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發 고차방정식' 빠진 韓..북핵·사드·칩4 해법 첩첩산중
◆美 서열 3위 '1박2일' 訪韓
북한 핵실험 임박·한한령 등에
中 자극 않고 美 공조 확신 필요
펠로시 서울회담 차분히 대응을
'칩4 압박' 전망..산업계는 고심
아세안·한중 외교회의도 잇달아
"원칙 가지고 강약 전략 펼쳐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 방문에 이어 1박 2일 일정으로 3일 밤 방한하면서 안보 및 경제 이슈에 대한 대한민국의 셈법이 한층 복잡해졌다. 양안 관계를 둘러싼 미중 힘겨루기의 여파를 우리 정부가 맞게 되면서 북핵 대응, 사드(THAAD) 배치 문제는 물론 ‘칩4 동맹’으로 불리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동맹까지 여러 대외 이슈가 고차방정식처럼 얽혀 있다.
당장 북한의 7차 핵실험 위협 등에 맞서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펠로시 의장의 방문을 한미 동맹을 한층 다질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다만 이번 일정 기간에 한미가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할 경우 도리어 북한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협력을 구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고 식어가는 한중 경제 관계에도 불똥이 튈 수 있어 정교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외교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미중 전략 경쟁 와중에 한국이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대만을 경유해 이날 한국을 방문한 펠로시 의장은 당장 우리 정부에 중국 견제와 함께 북한 비핵화 및 인권 신장 등에 관해 강한 요구를 쏟아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로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도 완전히 풀지 않은 중국은 경제 보복을 대놓고 예고하고 있으며 미국이 한국·대만·일본을 포함한 4개국의 반도체 동맹인 ‘칩4 동맹’을 촉구하는 것도 중국 고립 전략이라는 경계감을 풀지 않고 있다. 미중 갈등에 한국의 외교적 공간 확보가 그만큼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대북 제재 빈틈 노린 北···중국 엄호=대만에서 시작된 외교전은 펠로시 의장의 다음 행선지인 서울로 옮겨졌다. 미국이 ‘규범에 기반한 질서’를 지키는 데 동맹과 우방국들의 동참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양안 갈등이 폭발한 다음 곧장 서울로 향했다는 점은 북핵 위기를 짊어진 한국 정부에 우회적인 압박이 될 수 있다.
즉 대만 문제를 고리로 미중 간 갈등이 고조되고 북중 관계가 밀착되면 북핵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미중 협력 없이는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펠로시 의장이 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위해 출장 중인 박진 외교부 장관을 만나지 못하지만 미국 권력 서열 3위 인사로서 4일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무게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미국의 파렴치한 내정간섭 행위”라며 중국을 엄호하고 나섰다. 북한이 다른 국가 현안에 대해 신속한 입장을 발표한 것은 이례적으로 미중 갈등 속에 북중러 연대 고리를 강화하고 대북 제재 압박에 틈을 벌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중의 벼랑 끝 갈등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며 북핵 문제의 갈등을 ‘한미일 vs 북중러’ 형태로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자극받아 국제적 대북 제재 협력을 더욱 기피할 경우 북한이 7차 핵실험에 곧바로 나설 우려도 있다.
◇‘사드 3불, 칩4’ 주도권 싸움에 2차 한한령 우려=이달 중 중국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의제로 다뤄질 ‘사드 3불(三不)’과 칩4 동맹 역시 ‘펠로시 효과’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칩4 동맹 가입을 놓고 한국 정부가 고민을 거듭하고 있지만 중국은 불참 압박을 지속적으로 가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중 간 갈등이 지속되면 타협하거나 양보할 여지가 거의 없어져 버려 한국이 칩4 동맹에 동참할 경우 중국이 문제 제기를 거칠게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중국이 요구하는 사드 3불 유지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특히 문제는 중국의 경제 보복이다. 2016년에도 중국은 한한령(한류 금지령) 등 경제 보복을 단행했고 그 결과 일부 산업군이 휘청거렸다. 펠로시 의장이 보다 강한 대중 압박을 요청할 경우 한국의 전략적 선택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어 재차 경제 보복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다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월 3연임을 노린다는 점에서 경제 보복에 따른 자국 내 리스크까지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중국이 수입 제한을 했다가는 아예 D램 자체를 구할 수 없어지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한한령 이후 중국에 이득이 없다는 학습효과가 생겨 경제 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원칙을 가지고 강약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도체 산업계는 ‘전전긍긍’=펠로시 의장이 방한하면서 우리 수출 기업들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이번 펠로시 의장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에 칩4 동맹 가입을 더욱 거세게 압박할 가능성이 높아 반도체 기업들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는 혈맹이자 끈끈한 기술 협력국인 미국을 놓칠 수도, 최대 수출 시장이자 보복 우려가 있는 중국을 외면할 수도 없다는 판단에 일단 사태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산업계는 펠로시 의장이 이번 방한 기간 중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 공급망의 중요성을 한국 측에 강조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가 중국과의 갈등 격화를 각오하고 아시아를 순방하는 만큼 한국 기업들에 마지막 선택지를 내밀 것이라는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펠로시 의장이 한국·미국·일본·대만 간 배타적 반도체 협조 체계인 칩4 동맹을 직간접적으로 거론할 것으로 관측했다. 실제로 펠로시 의장은 대만에서도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의 류더인(마크 리우) 회장을 만났다. 미국은 올 상반기 한국 정부에 8월 말까지 칩4 동맹 가입에 대한 입장 통보를 요구한 상태다.
한국 기업 대다수는 우리 정부의 확실한 외교적 보증 없이는 한쪽 국가 편에만 온전히 서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당장 미국 정부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덩달아 피해를 입게 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부터 비상이 걸린 상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 D램 공장, 충칭에 후공정 공장, 다롄에 미국 인텔에서 인수한 낸드플래시 공장을 갖고 있다.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박경은 기자 euny@sedaily.com김남균 기자 south@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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