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5세 입학, 폐기는 너무 앞서간 것".. 하루 만에 또 번복
2일 박순애 학부모간담회 발언
차관 "열린 논의 하자는 뜻" 해명
"교육청 패싱해" 교육감들도 발끈
학부모·교사 98% "학제개편 반대"
반도체 관련 대학 정원 확대안도
"영향력 큰 사안 불쑥 발표" 비판론
교육부가 취학연령을 만 5세로 내리는 학제개편 방안을 발표한 뒤 여론의 거센 반발로 후폭풍을 맞고 있다. 교육부 장·차관이 부랴부랴 여론 수습에 나섰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교육부가 오랜 기간 지켜온 교육적 가치를 한번에 뒤집는 정책을 숙의 없이 연이어 발표하면서 새 정부에 교육철학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3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국 시·도 교육감과 영상 회의를 갖고 학제개편 방안 취지를 설명했다. 회의는 당초 2학기 학교 방역 등을 논의하려 마련됐지만, 지난달 29일 박 부총리가 학제개편을 발표한 뒤 교육감들 사이에서 ‘교육청 패싱’ 불만이 커지자 전날 저녁 학제개편 안건이 급히 추가됐다.
이 자리에서 박 부총리는 “교육감님들과 협의하고 사회적 논의를 거치겠다”고 수습했으나 “왜 상의 없이 정책을 발표했느냐”는 질책이 쏟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교육청과 교육부가 논의하지 않고 무심코 발표하는 정책은 교육 현장에 혼란만 가져다준다”고 꼬집었다.
이밖에 장상윤 교육부 차관도 이날 유치원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가지는 등 여론을 달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역풍을 잠재우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실에 따르면 의원실이 학생·학부모·교사 13만1070명을 조사한 결과 97.9%가 입학 연령 하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책 추진 절차가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는 ‘학부모 등 당사자 의견 수렴을 하지 않았다’(79.1%), ‘국가·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았다’(65.5%) 등이 꼽혔다.
이번 학제개편은 특히 ‘누구도 예측 못했던’ 정책이란 데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부의 유아교육과 보건복지부의 유아보육을 통합하는 ‘유보통합’은 박근혜정부에서 추진단을 만들었지만 아직도 실현 안 됐다”며 “취학연령 하향은 유보통합보다 더 영향력이 큰데 당장 3년 뒤 도입한다니 혼란이 클 수밖에 없다. 공론화하려는 의도였으면 장기 과제로 ‘운’정도만 띄웠어야 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왜’ 학제개편을 추진해야 하는지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는 의견도 많다. 박 부총리는 “가정 여건에 따라 교육 격차가 생기니 공교육에 빨리 편입시키려는 것”이라고 했지만, 단순히 ‘빠른 공교육 편입’이 목적이었다면 유치원 과정을 의무교육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이는 유보통합과 맞물려 교육계에서 꽤 오랫동안 논의된 방안이다. 전날 간담회에서도 이런 지적이 나왔지만, 박 부총리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오랜 기간 유지됐던 교육 정책들을 새 정부가 돌연 바꾸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교육부는 지난달 반도체 인재 양성 정책을 발표하면서 수도권을 포함한 대학 정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오랜 기간 비수도권 대학 살리기 등에 대한 공감대 아래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정책을 펼쳤는데, “나라를 살리는 데 웬 규제 타령이냐”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이를 뒤집은 것이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교육 정책은 중심을 잡고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사전 교감 없던 정책을 발표했다 반대 여론이 거세니 말을 바꾸는 등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유나·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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