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노동자 동의 없이 사원협의회 회비 걷은 삼성..검찰, 계열사 전 대표 기소
노동자 동의 없이 사원협의회 회비를 일괄 공제한 삼성 계열사 전 대표이사를 검찰이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삼성은 그동안 ‘무노조 경영’ 방침 속에서 노동조합 대신 사원협의회와 근로조건에 관한 협약을 맺었는데, 검찰은 이는 정당한 노조와의 단체협약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5월말 구본열 전 삼성화재 애니카 손해사정 대표이사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했다. 애니카 손해사정은 삼성화재가 지분을 100% 보유한 자회사다. 당초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이 최종적으로 약식기소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약식기소는 검찰이 서면 심리만으로 벌금을 부과해달라고 법원에 청구하는 절차다.
구 전 대표는 2020년 3~8월 노동자들 임금에서 사원협의회(한마음협의회) 회비 명목으로 매달 1만1000~1만8000원씩을 공제한 혐의를 받았다.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없다면 사업주가 직접 노동자에게 임금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43조1항을 어긴 혐의다.
통상 노동조합비 공제는 노조가 단체협약을 통해 공제 방식을 정하고 회사와 협의해 시행한다. 문제는 사원협의회가 정식으로 설립신고한 노조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삼성에 노조가 만들어지기 어렵던 상황에서 사측과 사원협의회가 근로조건에 관한 협약으로 회비 공제를 정했고, 사측은 공제한 돈을 사원협의회 회장의 개인 계좌로 송금했다. 사원협의회를 둘러싸고는 회사 안팎에서 ‘어용노조’ 논란이 계속돼왔다.
구 전 대표 측은 사원협의회가 설립신고만 안했을 뿐이지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춘 법외노조이고, 근로조건에 관한 협약은 정당한 단체협약이라 회비 공제가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또 회비 공제는 사내에 확립된 관행이라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회비 공제가 위법하다고 봤다. 검찰은 사원협의회가 노조 설립신고를 하지 않은 기간이 20년이 넘는 데다 회비 공제를 반대하는 노동자가 있었고, 관행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검찰은 근로조건에 관한 협약이 유효한 단체협약이 아니라고 봤다. 여기엔 모회사인 삼성화재의 사원협의회(현 리본노조)가 자주성·독립성을 결여했다는 법원 판단이 감안됐다. 삼성화재노조가 삼성화재·리본노조의 단체교섭을 중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1심 법원 결정이다. 이 재판부는 사원협의회가 사측과의 합의 속에서 설립·구성·운영됐고, 노조 설립을 사실상 저지했다고 판단했다. 삼성의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는 사원협의회와 관련해 ‘노조 설립시 대항마로 활용’, ‘유사시 친사노조로 전환’ 문구가 등장한다.
최원석 애니카 손해사정 노조 위원장은 사측의 사원협의회 회비 일괄 공제에 대해 “삼성이 노조가 커지지 않도록 조직화를 방해하고, 노조 파괴를 실행하기 위한 불법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조가 생긴 이후에도 사측이 사원협의회 회비 공제를 유지함으로써 이중공제가 부담스러워 노조 가입을 꺼려하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삼성화재 측은 “구 전 대표가 정식 재판을 청구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의 기소 내용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화재 측은 삼성화재 가처분 사건 2심에서 리본노조에 정당성이 있다며 삼성화재 손을 들어줬는데 검찰이 1심 판단만 고려했다며 약식기소가 부당하다고 했다. 이 가처분 사건은 대법원이 심리 중이다.
삼성은 노조 와해 사건과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연루가 불거지면서 2020년 5월 ‘무노조 경영 폐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삼성 계열사에서 노사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노동계는 삼성이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금협약을 별도로 체결하는 등 노조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8·15 특별사면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르면 9일 사면심사위원회를 열어 대상자를 심사한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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