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간 尹대통령, 국제정세는 '격랑'..시험대 오른 위기관리 능력
(시사저널=이혜영 디지털팀 기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등 국제 정세가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격랑에 빠져들었다. 동북아 지역을 중심으로 긴장 수위가 높아지면서 한반도에도 상당한 파급이 예상된다.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력 및 위기관리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만을 찾은 펠로시 의장은 이날 오후 한국에 도착한 후 4일 오전 김진표 국회의장과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경제 협력, 기후위기 등 주요 현안에 대한 회담을 갖는다. 회담에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참석한다. 펠로시 의장과 김 의장, 양당 원내대표 회담은 약 50분간 진행될 예정이며 이후 양국 의장은 회담 결과를 공동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 간 만남이 불발된 만큼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한·미 국회의장 회담 직후 공개하는 내용이 될 전망이다.
이날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 회동이 성사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대변인실은 언론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과 펠로시 하원의장 만남은 대통령 휴가 일정 등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오늘 오전 브리핑 내용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며 "보도에 혼선이 없길 바란다"고 일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회동을 위한) 조율 과정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일 대만에 도착한 펠로시 의장은 대만엔 연대를, 중국엔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메시지를 연일 발신하고 있다. 중국이 이에 강력 반발하며 '보복'과 '응징'을 천명하는 등 대만해협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중국과 협력 관계 역시 동시에 가져가야 하는데, 최근의 대립구도가 심화하면서 난이도가 한층 상승하게 됐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면고 진영 구도가 굳어질 수록 한국의 외교적 공간은 더 좁아지게 된다. 중국이 북한, 러시아와 공조를 강화하는 것에 대응해 미국은 한국, 일본과의 동맹 고리를 더욱 탄탄히 하려 하고 있어서다. 북한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파렴치한 내정간섭"이라 비난하고 중국과 공조를 과시하면서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도 첩첩산중이다.
한국 정부는 일단 펠로시 행보가 역내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실은 이날 펠로시 의장의 방한을 환영하면서 "우리 정부는 대화와 협력을 통한 역내 평화와 안정이 필요하다는 기조 하에 역내 당사국들과 제반 현안에 관해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냈다.
그러나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긴장이 고조될수록 한국의 '선명한 입장'을 요구하는 압박이 커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한·미 간의 공동 문서에는 대만해협 관련 언급이 연속적으로 포함되고 있다.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등의 원론적 언급이지만, 다른 나라가 대만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를 내정 간섭으로 여기는 중국은 강하게 반발해왔다.
미국은 중국의 대만 주변 무력시위가 일방적인 현상변경 시도라며 '규범에 기반한 질서'를 지키는 데 동맹과 우방국들이 동참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펠로시 의장 역시 대만 도착 직후 낸 성명에서 "전 세계가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마주한 상황에서 2300만 대만 국민에 대한 미국의 연대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언급하며 '가치 대결' 구도를 부각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 다자 무대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의 문제를 다룰 때는 지금보다 좀 더 선명한 모습을 취하되 중국과의 양자 관계에서는 절제된 용어와 세밀한 메시지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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