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들 "외교부와 신뢰관계 파탄.. 민관협의회 불참"

석지연 기자 2022. 8. 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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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임재성 변호사, 장완익 변호사,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이 강제동원 관련 민관협의회 피해자 지원단 및 대리인단 입장을 말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외교부는 지난 26일 일본 전범 기업 재산을 강제로 매각하는 법적 절차와 관련해 대법원 의견서를 제출했다. (사진=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측이 최근 외교부의 대법원 의견서 제출로 신뢰 관계가 파탄 났다며 민관협의회 불참을 선언했다. 일본 전범 기업의 자산이 조만간 매각되면 한일관계가 얼어붙을 거란 우려에 외교부가 최근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가 갈등의 발단이 됐다.

이에 따라 외교부가 한일관계 개선의 최대 난제인 강제징용 문제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민관협의회를 구성한 지 한 달 만에 피해자 측이 모두 빠지면서 해법 도출이 난항에 부닥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후지코시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단체와 법률대리인은 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 측에 사전에 어떠한 논의나 통지도 없이 의견서가 제출됐다"며 이는 "절차적으로 피해자 측의 신뢰관계를 완전히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피해자 측이 사후적으로나마 외교부에게 의견서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외교부는 이미 제출된 의견서조차 피해자 측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는 실질적으로도 피해자 측 권리행사를 제약하는 중대 행위라며 "사실상 대한민국 정부가 대법원에 '판단을 유보하라'는 취지로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판단한다. 헌법이 보장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피해자 지원단체와 대리인단은 "재판거래 또는 사법농단이라는 범죄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민사소송 규칙을 그 범죄의 공범이었던 외교부가 과거에 대한 아무런 반성 없이 그 규칙을 다시 활용해서 강제동원 집행 절차를 지연시키려는 모습은 재판 거래 피해자들인 강제동원 소송 원고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모습"이라며 "민관협의회라는 공개적인 절차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음은 물론 피해자 쪽에 사전에 어떠한 논의나 통지도 없이 의견서가 제출됐고, 외교부는 이미 제출된 의견서조차 피해자 쪽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피해자 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사람에게 권리 지연을 행정부가 요구했다면 사전에 양해와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전혀 없었다"며 "의견서 제출은 대법원에게 판단을 하지 말아 달라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전체 진행되고 있는 강제동원 소송에 대한 행정부의 의견을 사법부에 제출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만큼 중대한 것"이라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와도 싸워야 하느냐"고 질타했다.

회견 참석자들은 "민관협의회에 피해자 측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으며, 민관협의회에서 이후 실효적인 의견도 나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외교부 의견서 제출로 인해 신뢰가 훼손되었기에 민관협의회의 불참을 통보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피해자 측은 이후 정부 안이 확정되면, 이에 대한 동의여부 절차에는 협조할 것"이라며 향후 정부가 해결안을 내놓으면 이를 검토할 여지는 열어놨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달 26일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김성주 할머니의 채권과 관련한 상표권·특허권 특별 현금화(매각) 명령 사건이 계류된 대법원 상고심 담당 재판부 2곳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틀 뒤인 28일 이상렬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광주 시민모임 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무엇이냐"라며 "현금화가 되기 전에 바람직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날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쪽과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을 만나 뒤늦게 의견서 제출 사실을 밝혔다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 근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익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선 민사사건에도 의견을 낼 수 있도록 규정한 민사소송규칙 제134조의 2다. 해당 조항은 박근혜 정부 때 사법농단 논란의 핵심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주도로 만든 것으로, 규칙 개정 당시부터 '강제동원 맞춤형'이란 비판이 나왔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피해자 측 회견에 대해 "민관협의회 등을 통해 원고 측을 비롯한 국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진정성 있는 노력을 경주해 나간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민관협의회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원고 측 의견 수렴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3차 민관협의회는 "8월 중 이른 시점에 개최하는 것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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