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시진핑 직격 "대만 민주주의 수호"..왕이 "머리 깨질 것"
"미국의 확고한 지원 중요"
3일 오전 10시 반(한국시각 11시 반),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권력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82)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 타이베이의 총통부를 방문해 차이잉원(66) 총통과 손을 맞잡았다. 하얀 옷을 위아래로 차려입은 펠로시 의장과 회색 재킷을 입은 차이 총통은 대만을 상징하는 청천백일기와 ‘국부’ 쑨원의 초상화 앞에서 서로 마주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워 대만 통일을 완수한다는 명분으로 3연임을 노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 광경을 어떤 심경으로 바라봤을지 상상하긴 어렵지 않았다.
중국의 거센 반대를 꺾고, 미국의 현직 하원의장으로 25년 만에 대만을 방문한 펠로시 의장이 꺼내든 말은 중국이 가장 꺼리는 두 단어인 ‘민주주의’와 ‘자유’였다. 펠로시 의장은 “오늘날 세계는 민주주의와 독재 사이의 선택에 직면해 있다. 여기 대만과 전세계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미국의 의지는 철통(ironclad)과 같다”고 말했다. 펠로시 의장은 전날 밤 대만 쑹산 공항에 도착한 뒤 낸 성명에서도 “전세계가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만 2300만 인구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원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펠로시 의장은 이어, 중국과 맞서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 대만이 이룬 성과를 칭찬했다. 펠로시 의장은 “대만의 이야기는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엄혹한 도전 앞에서 당신들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우며 번영하는 민주주의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을 이끌어낸 것은 자랑스럽게도 여성”이라고 말해 청중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대만의 성과를 내세워 반대쪽에 자리한 중국을 강하게 견제한 셈이다.
차이 총통도 “대만은 지속적이고 의도적으로 고조되는 군사적 위협에 물러서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한 방어선을 지키겠다”며 “전세계 민주 국가들과 단합해 민주 가치를 수호하겠다”고 화답했다. 차이 총통은 이날 펠로시 의장에게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등급 훈장인 ‘특종대수경운’을 수여했다. <시엔엔>(CNN) 등 외신들은 두 사람이 이날 차이 총통 집무실에서 대만의 안전 보장과 경제 협력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펠로시 의장이 쏟아낸 메시지는 이날 오후 중국 정부를 비판하다 대륙에서 도망쳐 나온 반체제 인사를 만나면서 절정을 이뤘다. 그는 백색테러 피해자를 추모하는 징메이인권문화원구를 방문해 1989년 중국 천안문(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학생 지도자였던 우얼카이시와 2015년 중국공산당 비판 서적을 취급했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에 구금됐다 풀려난 홍콩 서점 점장 출신 람윙키(린룽지) 등을 만났다. 천안문 사건은 복잡한 중국 현대사의 여러 사건 가운데 중국공산당이 가장 지우고 싶어 하는 역사 중 하나라는 점에서, 펠로시 의장이 당시 학생 지도자를 만난 것은 뼈아픈 대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펠로시 의장은 천안문 사건 2년 뒤인 1991년 하원의원 자격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동료 의원들과 함께 천안문광장에서 “중국 민주주의를 위해 숨진 이들에게”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기도 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어 대만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티에스엠시(TSMC)의 류더인 회장과 회담했다. 미국은 일본과 동아시아의 두 반도체 강국인 한국·대만을 함께 묶어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칩4 동맹’을 결성하려 하고 있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대만과 안보·기술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펠로시 의장과 미국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워싱턴 포스트>도 류 회장과의 만남은 미국 경제와 안보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큰 비중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했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이 내세운 ‘이분법적 세계관’이 동아시아와 세계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다. 중국은 다시 한번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왕이 외교부장(장관)은 이날 담화에서 “대만 문제에서 도발해 문제를 일으키고 중국의 평화적 굴기를 파괴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헛된 일이다. 반드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국방부는 4일부터 대만 주변 해역 6곳에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진행한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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