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동력 갉아먹는 '불통 국정'

심진용 기자 2022. 8. 3. 21: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학제개편·청와대 이전·경찰국 등
예민한 정책 밀어붙이다 여론 반발
대통령실·장관 소통 난맥 지적도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둘러싼 혼란상은 그간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의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집약됐다는 지적이 3일 나온다. 공론화 과정은 건너뛰고, 부처 간 입장 조율도 생략한 채 졸속으로 밀어붙이다 여론 반발에 부딪히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정책 추진을 위한 동력 또한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안상훈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비서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학제개편안에 대해 “공론화와 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 뜻을 거스르고 갈 수는 없다”며 백지화 가능성도 열어뒀다. 안 수석 브리핑 직후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국민이 원치 않는 정책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달 29일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윤 대통령이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을 감안하면 나흘 만에 정책에 대한 큰 틀의 입장이 뒤집어진 셈이다.

이번 정책 혼선을 두고 윤 대통령이 사안의 휘발성 등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신속 추진’ 지시를 성급하게 내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 부총리 또한 설익은 정책을 무리하게 업무보고에 포함시켰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교육부 사이 불통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결국 졸속 추진이라는 지적이다.

예민한 정책 사안을 밀어붙였다가 여론 반발 등에 부딪혀 난맥상을 초래한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청와대 이전’이 대표적이다. 당초 윤 대통령은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며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기정사실처럼 얘기해왔다. 그러나 경호와 교통 등 난제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결국 윤 대통령 스스로 준비 부족을 시인해야 했다. 지난 3월 그는 “당선인 신분으로 보고를 받아보니 광화문 이전은 시민들 입장에선 재앙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용산 이전을 발표했다.

■국정과제 풀기는커녕 숙제만 쌓인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일 공식 출범한 행정안전부 경찰국 문제도 다르지 않다. 지난 6월 경찰국 출범 계획을 발표한 직후부터 일선 경찰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김창룡 당시 경찰청장이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며 사의를 표시했고, 전국 서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경찰국 출범을 비판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집무실 이전 때도, 경찰국 신설 때도 여론 수렴이나 숙고 없이 밀어붙이다 탈이 났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충분히 논의해볼 만하고, 필요성도 있는 정책인데 졸속적인 추진 과정 때문에 정부 스스로 명분을 잃었다는 평가다. 학제개편은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도 고민했던 내용이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문재인 전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사안이다. 경찰국과 관련해서도 경찰 통제 방안이 필요하다는 문제인식은 존재했다. 정책 내용이나 방향성이 아니라 추진 과정이 근본 문제였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같은 난맥상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져 가뜩이나 떨어진 국정동력을 회복하는 데도 장애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국정 현안에 대한 조율이나 정무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문자 파동 등 여권 내홍이나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등에 대해 대통령실이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입장을 내놓는 것에 대해서도 입길에 오르고 있다

윤 대통령의 ‘홍보 강화’ 주문이 설익은 정책의 성급한 발표로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최근 ‘스타 장관’ 등을 언급하며 대통령비서실이나 각 부처가 보다 적극적으로 정책을 알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지율 하락세가 국정 홍보 부족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박 부총리의 경우처럼 업무보고가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21일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도 성급한 발표로 논란을 자초한 사례다. 당시 박보균 장관은 청와대를 전시 중심의 문화예술공관으로 활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청와대의 역사적 의미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문화재청에서 나왔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사전 조율 없었던 내용을 박 장관이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