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에 분노한 중국..미국엔 '말폭탄', 대만엔 '분풀이'
국방부 "표적 군사훈련 개시" 위협
대만산 감귤, 갈치 등 수입 잠정 중단
당장 미국 겨냥 안했지만 미-중 관계 부담
25년 만에 현직 미국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가 탄 미군 항공기가 2일 밤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하자, 중국 대륙은 온통 분노로 들끓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이날 밤 즉시 실탄사격훈련에 나섰고, 외교부 등은 비판 성명을 쏟아냈다. 중국의 ‘창끝’은 일단 대만을 향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미국도 겨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을 방문하는 펠로시 의장에게 “불장난하면 타 죽는다”고 위협했던 중국은 일단 항공기 착륙을 가로막는 등의 무모한 조처는 하지 않았다. 세계 최강 군사대국의 권력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중요 인사를 물리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3일 만난 펠로시 의장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 역시 민주주의와 자유의 중요성을 외치면서도 중국이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대만 독립’은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은 우선 대만을 향해 군사적 압박을 강화했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도착한 직후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사령부는 대만 주변에서 일련의 합동 군사훈련을 했다. 그가 대만을 떠난 뒤인 4일부터는 대만 해역을 사실상 포위한 채 군사훈련도 한다. 관영 <신화통신>이 공개한 훈련 작전 지도를 보면, 대만의 북쪽 3곳과 남쪽·남서쪽 2곳, 동쪽 1곳에서 군사훈련이 이뤄질 예정이다. 대만의 동쪽 해역에서까지 중국군이 훈련을 벌이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훈련이 이뤄지는 해역을 분석한 <뉴욕 타임스>는 “일부는 대만의 해양 경계 안쪽에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은 훈련 시작점을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떠난 뒤로 잡는 등 미국과의 갈등 확대를 원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신호’를 줬다.
그렇지만 엄청난 ‘말폭탄’은 잊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 국방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중공중앙대만공작판공실 등 5곳이 2일 밤 일제히 비판 성명을 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밤 1100여자 분량의 성명을 내어 “펠로시 의장이 미 하원의장으로서 대만을 방문하는 것은 중대한 정치적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국방부도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은 이(펠로시의 대만행)에 대응하기 위해 일련의 표적 군사작전을 개시하고 ‘대만 독립’ 분리주의 시도를 단호하게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보복도 쏟아냈다. 중국 정부의 대만 담당 기관인 국무원 대만판공실은 3일 대만의 ‘대만민주기금회’와 ‘국제협력발전기금회’를 ‘완고히 대만 독립을 꾀하는 기구’로 규정하고, 이들과 중국의 조직·기업·개인 간 협력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는 대만산 감귤과 냉장 갈치, 냉동 전갱이의 수입을 3일부터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당장 미국을 겨냥하진 않았지만, 이번 사태는 미-중 관계 전반에 상당한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1950~1990년대 있었던 1~3차 대만해협 위기에 버금가는 4차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만 통일을 3연임의 주된 이유이자 목표로 내세우는 시진핑 주석이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허용한 마당에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보복 수단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군사훈련 외에 과거 대만해협 위기 때 했던 것처럼 중국군이 대만의 군사 목표물을 타격하거나 ‘조국 통일’에 관한 새 법안을 추진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군용 항공기와 선박을 대만 정부가 관할하는 대만 영공이나 수역에 진입시킬 수 있고, 대만과의 암묵적인 휴전을 끝내는 선택지도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나 대만이 중국이 생각하는 마지노선을 넘지 않는 한, 중국은 직접적인 충돌은 피하려고 할 것”이라며 “다만, 중국은 미국이나 대만이 이 문제와 관련해 도발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포함해 향후 미-중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중국의 종합적 견해는 올가을 열리는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를 전후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결정되는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중국의 공산당 간부와 장로들이 모이는 ‘베이다이허 회의’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도 현지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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