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시행..노조탈퇴 의무에 임원추천권 없어 '누더기' 비판도
중앙 확대 의미 있지만, 노조탈퇴 의무 등은 우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오는 4일부터 시행된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1월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공포 6개월 후 시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노동·시민단체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앙으로 확산되는 것에 의미를 두면서도 ‘노동조합 탈퇴 의무’ 등을 담은 기획재정부 지침안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가 이사회에 참석해 주요 안건에 대해 발언하고 의결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공운법 개정안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이 노동자 대표가 추천하거나 노동자 과반수 동의를 얻은 비상임이사(노동이사) 1명을 반드시 이사회에 두도록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중 서울시가 처음으로 2016년 9월 관련 조례를 제정해 운용했다. 올해 2월 기준 서울시와 광주시, 경기도, 인천시, 경남도 등 83개 지방공공기관이 103명의 노동이사를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채택했다. 이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법 개정안이 올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행 대상 기관은 공기업 36곳과 준정부기관 94곳 등 총 130곳이다.
하지만 법 개정안 통과 직후 기확재정부는 시행령과 세부지침을 손봤고, 지난 6월3일 ‘노동이사의 임명과 운영’에 관한 신설안을 담은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경영지침)’이 나왔다. 여기에는 “노동이사로 임명되는 사람이 노조법상 노동조합의 조합원인 경우에는 그 자격 또는 직을 탈퇴하거나 사임해야 한다” 등 내용이 담겼다.
현재 국내 지방 공기업들의 노동이사제는 이미 노조 탈퇴를 전제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기재부가 경영지침으로 탈퇴조항을 명시하면서 노동계는 “노동자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노동이사가 노동조합을 탈퇴하도록 강제한다면 그 지위가 불명확해진다”고 반발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정의당은 법 개정안 시행 하루를 앞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측 거수기 노동이사, 누더기 노동이사제,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
이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법률원 변호사는 “유럽 각국 사례를 보면, 노동이사 대부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며 “노동이사는 기업 지배구조에 사용자 대표로 참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사회나 감독이사회에 이사로 참여한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탈퇴를 법률로 강제하는 국가는 없다”고 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조합 가입 여부는 기본권에 관한 사항으로 노동이사로 활동한다는 것이 기본권을 제약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며 “다만 이해충돌 가능성을 감안할 때 노동이사가 노조의 간부직이나 여타 근로자 대표와 겸직하는 것을 금하고, 단체교섭 담당자로서의 참여나 쟁의행위 참가를 제한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노동이사가 일반 비상임위원과 달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기재부 경영지침은 “노동이사는 임원추천위원회의 위원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비상임이사의 임추위 위원 참여가 가능한 상황에서, 비상임이사와 동일한 수준의 권리와 의무가 부여되는 노동이사에게 제한을 두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이사제 자체가 ‘균형 있는 감시와 견제’ 역할을 수행하고자 도입된 제도라는 취지에 비춰볼 때 임추위 위원으로 참여해 의사를 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직원’과 ‘임원’의 이중적 지위를 통해 유효한 견제와 감시기능을 행사해야 할 노동이사 역할이 무력화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기재부가 법안이나 시행령 대신 경영지침에 이같은 내용을 넣은 것은 향후 갈등의 불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태진 부산교통공사 노동이사는 “노조 탈퇴 부분만 해도 법 개정안에 담기지 않고 시행령에도 빠졌는데 경영지침에 포함됐다. 권한을 넘어선 지침안”이라며 “향후 기재부를 상대로 고소·고발 등 법률 다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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