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피해자측 "외교부 의견서로 신뢰 파탄"..민관협 불참선언(종합)
출범 한달만에 피해자측 모두 빠져..외교부 "이달 이른 시점에 3차회의 검토"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측이 최근 외교부의 대법원 의견서 제출로 신뢰관계가 파탄 났다며 민관협의회 불참을 선언했다.
외교부가 한일관계 개선의 최대 난제인 강제징용 문제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민관협의회를 구성한 지 한 달 만에 피해자 측이 모두 빠지면서 해법 도출이 난항에 부닥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후지코시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단체와 법률대리인은 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 측에 사전에 어떠한 논의나 통지도 없이 의견서가 제출됐다"며 이는 "절차적으로 피해자 측의 신뢰관계를 완전히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피해자 측이 사후적으로나마 외교부에게 의견서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외교부는 이미 제출된 의견서조차 피해자 측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는 실질적으로도 피해자 측 권리행사를 제약하는 중대 행위라며 "사실상 대한민국 정부가 대법원에 '판단을 유보하라'는 취지로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판단한다. 헌법이 보장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사람에게 권리 지연을 행정부가 요구했다면 사전에 양해와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전혀 없었다"며 의견서 제출은 대법원에게 판단을 하지 말아 달라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전체 진행되고 있는 강제동원 소송에 대한 행정부의 의견을 사법부에 제출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만큼 중대한 것"이라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와도 싸워야 하느냐"고 질타했다.
회견 참석자들은 "민관협의회에 피해자 측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으며, 민관협의회에서 이후 실효적인 의견도 나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외교부 의견서 제출로 인해 신뢰가 훼손되었기에 민관협의회의 불참을 통보한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 측은 이후 정부 안이 확정되면, 이에 대한 동의여부 절차에는 협조할 것"이라며 향후 정부가 해결안을 내놓으면 이를 검토할 여지는 열어놨다.
외교부는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강제노역 피해자 양금덕·김성주 할머니의 상표권·특허권 특별현금화 명령 사건을 심리 중인 대법원에 지난달 26일 의견서를 제출해 문제 해결을 위한 '다각적 외교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회견을 연 이들은 대법원에서 현금화 명령 심리가 진행 중인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강제노역 피해자 측과는 다른 단체로, 처음부터 민관협의회에 불참했던 근로정신대 피해자 측과는 달리 지난 두 차례 민관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이들마저 민관협의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정부의 피해자와 함께하는 해결 프로세스 마련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편 피해자 측은 외교부가 과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당시 이른바 '재판거래' 과정에서도 의견서를 제출했던 것을 거론하며 비판하기도 했다.
외교부가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해 대법원에 의견서를 낸 것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이 진행 중이던 2016년 이후 이번이 처음으로, 당시 의견서 제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 (근거) 규칙(대법원 민사소송규칙)이 사법농단 때 만들어진 것"이라며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피해자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외교부가 과거에 대한 아무런 반성없이 그 규칙을 다시 활용해서 강제동원 집행절차를 지연시키려는 모습은 재판거래의 피해자들인 강제동원 소송 원고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모습"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피해자 측 회견에 대해 "민관협의회 등을 통해 원고 측을 비롯한 국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진정성 있는 노력을 경주해 나간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아울러 민관협의회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원고 측 의견 수렴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3차 민관협의회는 "8월 중 이른 시점에 개최하는 것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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