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잡으면 야유'하던 경기장을 '쉿' 독서실로.. '김현'[현장메모]

이재호 기자 2022. 8. 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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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공만 잡으면 야유였다.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은 섭섭하게 떠나간 수원FC 공격수 김현을 향해 지난 원정경기에서도, 그리고 이번 홈경기에서도 공만 잡으면 야유했다.

인천이 선제골을 넣고 경기도 압도하며 홈관중들도 신나하던 후반 24분 김현의 골은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을 순식간에 조용한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김현 입장에서는 별다른 세리머니를 하진 않았지만 통쾌했을, 인천 팬들 입장에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김현이 득점했기에 더욱 열받을 골이었다.

ⓒ연합뉴스

인천과 수원FC는 3일 오후 7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2 26라운드에서 1-1 무승부를 거뒀다.

지난 7월 30일 '꼴찌팀' 성남FC 원정에서 충격의 1-3 패배를 당했던 인천. 마침 다음 상대는 허리부상의 라스, 퇴장 징계의 이승우가 빠진 수원FC였다.

인천은 제대로 벼르며 경기에 나왔고 수원은 수비적으로 경기를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인천이 경기를 주도하고 압도했다. 전반전 인천의 슈팅슈 11개-유효슈팅 7개, 수원의 슈팅 5개-유효슈팅 1개의 기록이 경기내용을 말해줬다.

수없이 좋은 기회를 만들어냈음에도 득점이 없던 인천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홍시후를 빼고 김보섭을 투입했다. 그리고 후반 5분 후방에서 길게 찬 프리킥을 에르난데스가 공중경합으로 전방으로 흘렸다. 이 공은 수비사이에 있던 김보섭에게 향했고 김보섭은 단숨에 빠른 속도를 활용해 페널티 서클에 진입한 후 골키퍼 일대일 기회에서 침착하게 오른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신고했다.

최근 기세가 좋은 김보섭의 골, 그리고 경기내용도 압도했기에 3731명이 운집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인천 홈팬들의 응원 소리로 가득찼다. 선제골을 넣고도 수원FC가 위협적인 공격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인천이 추가골을 만들만한 기회가 더 많았기에 홈팬들의 응원은 더 열기가 뜨거워졌다.

하지만 후반 24분. 뜨겁던 열기와 큰 응원소리의 경기장은 찬물 끼얹은 듯 확 조용해졌다. 수원의 오른쪽에서 크로스를 수비수 김동민이 문전에서 넘어지며 걷어낸 공이 강민수를 맞고 골대로 향했다. 다행히 이태희 골키퍼의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공을 쳐냈다. 하지만 이 튀어 나온 공을 정재용이 센스있게 힐패스로 문전에 있는 김현을 향해 내줬다. 김현은 수비를 등진 상황에서 버텨내다 터닝 오른발 슈팅으로 인천 골문을 갈랐다. 공이 그물망에 얹히지 않고 뚫고 나왔기에 순간 관중들은 '뇌정지'가 온 것은 물론 골을 넣고 기뻐하는 사람이 김현이기에 그 침묵은 더 길어졌다.

한때 각광받던 공격수였던 김현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K3리그(3부)까지 추락했다. 하지만 2021시즌 인천에서 1년간 뛰며 부활은 물론 프로 데뷔 후 커리어 하이 시즌을 찍었다. 29경기 7골로 달라진 인천을 상징하는 선수와도 같았다.

2021시즌 인천에서 활약했던 김현. ⓒ프로축구연맹

하지만 김현은 올시즌을 앞두고 인천을 떠나 FA로 수원FC로 이적했다. 인천 팬들 입장에서는 지난시즌 큰 애정을 쏟고, 자신의 커리어를 반등시켜준 기반이 된 인천을 떠났기에 서운한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김현이 공을 잡으면 인천 팬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홈, 원정 가리지 않았다. 오죽하면 김도균 수원 감독도 경기전 취재진을 만나 "FA로 이적한건데 인천 팬들이 안 좋게 보는 것이 안타깝다. 어쩔 수 없고 신경쓰지 않고 이겨내고 잘해야만 한다"고 김현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날 김현은 공을 잡을때마다 인천 팬들의 따가운 야유와 비난을 들어야했다. 하지만 묵묵히 견딘 김현은 이승우와 라스라는 팀내 최고 득점자들이 빠진 상황에서 딱 한번 찾아온 제대로 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했다.

골이 들어간 순간 도서관처럼 침묵되는 경기장에서 김현은 별다른 세리머니 없이 동료들과 기쁨을 나눴다. 자신을 야유하던 팬들 앞에서 골로 침묵시켰기에 의미가 컸을 것. 반면 인천 팬들은 하필 김현이 자신들의 승리를 막아냈기에 더욱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제 3자 입장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골일 수밖에 없던 장면이었다. 

ⓒ연합뉴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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