는 샤워실은 없습니다. 지하에 태권도 동아리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샤워실은 있지만, 노동자들은 이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국제관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장 씨는 “카드가 있어야 열리고 또, 학생들 사용하는데 우리가 이용할 수는 없지”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용역업체와의 합의에서 "용역회사가 샤워실 설치 등 시설 개선을 학교 측에 요청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됐다"고는 했지만, 언제쯤 시설이 개선될지는 불투명해 보입니다.
하수구 없는 탕비실…환기구 없는 쉼터
여성 청소노동자가 11명인 이곳에 대걸레를 빨 수 있는 공간은 남자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좁은 탕비실을 열어보니 대걸레를 빠는 수도 옆에는 "물을 흘리지 말아 주세요"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청소노동자 김 씨는 "원래 하수구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수구가 없는 상태에서 걸레를 쓰다 보니 물이 바닥에 흐를 수밖에 없고 벌레가 꼬인다고 했습니다. 탕비실이 잠겨있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도 종종 쓰는데, 이런 상황을 잘 모르고 쓰다 보니 바닥이 물에 젖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탕비실 양옆에는 각종 청소도구들이 블록처럼 쌓여있었는데, 김 씨는 청소도구를 보관하는 곳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근처에 있던 철문을 열어보니 그곳에서도 각종 청소도구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김 씨를 따라 건물 지하 2층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유일한 남성 노동자 장 씨의 쉼터가 나왔습니다. 입구 위 천장에는 빗물을 막기 위한 천이 드리워져 있었고 문 앞에는 먼지 쌓인 하수구가 있었습니다. 방안은 환기구가 없어 습했지만, 장 씨가 사비로 들여놓은 에어컨은 고장 난지 오래였습니다.
직고용 비정규직, "하청보다 더 힘들어"
지난달 22일, 고려대학교 본관 1층에서 막 시위를 끝낸 서재순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 분회장과 김선영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을 만났습니다. 2011년부터 이어진 투쟁, 그 배경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것인지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서 분회장과 김 부장은 우선 ‘직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학교는 해가 지날 때마다 퇴직 노동자가 나오면 해당 용역업체를 통해 재고용하는 것이 아닌, 학교 자체적으로 단기 직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한다고 했습니다. ‘직고용’이라는 개념만 들었을 때는 더 고용의 안정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김 부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직고용 비정규직은 학교 관리계에 잘 보여야 하는 거예요. 학교 비정규직이잖아요” “노동조합이 있어도 부당한 일들을 잘 말하지 못하는데, 거기는 학교 비정규직이다 보니까 더 눈치를 보게 되는 거죠. 학교에서 고용한 주임들이 건물마다 하나씩 있어요. 그분들이 관리를 해요. 저 사람은 일을 잘하니 못하니. 그 사람들한테 못 보이면 바로 1년 뒤에 계약이 안되는 거예요.”
임금 440원 인상요구의 배경…"생활임금 보장하라"
'생활임금'이란 근로자가 최소한의 문화적 생활 등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임금을 말합니다. 2022년 서울의 생활임금은 10,766원입니다. 이에 반해 고려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9,390원입니다. 생활임금과는 1,000원 이상의 차이를 보입니다. 노동자들은 1,000원 인상은 바라지도 않으니 작년 최저임금인 8,720원과 올해 최저임금인 9,160원의 차이인 '440원'만큼이라도 인상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김 부장은 해가 갈수록 물가는 높아지는데 매년 임금은 정체되어 있으니 노동자들이 받는 실질임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임금인상은 매년 되어야 하는 거예요. 원청인 학교가 책임 질지 하청인 용역회사가 책임질지의 문제이죠. 매년 임금 인상이 안되면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거예요." 특히 학교의 용역 입찰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매해 11월에 입찰이 진행되는데, 최저시급이 올라간 만큼의 임금을 반영하지 않은 용역회사가 낙찰이 되버린다는 것입니다. 시급으로 계산해서 입찰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막상 계산을 해보면 내년도 계약이 올해 시급으로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일단 따고 들어오는 거예요. 들어와서 보니 우리들의 임금을 올려줄 돈이 없는 거죠. 용역업체에서는 학교만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우리보다 열악한 사람들은 더 힘들어"
청소노동자들은 대학뿐만 아니라 도심 빌딩 곳곳에서 다 묵묵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나 언론에서 특별히 대학 청소노동자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는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이에 김 부장은 대학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들보다 더 열악해서 싸우는 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다른 빌딩 노동자들은 아예 싸울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보다 더 나쁜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학의 특수성을 얘기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노동자들을 대학에서라도 좀 대우를 하거나 구성원으로 인정하거나 이런 게 필요한데, 그래도 진리를 추구한다는 대학에서조차도 비용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며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취재진은 고려대 노동자들과 면담한 것을 토대로 고려대학교 측에 질문지를 보냈지만 아직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
[이시열 기자 easy10@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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