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조사 없이 개발 지원..기술 10건 중 9건은 시장 진출도 못해
<하> 나눠먹기식 R&D 개혁해야
올 30조원 예산 집행한다지만
공공기관 기술 이전·운용률↓
선정 단계부터 시장조사 통해
'될성 부른' 기술 집중 투자를
직접지원 대신 조세감면 확대
연구 지원 방식도 다변화해야 하>
한 공공연구기관이 식물의 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도록 식물 바이러스 유전자를 분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정부는 치료제가 없는 식물 바이러스의 경우 조기 방제가 중요하다고 보고 이 프로젝트에 대한 재정 지원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 기술은 끝내 상용화되지 못했다. 해당 기술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적었던 탓이다.
이 사례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에 따른 정책 효과가 왜 떨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부가 재정을 지원할 R&D 과제를 선정할 때부터 시장 수요를 제대로 조사하지 못해 빚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예산을 투입해 기술을 개발해도 기업의 외면을 받으면 상아탑이나 연구소 안에 갇힌 R&D로 끝나 버린다. 재정 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도 R&D 예산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재정 개혁 차원에서도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할 프로세스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R&D 재정 투자의 낮은 효율성은 숫자로도 나타난다. 공공연구기관이 정부 예산으로 R&D를 수행해 개발한 기술을 민간에 이전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기술이전율은 2016년 38.6%에서 2020년 35.4%로 떨어졌다. 공공연구기관이 누적으로 보유한 기술의 운용률도 2019년 기준 9.3%에 그쳤다. 공공연구기관이 확보한 기술 100건 중 91건은 시장에 진출조차 못 했다는 뜻이다.
물론 R&D 사업의 성패 여부를 상용화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낮은 사업성으로 민간의 관심이 적은 기초연구나 높은 비용으로 민간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우주·항공 등에 대한 연구는 상용화 여부를 떠나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중국 등 주요국이 R&D 투자를 늘리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만 R&D 지원에 소홀할 수도 없다. 최근 미국의 R&D 예산은 연평균 6%씩 늘었고 중국도 코로나19 확산이 극심했던 2020년을 제외하고는 지난 5년간 10% 내외로 증가했다.
다만 빠르게 늘어나는 국가채무에 정부가 재정 허리띠를 죄는 만큼 낭비 요소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광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시장 수요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기반으로 R&D 사업을 선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과제를 추진하다 후속 지원이 중단돼 성과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R&D 예산 증가에 발맞춰 관련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R&D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재정 투자의 효율성 향상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 R&D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1.0%에서 2022년 1.5%로 늘어났다. 미국(0.7%)·영국(0.6%) 등 주요국보다 크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이 충분히 할 수 있는 R&D를 국가가 굳이 돈을 써가면서 개입할 필요는 없다”며 “달리 말하면 정부 R&D 투자에 선택과 집중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R&D 지원 방식을 다변화할 필요도 있다. 한국의 경우 R&D 연구에 돈을 직접 지원하는 재정 지원이 대부분인데 이를 조세 지원 등 간접 지원으로 돌려 재정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2018년 R&D 지원 정책에서 재정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86.8%로 조세 지원(13.2%)보다 월등히 컸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보조금 지급 같은 재정 지원은 재원 부족 및 예산 확보의 부담을 키운다”며 “R&D 기업에 대한 조세 감면, 비과세, 소득공제 등 조세 특례를 이용한 간접 지원을 확대해 R&D 투자 방식을 효율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도 R&D 투자의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7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적 민·관 협업으로 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출연 중심에서 경쟁형·바우처·후불형 등 민간 기업에 대한 R&D 지원 방식을 다양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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